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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톡신 균주공방, 누구에게 득인가

오피니언 기자수첩

톡신 균주공방, 누구에게 득인가

등록 2023.02.17 15:45

수정 2023.02.17 16:00

유수인

  기자

reporter
약 7년간 끌어온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국산 보툴리눔 톡신 소송이 결국 끝을 맺지 못한 채 장기전에 돌입했다. 소송의 승패에 따라 균주 '공정기술 침해' 여부는 분명해지겠지만 그 사이 이들 기업과 국산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위상이 흔들리진 않을까 우려스럽다.

보툴리눔 톡신은 주름 개선 등 미용과 성형 시술에 쓰이는 제제다. 전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하는 미국 엘러간(애브비에 인수)의 '보톡스' 제품이 대표적이다. 이 시장은 매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양사간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시장지배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데 있다.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메디톡스가 독과점적 시장지위를 바탕으로 고속 성장해왔다. 메디톡스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균주를 들여와 2006년 국내 최초 및 세계 4번째로 A형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상업화에 성공,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국내 톡신 매출 1위 기업을 유지했다.

메디톡스 입장에서는 후발주자인 '나보타'에 밀릴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나보타가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던 만큼 '균주 출처'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자연상태에서 구하기가 어렵고, 치사량이 높은 생화학 무기로 사용될 수 있어 국가간 이동이 제약된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자사의 전 직원들을 통해 균주와 제품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훔쳐 톡신 사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2017년 1월 산업기술유출방지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하고, 같은 해 10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막고자 2019년 미국에서도 소송전을 벌였다.

대웅제약은 캐시카우인 보툴리눔 톡신 제제 사업을 키워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거세게 대응했고, 미국에서 진행한 소송과 국내 형사소송 및 민사소송의 판결이 모두 엇갈리며 양사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특히 이달 10일 내려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민사소송 1심 판결에서는 대웅제약의 영업 기밀을 침해 혐의를 인정,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는 지난해 2월 나온 형사소송 판결과 정반대여서 양사의 날 선 공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술로 먹고 사는 제약바이오기업에게 지적재산권 보호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들의 싸움이 감정적으로 변질됐고, 너무 소모적이라서 결국 양사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대웅제약은 해당 소송에 대한 판결 관련 정보를 공시하기 전에 보도자료를 먼저 배포해 지난 15일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예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날 대웅제약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사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명백한 오판임이 확인됐다"며 "편향적, 이중적, 자의적 판단으로 가득찬 오류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집행정지의 당위성을 담은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메디톡스는 이튿날 보도자료를 내고 "1심 판결문을 수령해 검토한 결과,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 당연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웅의 불법 행위가 드러난 이상 계속된 허위 주장은 대웅에 더 큰 피해를 가져 올 것"이라며 "이제는 아집을 버리고 처절한 반성을 통해 K-바이오의 신뢰 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막대한 소송비용도 양사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 2020년 미국 소송 비용으로만 350억원 정도를 투입한 바 있다. 이번 1심 판결에 대한 강제집행정지 신청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메디톡스는 법적 분쟁 장기화 등의 이슈로 오랫동안 주가 부진을 경험했고, 2018년 한때 4조원을 넘던 시가총액은 1조원 정도로 떨어졌다. 2020년엔 36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기도 했다. 소송비 부담에 내부적으로는 비용 최소화 등 긴축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의 소송전으로 국내 톡신 시장 1위 자리도 휴젤에게 내어준 상태다.

게다가 휴젤이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자 메디톡스는 이 회사를 상대로도 지난해 3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두 기업이 밥그릇 쟁탈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은 몇 년 사이에 이들의 자리는 제3의 기업에게 넘어갔다. 이 쟁탈전이 국내 전체 기업들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다면 누군가가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한국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한 신뢰와 위상도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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