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약국엔 없고, 창고엔 있다?···의약품 유통 병목 해법은 '공급망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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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엔 없고, 창고엔 있다?···의약품 유통 병목 해법은 '공급망 혁신'

등록 2026.06.16 14:01

임주희

  기자

팬데믹 이후 의약품 유통 분산형 시장 구조의 한계 진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동물류센터 및 구조 단순화 제안유통 영세성·콜드체인 부담 속 '블록형 거점도매' 등 대안 부상

사진=AI(제미나이) 생성사진=AI(제미나이) 생성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물류대란과 특정 국가 편중 원료의약품 조달 구조는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최근에도 원료 수급 불안, 국가별 수출 제한, 홍해 물류대란, 초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가 지속되면서 의약품 공급 안정성은 국민 건강권과 직결된 상시 관리 과제로 전환됐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은 의약품 유통 체계의 평가 기준을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유통 경쟁력은 품목 확보, 거래처 확대, 대량 물량 처리 등 '외형 성장과 효율'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투명성과 안전성'이 핵심 가치로 꼽힌다. 공급망 충격 발생 시 적기에 의약품을 끊김 없이 안전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유통업체의 생존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의약품은 공급 지연 시 치료 공백이 발생하고, 대체 품목이 존재하더라도 처방 변경, 조제 지연, 재고 확인, 환자 안내 등 보건의료 현장의 부담을 유발한다. 공급 불안에 따른 영향은 소규모 약국 및 비수도권 지역에서 먼저 발생하는 경향이 있어, 의약품 유통을 단순 상업 경로가 아닌 공공재적 전달 체계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분산형 유통 구조가 만든 공급 병목

국내 의약품 유통 시장은 다품목·다거래처 중심의 분산형 구조로 운영돼 왔다. 이는 넓은 거래망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으나, 수급 위기 시에는 복잡한 유통 단계와 영세성이 병목 현상을 유발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의약품 유통 선진화를 위한 유통체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 유통의 고질적 문제로 ▲영세성 ▲복잡한 도매상 간 거래 ▲물류비 증가 ▲정보 비대칭성이 지적됐다. 연구진은 개선안으로 공동물류센터 조성, 유통 구조 단순화, 도매업체 대형화·계열화, 불필요한 도매상 간 거래 제한 등을 제시했다.

의약품 유통업체의 또 다른 문제점은 콜드체인 등 보관·수송 조건이 엄격한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 드러난다. 지난 2022년 생물학적 제제 배송 기준 강화 이후, 온도기록 관리 부담으로 일부 도매상이 소량 배송을 기피하거나 최소 거래금액을 설정함에 따라 일선 약국의 인슐린 제제 수급에 차질이 발생한 바 있다.

A의약품 도매업체 관계자는 "제약사 쪽은 안전성 평가가 돼 있는 제품들의 경우 콜드체인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일률적인 온도 관리 기준(2~8도)을 적용, 이를 지키지 않으면 행정위반 처분을 받는다"며 가혹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콜드체인 강화가 취지와는 별개로 일선 유통업체에 행정·운영 부담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심평원 연구진은 인슐린 등 수급 불안 우려 품목을 대상으로 지역거점별 배송 도매상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불필요한 중간 거래를 축소하는 등 유통 구조 재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책 전문가들 또한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효율성 극대화가 아니기에 공급 충격이 발생해도 필요한 의약품이 소규모 약국과 비수도권 지역에 끊기지 않도록 유통 구조 자체를 전면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해외는 공급망 통제 강화···국내도 범부처 민관 공조 나서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거진 공급망 위기 이후 해외 주요국은 제도적 정비를 가속화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의 공급망 개입 권한을 확대하여 제조량 보고, 생산 중단 통지, 대체 공급원 정보 제출, 위험관리계획 유지 의무를 강화했다. 또한 의약품 공급망 보안법(DSCSA) 이행을 통해 사후 수습이 아닌 조기 파악과 선제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도 2023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의약품 수급불안정 개선을 위한 대응 절차'를 마련하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범부처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전 과정 통합 관리를 추진 중이다.

당시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향후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의약품 수급 불안 발생 시 이번에 마련한 절차에 따라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대응하면서, 관련 제도개선도 충실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보의 투명성도 강화되고 있다. 정부는 심평원 의약품 종합정보포털(KPIS)의 데이터를 대한약사회 등 약국 현장 시스템과 연계해 약사들이 도매상별 부족 의약품 보유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KPIS는 국내 유통망의 전량을 담당하는 2000여 개 도매상의 일련번호와 공급 내역이 집계돼 시장 대표성을 지닌다. 정부는 이 데이터를 사후 모니터링에 활용해 소규모 약국 균등 분배를 지원하고, 비정상적 유통 흐름을 분석해 가수요나 끼워팔기를 단속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선 약국가와 유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공 정보가 확정 재고가 아닌 '보유추정정보'라는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부 데이터 기반인 KPIS는 익일 보고 규정으로 인한 시차가 존재하고, 병원 납품용 예약 재고나 불량 반품 물량까지 정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B약국 관계자는 "실시간 재고가 아니기에 전화로 약이 있는지 없는지 묻는 게 빠르고 사이트를 이용할 이익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약사들이 재고를 확인하고 문의해도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사재기와 끼워팔기 역시 데이터 시차로 인해 실시간 적발이 어려워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는 실정이다.

블록형 거점도매, 의약품 품절 대란 속 '국민 건강권' 지킬 해법 될까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과 유통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 영역에서는 권역별 책임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유통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대웅제약이 추진하는 '블록형 거점도매'는 거래처의 단순 확장을 지양하며, 수급 불안이나 물류 충격 발생 시 환자의 치료 공백 방지를 목표로 하는 모델이다. 권역별 재고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비수도권과 소규모 약국까지 의약품을 공평하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앞서 심평원 연구에서 제안된 '콜드체인 규모의 경제 확보' 및 '지역거점별 배송 시범사업'의 취지를 민간에서 선제적으로 구현한 형태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의약품 유통 체계 개선은 시장 논리에 따른 효율성 제고를 넘어,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 정비, 정확한 수요 예측 고도화, 권역별 우선 배분 기준 확립을 통한 투명성 및 안전성 확보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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