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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특별함 대신 겸손 입은 진.짜.배.우

[인터뷰] 이성민, 특별함 대신 겸손 입은 진.짜.배.우

등록 2016.01.26 06:00

이이슬

  기자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연기를 하기위해 대학 연극영화과 진학을 꿈꾸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대구전문대학 호텔관광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연기를 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연거푸 상상하며 꿈을 키웠고, 스무살 극단에 들어갔다. 배우 이성민 이야기다.

이성민은 극단에 들어가 바닥부터 연기를 시작해 24살 때인 1992년 대구연극제에서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타며 얼굴을 알렸다.

이후 그는 TV드라마와 영화에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극 무대에서 최고자리에 오른 그였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생소할 뿐이었다. 그 시절 그는 수제비에 김치만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야 했다. 한 입 건사하기 힘들었지만 연기가 좋았고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성민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연기라는 하나의 꿈을 가슴에 오롯이 간직했다. 간절히 꿈꾸면 그 꿈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이성민은 거창하지 꿈꾸지 않았다. 늘 일상에서 연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고, 그는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이성민은 화려한 외모나 언변보다 소탈한 웃음과 담백한 말이 매력적인 배우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봤을 때 옆에 있을 법한 아저씨 같기도 하다. 이 점이 바로 그의 경쟁력이자 그가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연기에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연기를 잘 하고 싶고, 뭔가 해보이고 싶은 마음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 진짜 말하듯이 배역에 녹아들어 일상적인 감정을 빚는 게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성민의 연기는 굉장히 편안하다. 소탈한 한 인간 그 자체를 짓는다.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이성민은 오는 1월27일 개봉하는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를 통해 국민 아빠로 변신했다. 영화는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을 만나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에서 이성민은 아무런 증거도 단서도 없이 실종된 딸 김유주(채수빈 분)의 흔적을 찾기 위해 10년 동안 전국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김해관으로 분한다. 모두 포기하라며 그를 말리지만 그는 딸이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인공위성 로봇 소리를 만나 딸을 찾기 위한 동행에 나선다.

이성민은 실제 중학생 딸을 둔 아빠다. 그는 허구를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대본을 읽으며 자신의 딸을 떠올렸다는 이성민은 그렇게 나로서 해관에 접근했다. ‘나라면’ 이라는 물음은 어쩌면 감정을 끌어올리는데 용이할지 몰라도 위험한 접근이라 할 수도 있을 터. 그는 배역과 나 사이의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데 집중했다.

“딸이 있어서 해관의 입장을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기였던 딸이 성장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아빠로서 떠올렸죠. 막연히 아빠로서의 정서가 도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해관과 닮았죠. 부모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잖아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그 마음을 안다는데, 그게 진짜에요. 해관의 방식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부성이고 아빠의 마음이죠.”

이성민이 연기하는 해관은 절대 관객에게 부성(父性)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슬프다. 켜켜이 쌓아온 해관의 감정은 관객을 무리 없이 잘 이끈다. 그가 집중한 것은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자칫 히어로로 포장할 수 있는 배역이지만 이성민은 그 답게 일상의 시선에서 접근했다.

“딸 유주가 죽었는지 아닌지, 안 죽었다고 믿는 것인지 아닌지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했어요. 그 애매한 경계가 어려웠어요. 해관이 히어로는 아니잖아요. 특별한 아버지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했쓰면 했죠. 모든 장면이 그랬어요. 그래서 해관을 연기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없어요.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죠. 무리 없이 잘 흘러가는데 밸런스를 맞췄어요. 어떻게 하면 평범할까 고민했죠.”

이성민에게 친 딸에 대해 묻자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서 애정이 듬뿍 담긴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사회 악(惡)에 저항하고, 소시민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하며 다소 거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그이지만 딸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딸바보’였다.

“딸은 늘 제 옆에 있어줘요. 부인이 아니라 딸이 집에 언제 들어오냐는 연락을 하곤 하죠. 대화를 많인 하지는 않지만 같이 있는 편이에요. 시사회 때 딸이 중2병이라고 말했더니, 집에서 딸이 본인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나무라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사실은 사실이다’라고 해줬어요. 딸은 제 영화에 솔직한 편이에요. 엄지를 척 들어보인 적이 거의 없었죠. ‘지루해, 길어’ 이렇게 혹평을 하곤 해요. 그래서일까요, 항상 딸이 내 영화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쓰게 되요.”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로봇, 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이성민과 로봇의 호흡이다. 로봇인 소리는 기계이지만, 소리는 감성을 전달하는 로봇인 만큼 이성민과 아이컨택(Eye-Contact)을 통한 교감에 중점을 뒀다. 현장에서 로봇과 마주해야 했던 이성민, 교감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연기할 때 가장 이색적인 부분이 로봇과의 교감이었죠. 물론 설정 자체가 기계를 대하는 상황이라 어렵지는 않았지만 장면을 만들어 갈 때 어떤 것이 효과적일까 어떤 움직임이 있으면 재미있을까 하는 궁리를 많이 했어요. 작은 움직임 하나도 영향을 미쳤죠. 예전에 극단 시절 인형극을 했던 경험을 살렸어요. 움직임이 어떨지 당시 경험을 되살려 연구했죠. 작은 디테일 하나가 마치 소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어요. 또 소리 왼쪽 눈에 들어와있는 불을 바라보며 연기했어요.”

인터뷰 장소 한 켠에는 실제 이성민과 호흡을 맞췄던 로봇, 소리가 자리해있었다. 소리를 위해 한복, 턱시도도 준비했다는 이성민은 최근 소리의 거취가 결정났다며 웃었다. 제작사에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 그는 이야기를 전하며 “잘 됐죠?”물으며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소리와 감정을 나누며 알게 모르게 정이 든 듯 했다.

영화에는 2008년 2월18일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가 등장한다. 당시 방화로 인해 대구 지하철 1호선 전체에 불이 났으며, 정차 역이었던 불길이 중앙로역사로 번지며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는 대구 팔공산에 세워진 추모비에 다녀왔다고 했다. 영화를 시작한다고 인사를 드리고 왔다는 것. 이성민은 가장 먼저 피해자들을 걱정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가장 걱정한 부분이 대구 지하철 참사가 등장한다는 것이었어요. 조심스러웠어요. 누군가에게 아픔일 수 있는 부분이죠. 촬영 당시 신중하고 조심했고, 편집도 몇 번 거듭하며 조심했어요.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관객이 느끼는 순간이 있죠. 그 순간은 영화가 주는 사건에 대한 기억이랄까요. 그 정도로 그려진다면 상처받은 분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죠. 아직까지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의 메시지에요.”

이성민은 영화를 통해 영화 첫 주연이라는 또 하나의 필모그라피를 썼다.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주연으로 분한 그였지만 영화에서 홀로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은 ‘로봇, 소리’가 처음이다. 소감을 묻자 이성민은 고마웠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아침에 먹은 김밥 몇 개가 소화되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감사와 부담을 동시에 꺼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제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홍보를 하면서 뼈 저리게 느끼고 있어요.(웃음)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자꾸 ‘보실래요’ 묻더라고요. 그래서 ‘왜 자꾸 보라는거지’ 싶었죠. 하하. 그런 과정들은 주연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더라고요. 영화 개봉 준비를 하고 알려지기 시작하며 부담감이 확 오더라고요. 책임감이 밀려와 잡도 못자고 소화도 안되요. 묘한 불안감에 스트레스도 받아요.”

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영화 ‘로봇, 소리’ 배우 이성민 인터뷰. 사진= 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이성민은 ‘미생’의 흥행에 이어 스크린 첫 주연까지 우쭐댈 법도 하지만 오히려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평소 작품보다 연기에 집중하는 이성민이기에 납득할 법도 하지만 한 없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짐짓 의아하기도 했다.

“제가 캐스팅 되고 나서 나머지 배역의 캐스팅 소식에 귀를 기울였죠. 한 동안 소식이 없더라고요. 마음 속으로 ‘내가 한다는데 누가 하겠어’ 했죠. 이후 배우 이희준과 이하늬 합류 소식을 듣고 고마웠어요. 스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골든타임’ 끝나고도 ‘내가 뭘,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부정했어요. 그렇지만 이제 아무 것도 아닌 건 아니라는 정도는 인정해요.(웃음)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요.”

자신을 일컬어 스타는 아니라는 그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라는 말을 건네니 이성민은 ‘무슨 말이세요?’ 라고 물으며 웃는다. 그에게 거품이란 없었다. 거품과 기름을 쏙 빼고 낮은 곳에 임할 줄 아는 인간 이성민이 보였다.

“특별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결혼을 한 후 주목받지 시작했지만, 그 동안 살아온 (힘든) 시간이 길죠. 그것에 익숙해져있어요. 달라진 제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이기도 해요. 그게 더 편한 것 일수도 있죠. 매일 김치에 수제비만 먹으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메뉴가 스테이크로 바뀌었다고 바로 스테이크에 젓가락이 가지 않는 것이라 설명하면 될까요.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요, 저는 그대로에요.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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