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폭스바겐 투아렉, 내연기관 황혼기에 바치는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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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투아렉, 내연기관 황혼기에 바치는 찬가

등록 2026.09.01 14:59

권지용

  기자

프리미엄 디젤 SUV의 마지막 장식심플함 속에 숨겨진 기술의 정점V6 3.0 TDI 엔진의 묵직한 존재감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막상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플래그십 모델과의 이별을 마주하면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집니다. 2002년 처음 등장해 24년간 폭스바겐 기술력의 정점이자 프리미엄 디젤 SUV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던 투아렉이 화려했던 여정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번에 만난 모델은 역사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입니다. 박수칠 때 떠나는 법이라지만, 완성도가 이토록 무르익은 녀석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짙게 남습니다.

투아렉이라는 이름은 자동차 역사에서 꽤 독보적인 궤적을 그려왔습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벤틀리 벤테이가, 아우디 Q7 등 내로라하는 초호화 SUV들과 뼈대(MLB 에보 플랫폼)를 공유하면서도 대중 브랜드의 이름표를 달고 묵직한 실력 하나로 승부해 온 프리미엄 SUV였기 때문입니다. 과거 보잉 747 여객기를 끌며 강력한 힘을 증명했던 퍼포먼스라든지, '레이스 투아렉' 모델로 2009~2011 다카르 랠리 3연패라는 금탑을 쌓아 올렸던 명성은 투아렉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선 거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폭스바겐 투아렉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폭스바겐 투아렉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

파이널 에디션이라는 이름부터 무게감이 있습니다. 보통 특별판이라면 더 화려한 디자인이나 특별한 장비를 앞세우기 마련인데, 투아렉은 이름 자체가 이 차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죠. 차체 곳곳에 새겨진 'FINAL EDITION' 레터링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그렇다고 투아렉이 갑자기 요란한 끼를 부리지도 않죠. 요즘 SUV들이 거대한 그릴과 복잡한 캐릭터 라인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것과 달리 투아렉은 에디션이라고 해서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차체 자체가 워낙 묵직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절제가 잘 어울립니다.

오늘날 투아렉의 가장 큰 필살기는 단연 V6 3.0 TDI 디젤 엔진입니다.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61.2kg·m를 내는 강력한 심장은 8단 자동변속기와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4모션과 결합해 2.3톤이 넘는 차체를 가볍게 밀어냅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4기통 디젤과는 확실히 다른 매끄러운 회전 질감이 전해지고, 속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추월을 위해 페달을 깊게 밟아도 엔진이 힘겨워한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전기차처럼 즉각적인 폭발력을 보여주는 방식은 아니지만, 필요한 순간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힘을 넉넉하게 남겨둔 느낌입니다.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의 폭발적인 스퍼트보다는 긴 거리를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마라토너에 가깝습니다.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

에어 서스펜션과 후륜 조향 시스템도 이러한 성격과 잘 맞습니다. 차체가 워낙 크다 보니 좁은 길이나 주차장에서는 덩치가 느껴지지만, 일단 도로 위에 올라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후륜 조향 덕분에 코너에서 차체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돌아나가고, 에어 서스펜션은 노면의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내면서도 차체가 붕 뜨는 느낌은 억제합니다. 고속도로에서는 묵직하게 노면을 누르고, 굽이진 국도에서는 거대한 차체가 생각보다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스포츠 SUV처럼 운전자를 자극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운전해도 피곤하지 않도록 만드는 쪽입니다.

무엇보다 연비가 놀랍습니다. 고속도로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규정 속도에 맞춘 다음 한참을 달린 뒤 연비창을 확인했는데 23.5km/L가 찍혀 있네요. 꽉 막힌 시내에서도 연비가 두 자릿수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잘 없습니다. 게다가 연료탱크 용량은 90L에 달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리터당 20km를 기록한다고 단순 계산하면 이론적으로 한 번 주유로 1800km를 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실제 주행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고도 다시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수준의 항속거리라는 뜻입니다.

이쯤 되니 조금 엉뚱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 요즘 전기차를 타면 충전소 위치부터 확인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타면 배터리와 연료 잔량을 함께 계산하게 되는데 투아렉에서는 그런 생각과 동떨어진 편안함이 다가옵니다. 그냥 달리면 됩니다. 이런 장점은 내연기관 자동차가 줄 수 있는 일종의 사치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의 가격은 트림에 따라 1억835만원~1억1849만원입니다. 결코 가벼운 가격은 아니지만 플래그십에 걸맞은 완성도와 사양을 생각하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이 차를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가격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가치가 하나 있습니다. 24년 동안 이어진 투아렉의 역사와 V6 디젤이라는 조합을 마지막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시장은 이제 전동화라는 새로운 파도를 타고 거침없이 미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엔진 소음 없는 조용한 정적과 배터리가 주는 매끈한 가속감도 매력적이지만, 장거리 여정 속에서 느껴지는 V6 디젤만의 은은하고 묵직한 진동, 노면을 지그시 눌러 짚으며 나아가는 에어 서스펜션의 안락함, 그리고 연료 게이지를 신경 쓰지 않은 채 1000km 너머를 유유히 내달리는 맛은 결코 대체하기 힘든 낭만이었습니다.

디젤 엔진의 황혼기에 만난 이 차는 작별 인사를 고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가장 투아렉다운 굳건한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24년간 도로 위를 호령했던 거인을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리워할 듯합니다.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사진=권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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