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 등 글로벌 제약사, 대규모 감원·비용 절감 착수신약 개발 기업 글로벌 전략 변화 '예의주시'바이오시밀러 시장, 미국 정책 변화에 성장 기회 확대
특허절벽 현실화···빅파마 구조조정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머크(MSD)가 지난 2분기 역성장 충격에 빠지며 2027년까지 연간 30억달러(4조1500억원) 절감을 선언했다. 최근 전 세계 인력의 약 8%에 해당하는 6000여 명을 감원하는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머크는 올해 2분기 매출이 158억달러(약 22조원)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 감소했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밝혔다. HPV 백신 '가다실' 매출이 전년 대비 55% 감소한 11억달러(약 1조5000원)를 기록하며 타격을 줬다. 머크는 올해 회사 매출 전망치를 기존 641억~656억 달러에서 643억~653억 달러로 소폭 하향 조정했다.
머크의 이번 비용 절감 선언은 오는 2028년으로 예정된 항암제 '키트루다'의 특허 만료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키트루다는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으로, 지난 2분기 기준 회사 매출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다. 머크는 키트루다를 SC(피하주사) 제형으로 변경하고, 후속 파이프라인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특허 만료에 따른 충격을 피하려 애쓰고 있다.
이는 머크 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빅파마 역시 겪는 문제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는 최근 올해 2분기 매출이 122억6900만달러(약 17조원)를 기록했는데, 백혈병 치료제인 '스프라이셀' 등 레거시 포트폴리오 매출이 제네릭 경쟁 영향으로 14% 감소하며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하는 등 성장이 둔화됐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빅파마는 지난해부터 오는 2029년까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10개국 의약품 시장에서 특허 만료로 독점권을 상실하면서 2200억달러(약 306조원) 규모의 매출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측된다.
아이큐비아는 "향후 5년간의 특허 만료는 제네릭·바이오시밀러(복제약) 제조업체에 새로운 매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앞으로 5년 내 면역학 분야 절반 이상이 특허 만료로 복제약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글로벌 빅파마는 앞다퉈 비용 절감에 나선 상태다. BMS는 2027년까지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생산성 강화 전략'을 발표했고, 바이엘(Bayer)은 2026년까지 23억달러(약 3조1800억원)를 절감하기 위해 2년 전부터 1만 1000명 이상을 감원했다.
화이자는 지난 4월 2027년까지 77억달러(약 10조60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비용 절감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했다. 모더나는 향후 2년간 R&D 비용을 축소하는 등 운영 비용을 약 15억달러(약 2조원) 절감하는 목표를 세운 데 이어 지난달 말 전 세계 인력 약 10% 감축 계획을 공개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비용 절감 이유는 '미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자원 재분배'다. 현재 매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블록버스터를 대체할 만한 품목이 개발되는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 등을 통해 시간을 벌려는 전략인 셈이다. 이른바 '특허 절벽'을 앞두고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파이프라인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등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상용화가 될 만한 의약품을 밀어주고, 그렇지 않은 의약품은 후순위로 밀어 한시라도 빨리 후속 제품을 개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신약 개발사, 중국과 정면 대결
국내 신약 개발사는 글로벌 빅파마의 긴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빅파마에 대한 기술이전에 치중된 수익구조를 지닌 바이오텍 특성상 빅파마의 비용절감에 따라 자신들이 기술수출한 파이프라인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있어서다.
일례로 유한양행은 지난 3월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한 MASH 신약후보물질 'YH25724'의 기술이전 해지와 권리반환을 통보받았다.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이 "우선순위가 높은 자산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유한양행 측은 "개발 중단 및 권리 반환은 베링거 인겔하임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대웅제약은 지난해 말 미국 제약사 비탈리바이오에 경구용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DWP213388'의 기술수출 계약 해지 의향을 통보받았고, 올해 들어 티움바이오, 보로노이 등 주요 바이오텍도 각각 이탈리아, 미국 제약사에 기술반환을 통보받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빅파마의 이같은 긴축이 오히려 바이오텍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규제에 대해) 글로벌 빅파마는 R&D 투자 위축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R&D 확대가 예상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빅파마의 수익성이 높다고 지적해, R&D 지출을 확대해 회계상 이익을 축소하고 수익성 희석 효과를 노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특허절벽 시기가 도래하고 있어, 실제 R&D 투자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술 도입은 지속 증가할 전망"이라고 했다.
다만 빅파마의 기술 도입 움직임 수혜를 한국 기업이 볼지는 명확하지 않다. 최근까지 글로벌 빅파마가 중국에 투자를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중국의 혁신약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특히 상하이에서의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바이오 기술 경쟁력과 신속한 개발 능력이 글로벌 제약사들의 '특허 절벽'을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된 것이 주요 배경"이라고 짚었다.
경영 컨설팅기업인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는 지난달 31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 심리가 점점 더 위험을 회피함에 따라 자금 조달 패턴은 초기 단계의 벤처에서 더 성숙하고 임상적으로 검증된 프로젝트로 전환되고 있다"며 "이러한 차세대 고부가가치 모달리티에서 중국의 지배력은 2019년 이후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모든 바이오텍 VC 및 PE 자금의 75% 이상을 중국이 받은 이유 중 하나"라고 짚었다.
올해 상반기 중국 제약바이오 회사는 48건의 해외 기술이전을 발표했는데, 선불금과 잠재적 마일스톤 금액을 합친 총 기술이전 규모는 337억달러(약 47조원)에 달해 상반기 10건, 총 87억6000만달러(약 12조원) 규모에 그친 한국보다 세 배가량 많았다.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 박차
국내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업은 다가오는 특허절벽을 기회로 보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새로운 기업의 시밀러 사업 진출도 이뤄지고 있다.
셀트리온은 2028년까지 신규 및 듀얼 페이로드를 적용한 ADC 파이프라인 9개, 다중항체 4개 등 총 13개 신약 임상에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후보물질 'CT-P44'를 비롯해 4건의 임상 3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CT-P51' 글로벌 임상 3상시험의 환자 모집을 시작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최근 인적분할 관련 간담회를 통해 향후 20개 이상의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 총 11종의 바이오시밀러 제품 및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4월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SB27'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시작했다.
종근당, 동아에스티에 이어 지난달 대웅제약까지 바이오시밀러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전통 제약사의 진출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빈혈치료제 '네스프' 바이오시밀러 '다베포에틴알파BS'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이뮬도사'를 개발해 수익을 내고 있다. 대웅제약은 자가면역치료제 '듀피젠트'를 첫 파이프라인으로 선정했다.
최근 미국 규제당국의 정책 변화로 바이오시밀러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도 시밀러 기업에 호재로 여겨진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의 상호교환성 인증을 위한 임상 가이드라인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오리지널 개발사들에 대한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들의 강도 높은 특허 도전이 예상된다"면서 "또 CMS가 약가 협상 제도를 도입하면서 휴미라와 같은 (특허 연장) 전략으로 20년씩이나 시장을 독점하는 케이스는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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