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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 6일 근무'의 부활···여전한 '인고의 착각'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차재서의 業스트림

'주 6일 근무'의 부활···여전한 '인고의 착각'

등록 2024.04.26 08:08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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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인고의 착각'

힘들고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만큼 훗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란 믿음. 허태균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교수는 저서 '어쩌다 한국인'에서 우리 사회가 떠안은 여러 문제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이를 꼽았다.

한국 사람은 마치 고난의 시간이 성공에 필수적이고, 그런 고생이 성공을 담보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럴 만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젊었을 때 고생한 과거를 갖고 있다.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정치인, 기업가, 학자, 연예인도 대동소이하다. 모든 성공 스토리의 시작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을 때부터다. 이를 접하는 많은 주변인의 머릿속엔 성취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노력과 투자가 부족했다고 자책한다.

허태균 교수는 사회 속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이 현상이 두 가지를 간과한 데서 출발한다고 분석했다. 세상에 그런 고생을 한 사람은 부지기수인데도 성공한 이는 극히 일부라는 것, 성공에 고생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고생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바로 그 대목이다.

그리고 이는 불안을 다스리려는 '착각적 통제감'과 자신은 무조건 잘될 것이란 '비현실적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짚었다. 무엇이라도 한다면 언젠간 이뤄질 것이란 기대에 무작정 시간을 쏟다가 삶을 허비한다는 의미다.

책의 내용을 소개한 이유는 IT와 함께 최첨단을 달리는 지금도 우리가 같은 유의 생각을 꺾지 않고 있어서다. 산업계 전반을 떠들썩하게 만든 '주 6일 근무제' 얘기다.

'재계 1위' 삼성의 임원은 지난주부터 주말을 반납하고 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를 택해 회사에 출근하는 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지원·개발부서 일부 임원을 중심으로 주 6일 근무가 이뤄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나머지 인원도 동참하게 됐다. 삼성SDI와 전기, 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스타트를 끊은 것은 SK였다. 올해 들어 오너가(家)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중심으로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재정비한 이래 격주로 진행하는 '토요 사장단 회의'를 재개했다. 2000년 7월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지 24년 만이다.

삼성과 SK가 주말도 없이 일하게 된 것은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이 지속되면서 올해 실적을 낙관할 수 없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다른 기업도 비상이 걸렸다. 재계 대표 기업이 움직였으니 우리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마음에 없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침대 업계 1위 시몬스도 임원에게 주말 출근을 권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어디까지나 '자발적'이라고 하니 전혀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어렵다는데, 직원보다 더 나은 처우를 받으면서도 '계약직'인 임원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진부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든 소통할 수 있고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자리를 조금씩 대체하고 있는 현재, 회사가 구시대의 유물을 다시 꺼내든 것처럼 비쳐서다.

산업화 초기였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얼마나 빠르게 인프라를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느냐가 곧 국가와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시기였고, 이를 위해선 보다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 기성세대와 선배들이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오늘날의 경제발전을 일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니다. 잘 만든 제품과 서비스 하나가 기업에 경쟁력을 부여하는 세상이 됐다. 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은 '아이디어'이며, 직원 개개인이 이를 도출하려면 격한 업무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효율적 수면이 기억력을 끌어올리고, 뇌의 휴식이 창의성을 높인다는 간단한 원리처럼 말이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선 근로 시간을 '주 4일'까지 줄이려는 논의가 한층 진전을 보이는 상황이다.

또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2022년 기준 OECD 평균(1752시간)보다 긴 1901시간을 근로에 쓰지만 시간당 생산하는 가치는 49.4달러로 평균값(64.7달러)의 75%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뚜렷한 방향성도 없이 당장 무엇이라도 하라며 사람을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 놓는 게 과연 생산성을 고려한 판단인지 의문이다. 가족과의 시간, 건강처럼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상하려는지.

물론 회사를 위해 임원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대의 앞에 어느 누가 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나. 그저 이들에게 들이닥친 '인고의 시간'이 기업의 재도약을 담보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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