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마지막 골프(납회)를 하면서 첫 홀 버디를 기록하자 캐디가 발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10m 거리 2단 그린 위에 꽂힌 핀을 향한 공이 그림처럼 홀에 빨려 들어갔다.
털버디는 들어봤어도 개버디는 뭔가 싶었다. 개살구 개복숭아처럼 야생에서 자라 시거나 맛 없어 버리는 과일처럼 상금 없는 버디를 일컫는 골프계 속어(슬랭)였다.
다음 홀부터 내기에 들어간다고 정했기에 동반자 박수로만 만족했다. 털버디는 그린 주변 잔디에서 굴리거나 퍼트한 공이 홀에 들어가 버디로 이어진 경우이다.
버디는 모든 골퍼의 꿈이다. 그래서 "오늘 버디 많이 하세요" "올 한해 버디 많이 잡으세요"라는 덕담도 건넨다.
버디(Birdie)는 기준 타수(Par) 보다 1타 적게 해당 홀을 마무리한 스코어이다. 공이 새(Bird)처럼 훨훨 날아가는 데에서 유래했다. 사람 이름 뒤에 ~ie를 붙여 애칭으로 하듯이 Bird에도 붙인 사랑스런 표현이다.
성적이 좋으면 더 큰 새 이름으로 부른다. 기준보다 2타 적으면 이글(Eagle), 3타 적으면 앨버트로스(Albatross)이다. 앨버트로스는 지구에서 가장 큰 새로 파 5홀에서 두 번째 샷, 파4홀에서 첫 번째 샷으로 바로 공을 집어넣어야 한다.
앨버트로스 확률은 200만분의 1에 달한다. 기준 타수보다 4타, 5타, 6타 적으면 각각 콘도르(Condor), 오스트리히(타조·Ostrich), 피닉스(불사조·Phoenix)라고 부르는데 이론상 용어일 뿐이다.
골프를 하면서 가장 아플 때가 버디 찬스에서 3퍼트로 보기를 범할 때이다. 동반자들은 모두 3~4타로 끙끙대며 그린에 공을 올렸는데 혼자 2온으로 버디 퍼트를 남기면 흥분과 긴장이 극에 달한다.
내리막을 너무 의식해 핀에 미치지 못해 다시 퍼트를 시도하지만 이번엔 지나친다. 결국 오르막 퍼트도 실패해 파는 고사하고 통한의 보기에 그친다.
반면 3타만에 올라온 동반자가 파로 마무리하면 멘붕에 빠진다. 지난해 홀마다 널따란 그린 하나밖에(원 그린) 없는 골프장에서 30m 버디 기회를 잡았다가 4퍼트로 더블 보기를 범해 울 뻔했다.
버디를 하면 라인 읽는 데에 도움을 준 캐디에게 보통 팁을 준다. 조력과 상관없이 그냥 기분을 내기도 한다.
자주 동반하는 고수가 버디 5개를 잡았는데 그 때마다 팁을 건네기에 의아했다. 알고 보니 눈이 나빠 퍼트를 100% 캐디에 의존해 고맙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친절하고 정성스런 캐디에겐 한번 정도 팁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동반자가 그 어렵다는 사이클 버디를 하는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파3, 파4, 파5 연속 3개 홀에서 버디를 잡는 건데 홀 순서는 상관없다. 정식 영어로 Three birdies in a row인데 줄 버디 3개라는 뜻이다.
예전엔 사이클 버디를 기념하는 패도 만들었다. 연속 3개 홀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기에 여간 어렵지 않다.
고수로 통하는 한 친구는 골프 인생 30여년에 홀인원 2번, 사이클 버디 2번을 기록했다고 한다. 두 기록의 확률이 비슷한 셈이다.
또 다른 골프계 속어로 콘돔 버디가 있다. 이는 공이 컵 가장자리를 빙 돌고 아슬아슬하게 들어가는 버디이다. 말끔하지 않지만 어쨌든 버디라는 비유이다.
참고로 4번 연속 파는 아우디, 5번은 올림픽(오륜)으로 표현하는데 6연속 파는 `개OO'라고 부른다. 동반자로선 아무도 원치 않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골프 속어는 분위기를 살리는 도구로서 웃음을 남기되 찝찝하지 않는 선이 딱 좋다.
버디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 예전 직장에서 간부 친선골프대회가 열렸다.
난조를 보이던 최고경영자가 먼 거리에서 모처럼 버디 기회를 맞았다. 둘러싼 간부들의 간절한 기도로 결국 버디가 나왔다.
일제히 환호하며 물개 박수를 쳤다. 이도 잠시. 더 가까운 2m 정도 경사진 곳에서 퍼트를 남기고 중간 간부도 버디를 잡았다.
지켜보던 모든 간부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끝나고 물어보니 공을 살짝 빼려고 했는데 미스 퍼트가 그냥 성공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래서 너는 제대로 치는 것보다 잘못 치는 게 더 무섭다"는 말이 다른 간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프로대회는 버디와 파의 싸움이다. 대부분 레귤러(Regular) 온(On)을 한다. 결국 공을 핀 주변 2m 안팎에 붙이는 데에 달렸다.
핀 3m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시도하면 투어 프로, 하위 PGA 선수, 핸디 20 골퍼의 성공 확률은 각각 40%, 20%, 10% 정도라고 한다.
기네스 공식기록으로 한 라운드 최다 버디는 13개이다. 아담 해드윈(2017년)과 칩 벡(1991년)이 주인공이다. 연속 버디 국내 최다 기록 보유자는 조윤지(2015년 E1채리티오픈)와 고진영(2017년 제주삼다수마스터스)으로 8연속 버디였다.
공이 컵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세상 멈춘 듯한 전율이 느껴진다. 작은 공 하나가 그린 위를 굴러가 감동과 환희를 만든다.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보다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다." 우연히 버디를 잡을 확률보다 연습으로 실력을 키우면 버디 잡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
골프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이 멋진 버디로 우정과 추억을 나누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정현권 | 대한변리사회 미디어 전문위원 겸 지식재산뉴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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