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최태원 "한일 뭉치면 세계 4위 경제권"···경제공동체로 교섭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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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한일 뭉치면 세계 4위 경제권"···경제공동체로 교섭력 키워야

등록 2026.09.08 14:47

신지훈

  기자

글로벌 교섭력 강화 위한 한일 협력 강조6조달러 시장으로 보호무역주의 대응에너지·반도체 공동 협력의 필요성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1일 일본 센다이 웨스틴호텔에서 열린 '제15회 한일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1일 일본 센다이 웨스틴호텔에서 열린 '제15회 한일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과 일본이 경제공동체를 구축해 국제사회에서 교섭력과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되는 상황에서 양국 시장을 하나로 묶으면 약 6조달러 규모의 세계 4위권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태원 회장은 8일 공개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이 하나로 뭉치면 약 6조달러 규모, 세계 4위의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어 더 강력한 교섭력과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제 질서나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과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돼 있었지만, 지금은 보호주의와 미·중 대립으로 공급망을 중심으로 시장이 분단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별 국가가 각자 대응하기보다 규모를 키워 협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면 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역시 거대한 시장"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최 회장이 한일 경제공동체를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꽤 오래전부터 품어온 아이디어"라며 2002년 서울대 공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계기로 구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론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실행에 옮기기 위해 SK그룹의 일본 투자를 늘렸으며, 6~7년 전부터는 일본 경제단체를 직접 찾아가 회합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한일 경제공동체의 실질적인 협력을 시작할 분야로 에너지를 꼽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데다 지정학적 갈등이 커질수록 가격과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양국이 에너지 구매부터 비축, 사용까지 공동으로 설계해 비용을 3~5%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양국 간 전력 송전선과 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장을 연결하고 주요 인프라와 서비스를 공동으로 활용하자는 구상도 내놨다. 최 회장은 "한일 시장을 연결하고 주요 인프라와 서비스를 공동으로 활용해 기초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를 육성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유럽연합(EU)의 솅겐 협정처럼 양국 간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역시 대표적인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한국과 일본의 산업 구조가 서로 보완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최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한국의 비중이 높은 반면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양국이 공급망을 결합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SK하이닉스의 해외 생산기지 투자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SK하이닉스는 한국 내에서 투자 계획을 많이 세우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며 "전 세계에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토지·전력·인재·생태계가 있는 장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디를 우선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는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SK 차원의 일본과의 AI 협력 가능성도 언급했다. 최 회장은 일본의 NTT와 도쿄일렉트론 등을 거론하며 일본 기업들과 AI 관련 투자와 협력 체계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에는 과거 양국 간 갈등이라는 현실적인 걸림돌도 있다. 최 회장은 제도적 차이와 역사 인식, 정치적 반감 등을 제약 요인으로 꼽으면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관리 강화 조치에 대해서는 "지금은 거의 무효가 된 과거의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이어 "서로 보복해봤자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고 양국 정치인들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한일 협력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최 회장은 중국을 "규모가 큰 이웃 국가"라며 배제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면서도 한국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더 가까운 만큼 한일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일이 협력한다고 해도 중국을 능가하거나 위협할 규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일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진다면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이점이 생기고 성장을 촉진하며 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강조했다.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한일은 국제적으로 규칙을 받아들이는 '룰 테이커'였다"며 "CPTPP 등을 통해 규칙을 만들어가는 '룰 세터'에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최 회장의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은 단순한 양국 간 교역 확대를 넘어 에너지·반도체·인프라·인적 교류를 묶어 시장 규모를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통상 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하자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공급망 재편과 AI 산업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결합해 비용을 낮추고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가 향후 논의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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