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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롯데헬스케어 기술탈취 논란, 빠른 결론이 필요하다

오피니언 기자수첩

롯데헬스케어 기술탈취 논란, 빠른 결론이 필요하다

등록 2023.03.31 14:44

수정 2023.03.31 14:50

김민지

  기자

reporter
# 현금인출기(ATM)를 만드는 '이화 ATM(이하 이화)'은 ATM에 들어가는 '카세트(돈을 넣는 상자)'를 자제 개발해 실용신안까지 출원했다. 그런데 이미 비슷한 제품이 '금강 ATM(이하 금강)'에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화는 금강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며 법률 사무소를 찾아간다.

금강은 법정에서 "해당 기술은 이미 미국에서 공개된 오픈소스고 실용신안을 출원하기 전 이미 '리더스'라는 업체가 같은 카세트를 출시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으로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금강은 기존 계약이 모두 끊기고 부도 위기에 몰린다.

얼마 뒤 금강이 마지막 한 대 남은 리더스 제품을 찾아내면서 승소하지만, 그 사이에 이화는 신규 계약을 전부 따내는 데 성공한다. 이화 관계자는 "패소는 이미 예상했던 결과"라며 "금강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진 꼴"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지난해 막을 내린 법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실용신안 특허와 관련해 기업 간 다툼을 다룬 5화 내용이다. 처음에는 이화의 억울함에 이입하던 시청자들은 사건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금강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종반엔 이화를 향한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지난 1월 미국 CES 2023에 참가한 롯데헬스케어와 알고케어 사이의 공방은 이 사례와 꼭 맞아 떨어진다. 이들은 개인 맞춤형 영양제 분배기(디스펜서·Dispenser)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지난 1월 롯데헬스케어가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을 그대로 베꼈다며 사건의 전말을 편집한 게시글을 직접 작성해 배포했다. 또 롯데헬스케어에 모든 법적 조치를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롯데헬스케어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디스펜서가 이미 해외에서 널리 쓰이고 있고 이를 자체적으로 사업 방향에 맞게 참고했기 때문에 알고케어의 기술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2010년대부터 디스펜서를 가정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처방약을 제때 복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목적인데, 영양제 섭취를 위해서도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자체 앱에 다양한 정보를 기입하는 것도 일반적인 흐름이다.

알고케어는 '나스(Naas: Nutrition-as-a-service)'라고 불리는 서비스 모델을 2021년 CES에서 처음 선보였다. 디스펜서를 활용하고 앱을 통해 정보를 기입해 사용자에게 적정한 양의 영양제를 주는 것인데 앞서 언급한 해외 사례들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알고케어는 여기에 4㎜로 가공한 특수 영양제를 쓴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양제 알약이 미세한 만큼 섭취 용량 조절도 세밀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의 '드리코스'가 개발한 '플러스미'와 유사하다. 플러스미는 5㎜로 가공한 영양제를 디스펜서를 통해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상용화 시점은 2019년으로 알고케어보다 2년이나 앞선다.

롯데헬스케어는 '필키'라는 디스펜서를 사용하고 자체 커머스 앱과 연동해 사용자에게 적정한 영양제를 제공한다. 알약 크기를 특수하게 가공하는 것은 없고 시중에 나온 알약을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해외 사례와 큰 차이는 없다. 논란이 되는 지점은 자체 상품을 출시하기 전 알고케어와 투자논의를 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중기부와 공정위에서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의 모방 여부만 놓고 보면 이화가 금강에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과 묘하게 겹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알고케어는 드라마에서처럼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법의 판단'을 선택하는 대신 감정에 호소하며 '여론의 심판'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알고케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사건 내용을 드라마와 대입해봤을 때 이화가 알고케어, 금강이 롯데헬스케어의 입장이지만 롯데헬스케어가 '롯데'라는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건의 진위가 드러나기도 전에 '판정승'을 내버리는 것이다.

아직 국내 소비자들은 알고케어의 디스펜서도, 롯데헬스케어의 디스펜서도, 해외의 디스펜서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 사안은 중기부와 공정위가 조사 중이다. 불필요한 논쟁은 양쪽 기업에 불확실성을 더 키울 뿐이다. 무턱대고 몰아가며 마녀사냥을 하기 보다는, 중기부와 공정위의 판단을 기다려봐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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