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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고려아연 사태 1년···적대적 M&A의 '깊은 상흔'

산업 에너지·화학

고려아연 사태 1년···적대적 M&A의 '깊은 상흔'

등록 2025.09.14 07:00

김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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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MBK 이어지는 공방, 명분 잃은 '실리' 경쟁경영권 분쟁 소송 24건···재무구조 악화 후유증

강성두 영풍 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가운데 고려아연 노조원이 손핏켓을 들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강성두 영풍 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한 가운데 고려아연 노조원이 손핏켓을 들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고려아연의 기업 가치를 증가시킬 것"
(MBK파트너스, 2024년 9월 13일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발표하며 내놓은 입장문 中)

1년 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면서 나름의 명분을 내세웠다.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선진화 해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주장이었다.

고려아연은 즉각 반발했다. 비철금속 제련업에서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추고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권을 빼앗기 위한 명분이라는 지적이었다.

이후 고려아연은 주주총회에 앞서 사외이사 의장 제도와 집중투표제 등 주주 친화적인 개선 방안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영풍·MBK 측 역시 집행임원제 도입 카드를 내놓은 가운데 양측은 각자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으로 경쟁을 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분쟁이 길어질수록 이 같은 명분은 의미를 잃어갔다. 갈등이 격화되면서 양측은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더욱이 지난 3월 분쟁 막바지에 MBK가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로 여론 뭇매를 맞으면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겠다는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고려아연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결국 적대적 M&A를 막아냈다. 하지만 MBK 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사태 속에서도 여전히 고려아연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영풍 역시 마찬가지다. 양측이 서로 앞세웠던 명분 경쟁이 의미가 없어진 가운데 양측은 반복적인 공방전만 펼치고 있다. 여론과 시장에서는 피로감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지난 1년간 MBK와 영풍의 행보는 앞서 내세웠던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라는 명분에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속적인 공격과 소송으로 기업 가치는 갈수록 악화하고, 적대적 M&A로 양측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만 늘어가고 있는 탓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과 MBK·영풍 사이에 발생한 경영권 분쟁 소송은 24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지난 2월 MBK·영풍이 제기한 임시주주총회 결의취소 청구 소송과 5월 정기주주총회 결의취소 청구 소송, 6월 영풍이 재항고한 의결권행사허용 가처분 사건 등 5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적대적M&A가 지속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후유증도 겪었다. 고려아연의 지난해 말 별도 기준 총차입금은 4조713억원으로 2023년 말 4107억원에 비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15.8%에서 83.2%로 상승했고, 총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인 차입금의존도 역시 4%에서 33.2%로 올랐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원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D타워 MBK 정문 앞에서 열린 홈플러스 사태 해결 서울지역 공동대책위 발족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원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D타워 MBK 정문 앞에서 열린 홈플러스 사태 해결 서울지역 공동대책위 발족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고려아연이 올해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 등 호실적을 토대로 재무 부담을 낮춰가고 있지만, 이는 적대적 M&A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고려아연 임직원들의 고용불안과 스트레스가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내부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도 심각한 수준이다.

정기주총 이후 양측의 분쟁 양상은 기존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풍과 MBK 측은 현 경영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반복해 내는 가운데, 고려아연은 기업 경쟁력과 존재감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럴 듯한 명분보다 오직 경영권을 뺏겠다는 '실리'만 남은 모습으로, 시장과 여론의 피로감이 커진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대표적으로는 고려아연이 수년 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미국 사업에 대해 양측의 입장이 확연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앞서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의 미국 사업에 대해 수익성이 뚜렷하지 않는데 과한 투자를 했다며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미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세계 1위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에 전략광물 공급 MOU를 체결하자 미국 사업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영풍과 MBK 측도 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다. 미중 갈등의 핵심인 전략광물과 희소금속, 나아가 희토류 분야로까지 고려아연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MBK가 기업 지배구조 명분을 내세우기 어려워졌다는 점 또한 변수다. 지난 3월 MBK는 10년 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인수한 홈플러스를 기업회생 신청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앞두고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을 속였다는 의혹을 받아 검찰과 금감원의 압박이 더해지고 있다. 최근 MBK가 대주주인 롯데카드 해킹 사고로 인한 논란도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영풍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M&A를 시도한 지난해 9월 이후 과거 폐수 유출과 대법원 판결에 따라 58일간 조업을 중단했다. 또 대법원 판결 무렵에 황산가스 경보기를 끈 채 조업을 한 게 적발돼 환경부로부터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받았다. 영풍의 반발로 행정처분 이행이 미뤄지고 있는데, 영풍은 봉화군의 토양정화명령을 지난 6월 말까지 이행하지 못해 추가 제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풍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이 15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적자 규모를 3배 이상 키우며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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