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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주주자본주의라는 '고양이'와 인류의 미래라는 '생선'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주주자본주의라는 '고양이'와 인류의 미래라는 '생선'

등록 2023.12.22 10:13

주주자본주의라는 '고양이'와 인류의 미래라는 '생선' 기사의 사진

지난 11월 17일 샘 올트먼은 그가 창업한 오픈AI 이사회로부터 해고됐다 닷새 만에 복귀했다. 샘 올트먼을 해고한 이사회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주요 투자자들과 직원들의 압력에 손을 든 것이다. 오히려 샘 올트먼 퇴출을 주도했던 일리야 수츠케버는 이사회에서 사퇴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가 이사회에 의해 해고되고 복귀하는 과정은 우리들에게 생경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답을 오픈AI의 독특한 기업거버넌스에서 찾을 수 있다. 오픈AI는 2015년 비영리법인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2019년 사업자회사를 설립할 당시 이윤 창출의 속도와 규모를 제한하는 이른바 '수익상한제'를 두었다. 즉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한 가공할 혜택과 아울러 그 위험성도 동시에 고려하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주식회사와는 달리 오픈AI 기업거버넌스에는 인공지능 상업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견제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첫째, 오픈AI GP LLC라는 영리 자회사를 오픈AI Inc라는 비영리 모회사가 완전히 통제한다. 비영리 모회사의 이사회가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며, 영리 자회사에 130억 달러를 투자해 49% 지분율을 보유한 마이크소프트조차도 모회사 이사회 의석을 갖지 않는다. 자본 출자와 의사결정의 비례성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이사회는 비영리성을 바탕으로 안전한 범용인공지능(AGI) 발전을 위한 수탁자책무(Fiduciary duty)를 다해야 한다. 이 역시도 주주에 대한 수탁자책무를 강조하는 일반적인 주식회사 이사회와 그 결을 달리 한다. 따라서 오픈AI 이사회는 주주만이 아닌 인류 전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모두의 이익과 혜택을 고려하여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수탁자책무다.

셋째, 이사회 멤버의 과반수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로 구성되며 이들 사외이사는 지분을 보유하지 않는다. 심지어 샘 올트먼도 오픈AI 지분을 전혀 보유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지분 보유를 경제적 유인장치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를 포함하여 직원들에게 배분될 이익도 그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수익상한'의 원칙이 그것이다. 이 한도를 초과한 이익은 비영리 모회사에 환원되는 구조이다.

다섯째, 이들 이사회는 AGI 달성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 이를 결정함에 있어서 다양한 부작용과 예상되는 외부화 문제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인공지능 발전 속도를 조절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오픈AI의 기업거버넌스는 전통적인 '주주자본주의'의 그것과 다르다. 이사회의 주주 대표성, 수익 극대화, 인센티브 장치로서의 지분 보유 등을 발견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적 거버넌스 원칙과 부합하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에게 가공할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 발전에 있어서 수익성 및 효율성의 관점뿐만 아니라 인류와 사회 공동체 전반에 미칠 '외부성' 측면까지 고려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샘 올트먼 해고와 복구 과정의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다만 외신 보도들을 종합해 보면 오픈AI 조직 내에서 수익성을 강조하는 '원리적 주주자본주의자'들과 인류의 미래까지 동시에 고려하여 인공지능 발전을 모색하려는 'ESG자본주의자'들 사이의 의견대립이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샘 올트먼이 복귀함으로써 주주자본주의자들의 승리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여 진다.

주주자본주의자들은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의 효율적 배치와 순환 등 그럴듯한 순기능만을 과대포장하여 제시하지만, 그 과정에서 탐욕적이고 근시안적인 수익추구로 인해 발생하는 외부화 등 다양한 시장실패의 역기능은 상대적으로 축소하거나 감춘다. 돈에 내재하는 '내로남불'의 근본속성 때문이다. 필자는 이 탐욕적 주주자본주의 기제가 인류의 미래에 미칠 가공할 영향력을 스스로 규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수백년간 주주자본주의 발전의 궤도 속에서 과학기술의 발전, 인류에의 혜택이라는 명분하에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되돌리기 어려운 기후 재앙을 야기한 화석에너지 확산이 필자 판단의 근거 중 하나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을 둘러싼 상업화의 문제도 그것과 닮은꼴인 것 같아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류는 또 다시 주주자본주의라는 '고양이'에게 인류의 안전과 미래라는 '생선'을 맡겨 놓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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