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대량생산을 이끌까 방점기존 인프라 활용 전략으로 경쟁력 확보상용화의 승부처는 생산 방식
전고체 배터리를 둘러싼 경쟁의 무게중심이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느냐에서 누가 먼저 대량생산에 성공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실험실에서 높은 성능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실제 전기차에 탑재할 수준의 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비용까지 낮춰야 상용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기아와 SK온 등 국내 기업들이 미국 전고체 배터리 기업 팩토리얼에 잇따라 투자·협력하는 것도 결국 이 같은 양산 기술 확보 경쟁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팩토리얼에너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워번에 본사를 둔 전고체 배터리 전문 기업이다. 2020년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로 꼽힌다. 같은 크기의 배터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동시에 배터리 무게와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술적 장점이 곧바로 상용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재와 구조가 기존 배터리와 다른 만큼 생산 과정에서 높은 수율을 확보하기 어렵고, 전기차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큰 용량의 셀을 균일한 품질로 대량생산하면서 가격까지 낮추는 것이 최대 과제로 꼽힌다.
팩토리얼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팩토리얼은 자체 전고체 배터리 플랫폼인 'FEST(Factorial Electrolyte System Technology)'를 개발하는 동시에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고체 전용 공장을 새로 짓기보다 기존 생산설비와 공정의 호환성을 높이면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생산 전환에 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구상이다. 기술 자체뿐 아니라 양산 진입장벽을 낮추는 제조 방식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셈이다.
현대차·기아는 팩토리얼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눈여겨봤다. 양사는 2021년 팩토리얼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고, 전고체 배터리 공동개발협약(JDA)을 체결했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된 당시 계약서에 따르면 양측의 협력 범위는 ▲팩토리얼 배터리 셀 공급 ▲현대차·기아의 셀 평가 ▲배터리 성능 향상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 ▲잠재적인 공동생산 활동 검토 등이다.
특히 '잠재적인 공동생산 활동 검토'가 계약에 포함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차·기아가 팩토리얼의 배터리를 차량에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생산 단계까지 협력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공동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일부 셀 제조 관련 지식재산권(IP)을 양측이 공동 소유하도록 한 조항도 있다.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셀을 공급받는 고객 역할을 넘어 차세대 배터리의 제조 기술과 생산 과정에도 관여할 수 있도록 협력 구조를 짠 것으로 풀이된다.
팩토리얼에 대한 현대차·기아의 초기 베팅은 올해 들어 기업가치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양사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보유한 팩토리얼 지분 장부가액은 지난해 말 117억원에서 올해 6월 말 673억원으로 증가했다. 현대차는 70억원에서 438억원으로, 기아는 47억원에서 235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팩토리얼이 지난 6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해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시장가격을 반영할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다만 양사가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공동개발을 통해 향후 전고체 배터리의 차량 적용과 생산 기술 확보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파트너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기아가 기술 개발과 향후 공동생산 가능성을 열어뒀다면 SK온은 한 단계 더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팩토리얼의 기술을 실제 배터리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SK온은 지난달 팩토리얼과 전고체 배터리 기술 및 제조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FEST를 대상으로 제조 공정과 생산 기술을 공동 평가하고 SK온이 현재 운영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설비를 향후 전고체 배터리 개발·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한다.
이번 협력이 곧바로 공동 생산이나 양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구실이나 시험생산 라인이 아니라 실제 대규모 배터리 생산 경험을 갖춘 제조사의 생산 환경에서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K온은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에서 연산 22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네시주 공장과 합작공장 등을 포함해 북미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팩토리얼 입장에서는 자체 파일럿 생산을 넘어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의 생산 경험과 설비를 활용해 대량생산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팩토리얼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현대차·기아와 SK온뿐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이 양극재 협력을 위해 투자했고, 배터리 장비업체 필에너지는 지분 투자와 함께 전고체 배터리 조립장비 공급권을 확보했다. LG화학도 전고체 배터리 소재 개발을 위해 팩토리얼과 협력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기술 검증에 나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팩토리얼 배터리를 탑재한 시험차량으로 한 번 충전해 1200㎞ 이상 주행하는 성능을 확인했고, 스텔란티스도 77Ah급 셀을 전기차 시제품에 적용했다.
이처럼 완성차·배터리·소재·장비 업체가 팩토리얼과 연결되는 것은 전고체 배터리가 단일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상용화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소재와 셀 설계, 제조공정, 장비, 완성차 적용까지 전체 밸류체인이 맞물려야 한다.
결국 업계의 관심은 누가 더 높은 성능을 구현하느냐에서 누가 양산 생태계를 먼저 구축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 과정에서 균일한 품질과 높은 수율을 확보해야 하고, 생산비용도 낮춰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구현해도 안정적인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면 완성차 업체가 대규모로 채택하기 어렵다.
반대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라인을 활용하면서 수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면 상용화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팩토리얼이 기존 생산 인프라와의 호환성을 강조하고, 현대차·기아가 공동생산 가능성을 계약에 담았으며, SK온이 실제 생산설비에서 제조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현대차·기아와 SK온의 팩토리얼 협력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 하나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넘어 전고체 배터리의 양산 생태계를 선점하려는 경쟁으로 볼 수 있다. '꿈의 배터리'의 상용화 시점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실험실의 성능 수치만이 아니다. 전고체 배터리를 실제 공장에서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그리고 싸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차세대 배터리 시장의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gamja@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