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미군이 찾기 전에 만들었다"···한화 김동관, 30개월 만에 美 자주포 시장 뚫은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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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찾기 전에 만들었다"···한화 김동관, 30개월 만에 美 자주포 시장 뚫은 비결

등록 2026.08.20 11:48

신지훈

  기자

미군 차세대 기동전술화포 사업 시제품 단독업체 선정김동관 수석부회장 전략 실행력·김승연 회장 선행투자 결합K9 자주포로 유럽 이어 세계 최대 시장 진출 기반 구축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에 국산 자주포를 처음 공급한다. 미 육군이 추진하는 차세대 기동전술화포(MTC) 사업에서 시제품 단독 공급 업체로 선정되면서다. 이번 성과는 단순히 K9의 미국 수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군의 무기체계 변화와 수요를 선제적으로 읽고 제품 개발에 나선 한화의 '시장 선점 전략'이 실제 수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김동관 한화 수석부회장이 미국의 차세대 자주포 수요를 포착한 뒤 개발에 착수한 지 약 30개월 만에 미군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장기간 이어온 방산 선행투자와 김 수석부회장의 시장 분석·전략 실행력이 맞물리면서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K방산의 입지를 넓힐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 '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 육군은 기존 M777 견인포를 대체할 차세대 기동화포를 확보하기 위해 시제품을 평가한 뒤 최종 양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에서 한화가 주목한 것은 미군의 무기체계 변화였다. 미 육군은 당초 사거리 연장 자주포 사업(ERCA)을 통해 궤도형 화포 개발을 추진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신속한 사격과 진지 이탈이 가능한 기동화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차륜형 플랫폼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화는 이 같은 변화를 일찌감치 포착했다. 2024년 3월 미 육군 예산안에서 차륜형 자주포 도입 움직임을 확인한 뒤 미국 시장과 미군의 무기체계 변화에 대한 분석을 강화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K9MH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속도는 이례적이었다. 한화는 2025년 상반기 기본·상세설계를 마쳤고 올해 1분기 첫 시제품을 완성했다. 개발 착수부터 실물 제작까지 1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체 개발 기간으로 따져도 약 30개월이다.

K9MH는 기존 K9 자주포를 기반으로 차륜형 플랫폼과 완전 자동화 포탑을 결합한 무기체계다. K9을 통해 이미 검증된 사격·포탑 기술을 활용하면서 미군이 요구하는 기동성과 운용 편의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이번 사업에는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시스템즈,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 이스라엘 엘빗시스템즈 등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경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을 제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단독 시제품 공급 업체로 선정되면서 기술력뿐 아니라 미군의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제품화한 대응 능력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가 그동안 K9을 통해 확보한 글로벌 레퍼런스도 뒷받침이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를 폴란드·핀란드·노르웨이·루마니아 등으로 수출하며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다만 지금까지는 궤도형 자주포가 중심이었고 차륜형 자주포의 해외 공급 실적은 없었다.

이번 미국 사업은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 차륜형 자주포 운용 실적까지 확보할 경우 향후 기동성과 수송성을 중시하는 국가들의 차륜형 자주포 도입 사업에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수석부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의 상업용 세계 최대 공동수조를 방문해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한화 제공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수석부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의 상업용 세계 최대 공동수조를 방문해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한화 제공

이번 성과를 단순히 김동관 수석부회장의 시장 분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화가 오랜 기간 방산 사업에 투자하며 독자적인 무기체계 개발 역량을 확보해왔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은 방산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산업으로 보고 선행투자와 기술 확보를 강조해왔다. 특히 독자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K9과 천무 등 한화의 주요 무기체계가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수석부회장은 이 같은 방산 육성 기조를 해외 시장 선점 전략으로 확장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방산 수요가 급증할 당시 현지 TF를 꾸려 핀란드·에스토니아·폴란드·루마니아 등 유럽 전역에서 시장 정보를 수집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후 K9과 천무의 유럽 수출을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이어졌다. 시장이 형성된 뒤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미군의 예산과 무기체계 개발 방향을 통해 향후 수요를 먼저 읽고 제품 개발에 나선 것이다.

결국 수요가 발생하면 제품을 내놓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가 생기기 전에 제품을 준비한다'는 전략이 이번 수주의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한화의 움직임은 자주포 개발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지 생산과 방산 인프라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는 2024년 말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국 조선·방산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올해 4월에는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며 현지 생산 거점 확보에도 나섰다.

육상에서는 K9MH를, 해상에서는 함정 사업을 앞세워 미국 방산시장 공략 범위를 넓히는 모습이다. 미국 내 생산 기반과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향후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현지화 조건에 대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방산 수요 자체가 큰 데다 자국 생산과 공급망 확보를 중시하는 시장인 만큼 현지 사업 기반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후속 수주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현재 계약 규모는 시제품 6문에 불과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후속 양산사업에 쏠리고 있다. 미 육군은 시제품을 대상으로 약 4년간 성능평가를 진행한 뒤 최종 양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성능평가를 통과해 K9MH가 미 육군의 차세대 기동화포로 최종 선정될 경우 사업 규모는 최대 10조원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군이 현재 운용하는 M777이 1000문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양산 물량이 수백 문에 이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본사업이 현실화할 경우 단순한 완제품 수출을 넘어 유지·보수·정비(MRO), 부품 공급, 운용·훈련 등 후속 사업으로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한화 입장에서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방산시장에 차륜형 자주포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자산이다. K9을 통해 구축한 궤도형 자주포 시장 지배력에 차륜형 자주포까지 더해질 경우 글로벌 수출 파이프라인도 한층 넓어질 수 있다.

결국 이번 계약은 자주포 6문을 미국에 공급한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군이 필요로 할 무기를 먼저 읽고, 시장이 열리기 전에 제품을 개발해 선점한다는 한화의 방산 전략이 미국에서 처음 성과로 확인됐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오랜 기간 방산 분야에 대한 선행투자를 통해 독자 무기체계와 기술 경쟁력의 기반을 마련했다면, 김동관 수석부회장은 글로벌 시장의 수요 변화를 한발 앞서 읽고 이를 사업 기회로 연결하는 데 집중해왔다"며 "이번 미국 자주포 사업은 이러한 2대에 걸친 방산 육성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진 사례로, 향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한화의 입지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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