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공장을 구동하는 AI의 구축과 한국 제조업

전문가 칼럼 양승훈 양승훈의 테크와 손끝

공장을 구동하는 AI의 구축과 한국 제조업

등록 2026.09.10 15:00

professional

AI로 문서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익숙해졌다. 이제 연구자들은 AI를 이용해 실험 장비를 조작하는 방법을 시험하고 있다.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은 지난 8월 27일 '모델 하드웨어 표준'(MHS)을 연구용으로 사전공개했다.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AI를 통해 여러 장비를 함께 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통 규격이다. 현미경이나 로봇팔을 다루는 일까지 자연어로 지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실험실이나 공장에서 여러 장비를 연결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제조사마다 조작 방식이 다르고 장비를 도입한 시기에 따라 소프트웨어도 제각각이다. 담당자는 설명서를 읽고 장비별로 연결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다. MHS 개발진은 장비의 상태를 읽거나 작동 조건을 바꾸는 명령을 공통된 방식으로 정리했다. 사용자는 장비의 특성과 조작 가능한 범위, 안전 한계도 일상적인 언어로 적어둘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장비의 작업 순서를 정하고 결과에 따라 조건을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장비를 연결했다고 곧바로 숙련자처럼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앤트로픽이 공개한 제넨테크의 초기 실험에서는 AI를 통한 액체 혼합 과정에서 기포가 생겼다. 같은 용기에서 AI가 작업을 재시도하면서 기포가 오히려 더 늘었다. 연구진은 깨끗한 용기로 옮기고 혼합 횟수를 줄이도록 지시한 뒤, 그 경험을 재사용할 수 있는 작업 지침으로 정리했다. 결국 사람이 나서서 현장에서 익힌 사소한 요령까지 설명해야 안정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은 초기 시험 단계다. 앤트로픽은 소스코드 공개를 예고하고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특정 AI 모델에 한정하지 않는 설계도 밝혔다. 물론 제조업 종사자들은 이미 OPC UA 같은 표준으로 서로 다른 장비의 정보를 주고받아 왔다. MHS의 가능성을 살피려면 이런 기존 체계와 어떻게 연결할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당장 공장 전체를 맡길 수 있다고 기대하기보다는, 어느 작업부터 시험하고 어떤 조건에서 사람의 확인을 거칠지 구체적으로 정할 시점이다.

한국 제조업에서도 이 개발 과정에 참여할 방법을 찾아볼 만하다. 생산 현장에서 엔지니어들은 설비를 조정하고 불량의 원인을 찾으며 고장 난 기계를 다시 가동해 왔다. 같은 장비라도 소재와 공정에 따라 다르게 다뤄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이런 지식을 장비 설명과 시험 절차로 정리해 개발진에게 제안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쓸 만한 규격을 만들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다. 이게 현장 암묵지를 작업 지침과 시험 절차라는 형식지로 옮기는 과정의 전형적인 예이다.

우선 장비업체와 생산기술자, 연구자가 함께 작은 시험부터 해볼 수 있다. 검사장비와 이송장치를 연결하고 신호가 끊기거나 부품 위치가 어긋났을 때 작업을 중단하도록 조건을 정하는 식이다. 안전한 시험 환경에서 반복해 확인한 뒤 연결 프로그램과 시험 결과를 개발진에게 제시하면 된다. 국내에서 많이 쓰는 장비에는 어떤 연결 기능이 필요한지, 현장 작업자가 확인해야 할 정보는 무엇인지도 제안할 수 있다. 참여가 성사된다면 이런 구체적인 경험을 근거로 규격의 수정과 검증에 관한 논의에 끼어들어야 한다.

기여한 만큼 지분을 확보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공동개발에 앞서 공개할 연결 프로그램과 시험 절차, 기업 내부에 남겨둘 공정 정보를 구분하고 성과의 이용 조건을 합의해야 한다. 국내 제조업체가 개발 결과를 계속 수정하고 다른 현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비 연결과 유지보수, 공정별 응용 서비스를 국내 업체의 사업으로 이어갈 수 있다. 현장을 시험 장소로 제공하는 데서 그치면, 다음번 설비 변경 때도 외부 개발자에게 같은 일을 맡겨야 할 수 있다.

정부도 제조 AI 사업에서 AI를 통한 하드웨어 구동 표준 구축 활동에 예산을 배정할 필요가 있다. 엔지니어가 현장 경험을 문서로 정리하는 시간, 오래된 장비의 연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비용, 안전 조건을 반복해 확인하는 비용을 사업비에 포함해야 한다. 중소 장비업체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면 업종별로 시험 환경과 개발 인력을 함께 마련할 수 있다. 한국의 제조업 종사자들은 오랫동안 기계를 만들고 고치며 생산해 왔다. 이제 그 경험으로 AI와 기계를 연결하는 프론티어에 서는 것도 고려해 볼 때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