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제2의 렉라자' 나올까···글로벌 제약사 도약 시험대

ICT·바이오 제약·바이오 유한양행 100주년

'제2의 렉라자' 나올까···글로벌 제약사 도약 시험대

등록 2026.06.19 07:06

이병현

  기자

오픈 이노베이션 통한 신약 릴레이의 표본안정적 수익 구조·기술수출 성공과 한계후속 파이프라인 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창립 100주년을 맞은 2026년, 유한양행의 재무제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지난 2024년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통과한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미국 제품명 라즈클루즈)'의 상업화 마일스톤과 판매 로열티가 본격적으로 장부에 꽂히기 시작한 덕분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이미 렉라자 그 너머를 향하고 있다. 유한양행이 마주한 본질적인 고민은 '로열티 수익 모델의 구조적 한계'와 '렉라자를 이을 후속 파이프라인'이다.

렉라자의 성공과 한계


FDA 허가의 핵심 근거가 된 MARIPOSA 임상에서 병용요법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23.7개월을 기록했다. 대조군인 오시머티닙 투여군(16.6개월)을 훌쩍 뛰어넘으며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30%나 낮춘 고무적인 결과였다.

시장 안착 속도는 빠르다. 존슨앤드존슨(J&J) 공시에 따르면 리브리반트·라즈클루즈 제품군의 2025년 글로벌 매출은 7억3400만달러(1조1209억원)에 달했고, 2026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82.7% 급증한 2억5700만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를 온전히 '렉라자 매출'로 치환하기는 어렵다. J&J가 밝힌 실적은 리브리반트와 함께 처방돼 발생하는 병용 판매 실적인 데다가,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상업화 권리는 J&J가 쥐고 있다. 유한양행은 계약에 명시된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과 판매 로열티를 수령하는 구조다. 유한양행이 수령하기로 한 마일스톤은 계약금 포함 총 9억5000만달러이며 현재까지 이중 3분의 1 정도를 수령한 상태다.

이는 렉라자 성공이 지닌 명확한 성격이자 한계를 방증한다. 자체적인 글로벌 영업망 구축 없이도 신약 상업화의 과실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매출의 폭발적 성장과 시장 주도권은 파트너사인 J&J 몫이다. 렉라자는 유한양행에 글로벌 무대의 문을 열어줬을 뿐, 회사의 체급을 단숨에 '글로벌 주요 제약사'급으로 격상시킨 것은 아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실적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유한양행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2조1866억원, 영업이익 1044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썼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90.2% 급증했으나, 영업이익률은 4.8%에 머물렀다. 더욱이 연간 라이선스 수익 1041억원 중 703억원이 4분기에 편중됐다.

렉라자가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신약 수익 모델이 안착했다고 보기엔 시기상조다. 아직은 국내 의약품 판매와 도입 품목, 생활건강, 원료의약품 수출을 기반으로 외형을 키워온 기존 사업에 고수익 기술료와 로열티가 얹히는 과도기적 구조에 가깝다.

'포스트 렉라자', 목표 달성 성공할까


유한양행은 '포스트 렉라자'의 선봉장으로 5개의 파이프라인을 내세우고 있다. 알레르기 치료제 레시게르셉트, 대사이상 지방간염(NASH) 치료제 YH25724, HER2 표적항암제 YH42946, HER2·4-1BB 이중항체 네스프로타미그, EGFR·4-1BB 이중항체 YH32364가 그 주인공이다. 면역·대사질환과 항암제 투 트랙으로 차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아직까지 '제2의 렉라자'는 회사가 그리는 청사진일 뿐이다. 이들 5개 후보물질은 모두 임상 1상에서 초기 2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약물의 안전성과 초기 유효성을 탐색하는 구간으로, FDA 최종 허가와 블록버스터급 매출 창출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언제든 개발이 중단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 한가운데 서 있는 셈이다.

진도가 가장 빠른 레시게르셉트 역시 신약 개발의 험난함을 대변한다. 혈중 유리 면역글로불린E(IgE)를 중화하는 이 약물은, 최근 공개된 46명 대상 임상 1b상에서 긍정적인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했다. 기존 치료제 대비 유리 IgE 억제 유지 기간이 확연히 길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는 체내 약물 동태와 안전성을 확인한 초기 지표일 뿐, 실제 환자의 가려움이나 발진을 얼마나 극적으로 개선하는지 입증하는 확증적 임상은 아니다. 내년 4분기 도출될 다국가 임상 2상 결과가 나와야만 '제 2의 렉라자'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판가름 날 전망이다.

NASH 후보물질 YH25724의 궤적은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YH25724는 지난 2019년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되며 오픈 이노베이션의 쾌거로 여겨졌으나, 베링거인겔하임이 파이프라인 전략 수정 등을 이유로 지난해 초 개발 중단 및 권리 반환을 통보했다.

다행히 유한양행은 이를 포기하지 않고 2026년 5월 국내 임상 1상 승인을 새로 받으며 자체 개발의 불씨를 살렸다. 이 재도전이 전화위복이 될 여지는 충분하지만, 대형 기술이전 실적이 신약의 최종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리를 다시금 각인시킨 사례다.

단일 약물 대신 '조합'···개발 패러다임 전환


렉라자 이후 유한양행 R&D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개발 방식의 진화다. 단일 후보물질을 키워 기술수출하던 과거의 공식에서 탈피해, 여러 약물을 '병용 조합'으로 묶어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예컨대 HER2를 표적하는 경구용 항암제 YH42946과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네스프로타미그를 함께 개발하거나, 이중항체 YH32364에 면역항암제를 붙이는 식이다. 암세포의 성장 신호를 차단하는 동시에 면역체계의 암 공격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논리다. 렉라자와 리브리반트가 만들어낸 시너지 공식을 다른 암종에 이식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복수 후보를 패키지로 묶어 글로벌 제약사에 제안하면 협상 주도권을 쥐기 수월하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다.

관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이다. 수천 명의 환자와 다국가 병원이 동원되는 글로벌 임상 3상은 천문학적인 자본을 요구한다. 특히 병용 임상에서는 함께 투여할 상대 약물을 구매하는 비용만으로도 임상수탁기관(CRO) 비용을 웃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한양행의 연간 R&D 예산이 2500억 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모든 파이프라인을 독자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유한양행은 공동 투자, 인수 옵션 계약 그리고 특정 파이프라인을 떼어내 외부 자금을 유치하는 신설법인(뉴코·NewCo) 설립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위험을 분산하면 실패의 타격은 줄지만, 성공 시 누릴 과실도 쪼개진다. 유망 후보물질을 끝까지 자체 개발해 온전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것인지, 적정선에서 기술수출해 리스크를 덜어낼 것인지, 그 절묘한 줄타기가 새 전략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다.

TPD와 AI···'실제 물질'로 증명할 때


유한양행은 미래 승부수로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과 자체 AI 신약 개발 플랫폼 'Yu-NIVUS'를 전면에 내세웠다. 질병 원인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분해해 버리는 TPD 기술을 위해 전담 조직을 꾸렸고, 2027년까지 AI 기반의 후보물질 최적화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현재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TPD와 AI는 큰 트렌드에 가깝다. 향후 다른 기업과 비교해 실제 후보물질 도출 기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 실패 확률이 높은 과제를 얼마나 조기에 걸러냈는지 등 철저히 '숫자와 데이터'로 증명해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렉라자 성공의 진짜 비결은 거대한 플랫폼 그 자체가 아니었다. 좋은 물질을 빠르고 정확하게 선별하고, 적재적소에 임상 역량을 투입하며, 가장 좋은 타이밍에 최적의 글로벌 파트너에게 넘긴 '날렵한 실행력'에 있었다. 남은 과제는 당시 특정 인물과 직관에 의존했던 성공 경험을 유한양행이라는 거대 조직이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내재화하는 일이다.

유한양행이 마주한 R&D 패러다임의 변화는 차기 경영진 선임과 맞닿아 있다. 2021년 취임한 조욱제 대표의 임기는 2027년 3월 만료된다. 전문경영인 대표는 6년을 초과해 연임할 수 없다는 사내 규정에 따라, 늦어도 2026년 9월 무렵에는 차기 리더십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유한양행은 1969년 이후 줄곧 평사원 출신이 최고경영자에 오르는 내부 승진 전통을 자랑했다. 그러나 차기 CEO가 지휘해야 할 회사는 과거의 유한양행이 아니다. 글로벌 단위의 임상 설계, 바이오벤처 파이프라인 가치 평가, 해외 자본 유치, 그리고 냉혹한 파이프라인 중단 결단까지 내릴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때로는 유망한 후보물질을 많이 발굴하는 것보다, 가망이 없는 과제의 매몰 비용을 포기하고 과감히 셔터를 내리는 것이 리더에게 더 뼈아프고 어려운 결단일 수 있다.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가 세운 전문경영인 체제가 이번에도 외부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R&D 투자의 우선순위를 냉철하게 재편하는 훌륭한 시스템으로 작동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유한양행의 첫 100년을 지탱한 철학이 '정직'과 '사회 환원'이었다면, 다가올 두 번째 100년에는 더 본질적인 조건이 요구된다. 제약기업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궁극의 가치는 결국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바꾸는 '혁신 신약'이다.

렉라자는 한국 제약사도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음을 입증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창립 100주년의 축배를 내려놓은 유한양행 앞에는 훨씬 더 까다로운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성공을 이어받아 두 번째, 세 번째 신약을 연속해서 탄생시킬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

앞서 김열홍 유한양행 R&D 총괄 사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유한양행 R&D 데이에서 "'포스트 렉라자' 후보물질 5개를 갖고 있다"면서 "현재 보유한 주요 파이프라인 5개 모두 1~2년 내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 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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