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3-DXd·이보네시맙 잇단 임상 실패로 시장 재편리가켐바이오·에이비엘바이오 등 신약 파이프라인 주목유한양행 렉라자, 경쟁자 부재로 매출 반등 전망
4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가 ASCO 2025에서 이뤄진 항암제 임상 3상 발표에서 속속 통계적 유의성 달성 실패 소식을 알렸다.
글로벌 제약사, 승인 코앞서 '발목'
머크·다이이찌산쿄는 최근 HER3 표적 항체-약물 접합체(ADC) '파트리투맙 데룩스테칸(patritumab deruxtecan, HER3-DXd)'에 대한 미국 FDA 허가 신청을 자발적으로 철회했다.
머크와 다이이찌산쿄는 HER3-DXd에 대해 EGFR 변이 양성의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NSCLC) 환자 중, 두 가지 이상의 전신 치료를 받은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 허가 신청을 했으나 이를 철회했다. 이번 자진 철회는 'HERTHENA-Lung02' 임상 3상의 전체 생존기간(OS)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충족하지 못하며 이뤄졌다.
회사는 이번 철회가 지난해 6월 수령한 제조시설 관련 보완 요구 공문(CRL)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임상 2상에서 객관적 반응률(ORR) 29.8%를 기록하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 승인(Breakthrough Therapy Designation)을 통해 2023년 말 허가 신청이 이뤄졌던 HER3-DXd는 위탁생산 시설 실사 과정에서 문제가 지적되며 지난해 승인이 보류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최초의 ADC로 기대를 모으던 HER3-DXd가 CRL 문제에 따라 승인 지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당초 다이이찌산쿄가 임상 데이터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며 머크와 함께 재신청을 준비한 까닭이다. 그러나 지난 23일 ASCO 2025를 앞두고 HER3-DXd 초록이 공개되며 임상적 이점과 관련한 의문이 새롭게 떠올랐고, 결국 해당 문제로 최종 승인 문턱에서 걸려 넘어졌다.
지난해 세계 의약품 매출 1위를 기록한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대항마로 주목 받던 서밋테라퓨틱스의 이중항체 항암제 '이보네시맙' 역시 지난달 30일 ASCO에서 발표된 임상 3상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냈다.
서밋테라퓨틱스는 중국 아케소와 공동으로 개발 중인 PD-1·VEGF 이중항체 후보물질 이보네시맙과 화학요법 병용 요법 후기 임상에서 주요 평가변수인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충족시켰지만, 전체 생존기간(OS)에서는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FDA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전체 생존기간 이득이 시판 허가를 위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며 사실상 승인 신청 지연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발표 당일 서밋테라퓨틱스 주가는 30.5% 급락했다.
차세대 항암제 개발사 '반사이익'
이처럼 주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이 차세대 모달리티 기반 항암제 개발에 고배를 마시며 시장의 관심은 다른 차세대 항암제 개발사에 쏠리는 모양새다. 특히 ADC와 이중항체 기반 항암제 개발 국내 기업이 임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보일 경우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미국 넥스트큐어와 공동 개발 중인 B7-H4 표적 ADC 'LNCB74'의 임상 1상 중간 진행 결과를 ASCO 2025에서 발표했다.
LNCB74는 B7-H4 단백질을 표적하는 항체에 강력한 세포독성 약물인 MMAE(Monomethyl Auristatin E)를 결합한 구조다. 리가켐바이오의 독자적인 콘쥬올(ConjuALL)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혈중 안정성과 암세포 특이적 약물 방출을 동시에 달성하도록 설계됐다. 미국에서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한 단독요법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며, 첫 환자 투약은 지난달 초 시작됐다.
넥스트큐어 측은 전임상 연구를 기반으로 LNCB74의 유망한 안전성 프로파일과 항종양 활성을 강조하며, B7-H4가 종양에서 높은 발현율을 보이지만 정상 조직에서는 발현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표적 치료제로서의 잠재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임상 3상을 마친 HER2 타깃 ADC 'LCB14'는 올해 중국 품목허가 신청(BLA)을 진행할 계획으로, 내년 상용화를 기대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면역항암제 'ABL103'에 대한 임상 1b·2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4일 승인받았다.
ABL103은 4-1BB 기반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T(Grabody-T)'가 적용된 파이프라인 중 하나다. 그랩바디-T는 종양 미세환경에서만 면역 T 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기존 4-1BB 단일항체의 간 독성 부작용을 줄이고, 항종양 활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ABL103 단독요법에 대한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며, 최근 IND 승인에 따라 키트루다, 탁센 삼중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1b·2상이 한국과 미국에서 추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임상 1b·2상은 삼중 병용요법의 최적 용량(Optimal Dose)을 확인하기 위한 안전성 관련 2개 파트(Safety lead-in Part)와 용량 확장 1개 파트(Dose Expansion Part)로 구성됐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를 통해 ABL103 삼중 병용요법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평가해 나갈 계획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외에도 이중항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임상 및 비임상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ABL001'(Tovecimig)(VEGF-A x DLL4), 'ABL103'(B7-H4 x 4-1BB), 'ABL202'(ROR1 ADC) 등 8개 파이프라인에 대한 임상 프로젝트가 미국, 중국, 호주 및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ABL001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개발사의 빠른 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 지정을 받았다.
아이맵(I-Mab)과 공동 개발 중인 ABL111은 연내 니볼루맙(Nivolumab) 및 화학치료제 삼중 병용요법에 대한 평가를 위한 임상 1b상의 탑라인(Top-line) 데이터를 발표할 예정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전문 기업으로 알려졌지만 ADC 개발에도 활발히 뛰어들고 있다. 리가켐바이오와 협력해 항-ROR1 ADC 'CS5001'를 공동 개발 중이며, 오는 10일 제4회 월드 ADC 아시아 서밋에서 차세대 ADC 개발 전략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비임상 단계의 이중항체 ADC인 'ABL206'를 중심으로 이중항체 ADC의 장점 등을 알릴 계획이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지난해 이중항체 ADC 개발을 공식화한 데 이어, 최근에는 ABL206과 ABL209의 임상 개발을 전담할 독립 법인 네옥 바이오의 설립을 마무리했다"면서 "두 파이프라인에 대한 IND 신청은 올해 말 진행할 예정이며, 이후 본격적인 임상 개발 및 글로벌 사업화는 네옥 바이오가 전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렉라자, 비소세포폐암 강자 '부각'
머크·다이이찌산쿄의 HER3-DXd와 서밋테라퓨틱스의 이보네시맙 모두 EGFR 변이형 비소세포폐암(NSCLC) 환자를 주요 타깃으로 삼았던 만큼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 신약 '렉라자'(글로벌 제품명 라즈클루즈)도 당분간 새로운 경쟁자 없이 매출 반등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렉라자는 지난해 존슨앤드존슨(J&J)의 리브리반트와 병용요법으로 FDA 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유한양행이 J&J에 받는 렉라자 판매 로열티는 전체 판매 수익의 약 10%로, 이 중 40%는 원개발사인 오스코텍에 배분하고 나머지 60%를 유한양행이 갖는 구조다.
유한양행의 올해 1분기 라이선스 수익은 총 4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보다 낮았지만, 지난달 말 일본 내 상업화가 개시되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1천500만 달러(약 207억 원)를 수령한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렉라자는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며 시장의 입지도 넓혀가고 있다. 올해 유럽폐암학회 연례학술대회(ELCC 2025)에서 발표된 MARIPOSA 임상3상 연구의 최종 OS 데이터에서는 기존 표준요법인 타그리소 단독요법(38개월) 대비 1년 더 늘어난 최대 50개월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지난달 ASCO에서는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임상 2상 중간 결과를 공개해 피부 부작용 발생률을 기존에 비해 절반 가까이 낮췄다고 알렸다.
OS 증가로 글로벌 표준요법 등극 기대감을 높인 데다가 투약에서 걸림돌로 꼽히던 부작용 발생률까지 낮추며 채택률 증가에 따른 유한양행의 로열티 수입 증가가 전망된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가 임상에서 아쉬운 결과를 냈지만, ADC나 이중항체 등 차기 모달리티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크다"면서 "이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새롭게 기술이전을 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서구 제약회사는 중국에서 개척된 PD-1·VEGF 이중특이성 항체로 알려진 신약 기술에 접근하기 위해 많은 거래를 맺는 추세다.
화이자는 지난달 중국의 3SBio와 파트너십을 맺고 12억5000만달러(약 1조7147억원)를 선불로 지불하고 개발 성과에 따라 최대 48억달러(약 6조5836억원)를 더 내기로 했다. 키트루다를 보유하고 있으나 경쟁 위협을 받고 있는 머크는 지난해 11월 중국 라노바 메디슨(LaNova Medicines)에서 초기 암 치료제를 최대 33억달러(약 4조5262억원)에 인수했다.
BMS는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와 파트너십을 맺고 경쟁사인 머크의 베스트셀러 약물인 키트루다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암 면역요법을 개발하기 위해 최대 111억달러(약 15조2247억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BMS가 투자한 약물인 'BNT327'은 광범위한 소세포폐암 및 비소세포폐암에서 1차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1000명 이상의 임상시험 환자가 이 약물로 치료받은 상태다. BNT327은 바이오엔테크가 올해 초 중국의 바이오테우스(Biotheus)에 선불 8억 달러(약 1조972억원)와 개발 성과에 따라 최대 1억5000만달러(약 2057억원) 지급을 조건으로 인수한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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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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