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속도와 비용 경쟁력 집중 조명혁신 파이프라인·기술 수출로 미국 추격바이오산업 중심축 변혁 신호탄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최근 공개한 '미국 대 중국의 혁신신약 개발 수준 비교' 이슈 브리핑에 따르면, 미국제약협회(PhRM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 바이오제약 산업 급부상이 미국의 글로벌 혁신 리더십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 내 약가를 해외 최저가 수준에 연동하는 '최혜국 약가 정책(MFN)' 같은 가격 통제 정책이 미국 내 혁신 생태계를 약화시킬 경우, 상대적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는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치만 놓고 봐도 변화는 뚜렷하다. 글로벌데이터 분석 기준으로 혁신신약 임상시험에서 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46%에서 2025년 33%로 10년 사이 13%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중국 기업 비중은 같은 기간 4%에서 30%로 급증했다. 2015년만 해도 미국과 중국 간 점유율 격차는 42%포인트에 달했지만, 2025년에는 3%포인트 수준까지 좁혀졌다. 이는 중국 기업이 더 이상 복제약 개발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혁신신약 경쟁의 전면에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로 해석된다.
중국 경쟁력은 임상시험 효율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종양 분야를 기준으로 하면 임상 1상 소요 기간은 미국이 평균 26.2개월인 반면 중국은 17.2개월로 약 9개월 빠르다. 임상 2상 역시 미국이 평균 37.6개월, 중국이 30.2개월로 집계됐다. 모든 적응증을 기준으로 봐도 중국은 임상 1상을 미국보다 평균 7개월가량 앞당길 수 있고, 전체 임상 진행 속도도 약 53%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속도 차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 차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대규모 환자군을 바탕으로 환자 모집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임상 수행 기관도 빠르게 늘어나며, 정부 차원의 인프라 확충과 제도 정비가 병행된 점을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신약 개발에서 시간 단축은 곧 자금 소진 속도와 직결되는 만큼, 중국의 빠른 임상 전개는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텍 모두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용 측면에서도 중국의 강점은 분명하다. 임상 1상 시험 비용은 미국이 평균 580만달러 수준인 반면, 중국은 약 329만달러로 약 251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적응증 전반에 걸쳐 임상 1상 비용은 미국 대비 30~50% 낮고, 임상 2상 역시 15~30%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분야에서는 양국 간 비용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시간은 짧고 비용은 낮은 구조가 형성되면서 중국이 글로벌 임상시험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혁신신약 파이프라인 확대 속도도 가파르다.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파이프라인 수는 미국이 2020년 1736개에서 2025년 3459개로 약 두 배 늘어난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152개에서 484개로 3.2배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증가율도 미국이 15%, 중국이 26%로 중국이 더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계열 내 최초 파이프라인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8%에서 2025년 12%로 높아졌고, 2027년에는 15~18%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신약 허가 증가 속도에서도 중국은 미국보다 더 가파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신약 허가 건수 증가율을 보면 미국은 약 1.5배 늘어난 데 그쳤지만, 중국은 2.6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평균 증가율 역시 미국 9%, 중국 21%로 두 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단순히 임상을 빨리 진행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허가와 상업화 단계까지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중국 바이오의 부상은 이제 개별 지표를 넘어 실제 시장 거래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글로벌 빅파마가 중국 바이오텍과 대형 라이선스 계약과 공동개발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면서, 중국은 더 이상 '저비용 제조기지'가 아니라 혁신 파이프라인 공급처로 재평가받고 있다. ADC(항체약물접합체), 이중항체, CAR-T, siRNA 등 차세대 모달리티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면서, 다국적 제약사가 중국발 자산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흐름도 본격화하고 있다.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레전드바이오텍의 CAR-T 치료제 '카빅티'는 글로벌 시장에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랐고, 아케소(Akeso)가 개발한 이중항체 항암제 '이보네시맙'은 임상 3상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며 업계 주목을 받았다. 켈룬바이오텍 역시 대형 제약사와 조 단위 ADC 기술수출 계약 체결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는 중국 바이오가 단순히 개발 건수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자산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도 자리하고 있다. 업계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 임상 인프라 확충, 규제 개선, 자국 바이오 생태계 육성 전략이 맞물리며 중국이 짧은 시간 안에 혁신 역량을 끌어올렸다고 보고 있다. 특히 2018년 이후 규제 체계 정비와 심사 효율화가 본격화되면서, 제네릭 위주의 산업 구조가 혁신신약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기초과학 역량과 자본력, 글로벌 시장 장악력에서 가장 강한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높은 연구개발 비용과 제조 인프라 약화, 약가 인하 압박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실제 미국제약협회(PhRMA) 측은 최근 공식 성명을 통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인 지금, 약가 통제 같은 정책들은 미국 의약품 연구개발 자금을 고갈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치권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존 물레나르(John Moolenaar)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이달 열린 청문회에서 "중국은 미국인들이 매일 의존하는 복제약 공급부터, 향후 수십 년간 의료 산업의 주도권을 결정지을 최첨단 바이오 파이프라인에 이르기까지 의약품 시장 전반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정부 주도의 속도전과 비용 우위를 앞세워 추격하는 동안, 미국은 혁신 리더십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전략 재정비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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