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 증인 고집에 여야 협의 난항···산업 현안보다 총수 출석 공방4년 전엔 "망신주기·여론몰이 막아야"···이번엔 "총수가 직접 설명해야"
국민의힘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국정감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증인 채택을 고집하면서 여야 협상이 꼬이고 있다. 정부가 삼성과 SK의 투자 결정을 압박했는지 따져야 한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 기업인 증인 채택을 두고 '국회 갑질'과 '망신주기'를 경계했던 국민의힘이 이번에는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 총수 2명의 출석을 요구하면서 증인 채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29일 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는 전날 전체회의에서 국정감사 계획 등을 의결했지만 이 회장과 최 회장의 증인 채택은 확정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두 총수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민주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추가 협의가 이어지게 됐다.
국민의힘 간사인 김형동 의원은 이 회장과 최 회장 두 명만 증인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투자 규모가 크고 정부가 앞장서 추진하는 사업일수록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김 의원은 정부의 압박 없이 기업이 스스로 투자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삼성과 SK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국회에 나와 투자 배경을 설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정부가 삼성과 SK의 '팔을 비틀지 않았다면' 왜 총수들이 국감장에 나오지 못하느냐는 취지로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남은 증인·참고인 채택 협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정호 환노위원장도 양당 간사 간 협의·조정이 진행 중이라며 이견을 좁힐 것을 당부했다.
국민의힘의 이번 요구가 주목받는 것은 과거 기업인 국감 증인 채택을 바라봤던 당의 입장과 결이 달라서다.
2022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주호영 의원은 재벌 총수와 은행장 등 민간 기업인을 대거 국감장에 불러 장시간 대기시킨 뒤 짧게 답변하게 하는 관행을 두고 "국회 갑질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기업인에 대한 무분별한 망신주기나 여론몰이를 위한 증인 채택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듬해인 2023년 윤재옥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기업인 증인 신청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부당하게 과도한 증인 신청을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전 원내대표는 당시 국민의힘이 먼저 이런 원칙에 맞게 증인 신청을 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이번 사안은 과거 기업인 무더기 소환과는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은 특정 기업의 경영 현안이 아니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대규모 투자사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검증하기 위해 총수 출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투자 규모가 큰 만큼 정부의 역할과 기업의 판단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 자체는 별개의 검증 대상이다.
다만 투자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과 총수를 국감장에 세우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부지 조성뿐 아니라 전력·용수 확보, 인허가, 기반시설 구축 등 정부와 지자체가 관여하는 영역이 적지 않다. 정부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고 기업이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관련 자료와 정부·공공기관 관계자, 기업 실무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나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선납 요구는 기업의 투자 결정과 별도로 전력망 구축 비용과 정부·공공기관의 인프라 준비 문제를 따져볼 사안이다. 나 의원은 한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 약 25조원을 선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가 두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도체 투자는 기업의 사업성 판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 투입과 함께 전력·용수·부지 등 기반시설이 갖춰져야 실제 생산시설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호남 반도체 투자를 검증한다면 기업이 어떤 사업성 판단으로 투자에 나섰는지와 정부가 어떤 지원 조건과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시했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 국감 논의의 초점은 호남 반도체 투자 조건보다 이 회장과 최 회장을 국감장에 세울지를 놓고 맞서는 데 쏠려 있다. 과거 기업인 증인 채택을 '국회 갑질'과 '망신주기'라고 비판했던 국민의힘이 이번에는 두 총수의 출석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총수가 직접 답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 무엇인지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gamja@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