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중국서 'R&D 엔진' 찾는 빅파마···'13조 기술수출' K-바이오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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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R&D 엔진' 찾는 빅파마···'13조 기술수출' K-바이오의 숙제

등록 2026.06.26 07:04

이병현

  기자

총액보다 중요한 선급금과 권리 구조글로벌 빅파마, '연구개발 엔진' 자체 사마일스톤·업프론트·공동개발 구조 분석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올해 상반기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수출 계약은 총 8건으로 늘어났다. 이 중 금액을 공개한 7건의 최대 계약 가치는 86억6675만달러(약 13조원)에 이른다. 숫자만 보면 분명 고무적인 반등이지만 이면에 숨겨진 디테일을 살피면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47억달러 규모로 발표된 아리바이오와 중국 푸싱제약의 AR1001 단일 거래가 전체 금액의 54.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시장 사정은 다르다. 최근 글로벌 빅파마는 중국에서 단순한 저가 후보물질을 쇼핑하는 단계를 지났다. 이제는 파트너가 새로운 분자를 계속 설계하고 임상 1상이나 초기 개념검증까지 빠르게 수행하는 '연구개발(R&D) 엔진'을 계약서 안에 통째로 넣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수출 격차는 표면적인 총액을 넘어서 선급금(업프론트), 자산의 수, 임상 단계, 권리 배분 구조 등 종합적으로 더 벌어졌다.

'액수'보다 중요한 건 '계약 성격'


우선 글로벌 시장에서 비교군으로 삼는 데이터 기준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올해 1분기 기술수출 규모로 언론에 자주 인용되는 '596억달러'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의 공식 통계가 아닌 민간 거래 데이터 업체 팜큐브의 집계다. 팜큐브는 중국 혁신신약의 해외 라이선스아웃을 50건으로 보고 총액 596억달러, 반환 의무가 없는 확정 선급금인 업프론트를 약 34억달러로 잡았다. 이를 홍콩과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 제약 거래 전체로 넓히면 614억달러가 된다. 집계 기준에 따라 596억달러와 614억달러가 혼용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기술수출 총액을 기업의 확정 매출로 오인하는 착시다. 총액은 일반적으로 계약 체결 시 받는 업프론트에 향후 임상 진입이나 허가, 매출 달성 등에 따라 단계별로 받는 마일스톤을 모두 더한 최대 희망치다. 후보물질 개발이 중도에 실패하거나 옵션이 행사되지 않으면 뭉칫돈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실제로 중국의 1분기 업프론트 34억달러는 최대 계약 가치인 596억달러의 약 5.7%에 불과하다.

같은 계약이라도 계산 방식에 따라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중국 CSPC제약의 거래는 확정 업프론트 12억달러와 개발 및 허가 마일스톤 35억달러만 더하면 47억달러 규모다. 하지만 여기에 장기 상업화 매출 목표치까지 더하면 최대 185억달러짜리 매머드급 계약으로 둔갑한다.

계약 규모보다 중요한 건 계약의 성격이다. 최근 빅파마와 중국 바이오텍 간 빅딜은 철저히 위험 분산과 포트폴리오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 화이자와 중국 이노벤트바이올로직스의 계약은 이러한 거래의 진화가 가장 잘 드러난 사례다. 양사는 항암 신약 12개 프로그램을 묶어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12개 중 8개는 이노벤트가 발굴한 초기 자산이고, 나머지 4개는 화이자가 제시한 연구 과제를 이노벤트 플랫폼으로 새롭게 찾는 방식이다. 이노벤트가 임상 1상까지 개발하면 화이자가 후속 글로벌 임상을 맡는다. 계약금 6억5000만달러에 마일스톤을 합쳐 최대 105억달러에 이르는 규모다. 권리 배분 역시 단순 매각을 넘어선다. 글로벌 공동개발은 물론 선진 시장 공동 상업화와 이익 배분까지 촘촘하게 설계돼 중국 기업이 단순 기술 공급자에서 글로벌 파트너로 격상됐음을 보여준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헝루이제약의 152억달러 규모 계약도 13개 프로그램을 묶은 공동 발굴 및 개발 형태다. 헝루이가 초기 임상을 맡아 약효의 실마리를 빠르게 확인하면 양사가 중국과 해외 권리를 상호 배분한다. 아스트라제네카가 CSPC제약으로부터 확보한 것 역시 비만과 당뇨 후보물질 8개에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기반 펩타이드 발굴 기술과 월 1회 투여형 약물전달 플랫폼을 자체 신약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사들였다.

빅파마 입장에서 이러한 묶음 계약은 신약 하나에 사활을 거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유리하다.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려 실패 확률을 분산하고, 비용이 저렴한 중국에서 초기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뒤 성공 가능성이 농후한 자산에만 글로벌 자본을 집중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와 BMS의 100억달러대 빅딜도 프로그램 단위로 쪼개어 업프론트를 환산하면 각각 5400만달러, 4600만달러 수준이다. 거대한 겉보기 숫자에 압도돼 이를 단일 신약 한 개의 가치로 해석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천과학 부족 메우는 '속도와 규모의 산업화'


중국의 약진 이면에는 비용 효율성과 물량 공세가 자리 잡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분석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새롭게 임상에 진입한 신약 후보물질 중 중국 비중은 44%로 미국의 27%를 앞질렀다. 특히 ADC 임상 파이프라인의 60%, CAR-T의 61%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로 쏠림 현상이 강하다. BCG는 중국의 신약 발굴 비용이 미국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모달리티(치료 접근법) 하나가 성공하면 유사한 설계와 공정을 붕어빵 찍어내듯 반복 적용해 후속 자산을 대량 생산하는 산업화 구조가 정착된 덕분이다.

물론 중국이 모든 영역에서 원천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잠재 신약 후보 가운데 기존에 탐색되지 않은 새로운 질병 생물학 표적에 기반한 물질은 11개에 불과했다. 중국 기업의 강점은 획기적인 발견보다는, 이미 알려진 표적을 ADC나 이중항체 등 새로운 방식으로 빠르게 조합하고 최적화하는 '공학적 혁신'에 특화되어 있다는 데 있다. 취약한 인수합병(M&A) 시장 구조 탓에 기술수출이 곧 유일한 자금조달 창구로 작동하는 절박한 자본시장 환경도 이들의 적극적인 라이선스 아웃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K-바이오 13조 이면···절반은 미행사 옵션


한국의 상반기 기술수출 규모 반등은 인상적이다. 임상 2·3상 후기 자산부터 전임상 플랫폼 기술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성과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성적표 역시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상반기 총액의 54%를 견인한 아리바이오의 AR1001 거래는 확정된 판권 매각이 아닌 독점 글로벌 옵션 계약이다. 파트너사인 푸싱제약이 6000만달러를 선지급한 뒤 향후 임상 3상 결과를 보고 권리 취득 여부를 결정한다. 대규모 마일스톤 역시 연간 순매출이 일정 궤도에 올라야만 발생한다. 총액의 절반 이상이 아직 미래의 옵션과 장기 목표에 묶여 있다는 뜻이다. 한편 파트너가 미국의 빅파마가 아닌 중국 기업이라는 점은, 양국이 단순한 경쟁 구도를 넘어 임상과 상업화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얽혀 있음을 방증한다.

임상 데이터의 힘으로 글로벌 빅파마 지갑을 연 긍정적 사례도 있다. 한미약품은 글로벌 임상 2상 단계인 단장증후군 후보물질 하나만으로 일라이릴리에 7500만달러의 확정 계약금을 받았다. 총 계약 규모 12억6000만달러 대비 업프론트 비율은 약 6%로, 화이자-이노벤트 거래(6.2%)와 비등한 수준이다. 오스코텍과 미국 아지오스의 세비도플레닙 계약은 기존 임상 주평가지표 달성에 실패했더라도, 안전성과 다른 평가지표의 가능성이 구매사의 질환 전략과 맞아떨어지면 재개발 대상으로 선택받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꾸는 플랫폼 기술을 여러 글로벌 기업에 반복 적용하며 중국식 재사용 엔진에 가장 근접한 성공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큐라클·맵틱스 거래 역시 전임상 자산을 미국 신설 법인에 넘기고 지분을 함께 받는 '뉴코(NewCo)' 모델을 도입해 신약의 미래 가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중 갈등, 반사이익은 없다···'두 번째 공급원' 실력 입증해야


미국 하원의 바이오기술 투자 국가안보법 발의 등 대중국 견제 기조가 강해지면서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 거래에 수반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따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국 정부 역시 플랫폼 소유권 이전 등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기술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으로, 규제에 따라 권리 매각 방식에서 공동개발 구조로 계약 형태를 바꿀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진단이 나온다.

무엇보다 중국이 배제된다고 해서 그 파이가 한국의 이익으로 자동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빅파마는 철저히 성공 확률을 반영한 자산 가치에 돈을 지불한다. 효능, 안전성, 특허 방어력, 임상 속도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일본, 유럽의 바이오텍이나 호주, 싱가포르의 임상 인프라에 기회를 뺏길 확률이 높다.

정지은 산업연구원(KIET) 부연구위원은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생물보안법이 법제화됨에 따라 미국 바이오 산업이 국가안보 차원으로 격상됐다"며 "미국 시장 내 바이오 기업을 대체할 수요는 증가하고 '신뢰도 높은' CDMO(위탁개발생산)·바이오테크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비중국(Non-China)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신뢰도와 품질을 갖춘 기업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 역시 "미국의 정책 변화로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도가 이전보다 올라간 것은 맞다"라면서도 "그만큼 이전보다 검증 잣대는 더 높아진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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