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36개소'
2024년 기준 국내 의약품 유통업체수다. 2009년 2000개소를 넘었던 의약품 유통업체는 2020년 4420개소로 두 배 증가했고, 불과 4년 만에 700개소가 더 늘어났다. 의약품 유통업체가 2000개소를 넘은 시점부터 도매업소의 난립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제기됐다. 많아진 도매업체로 인해 의약품 유통구조가 복잡해지고 여러 단계의 도매업소를 거치면서 유통마진이 증가하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유통 구조 선진화'에 대한 필요성은 대두됐지만 시장은 비대해지기만 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 시점, 대웅제약의 '블록형 거점도매' 정책으로 의약품 유통업계가 시끄럽다. 대웅제약은 의약품 재고 관리와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공급 안정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약품유통업계에선 '생존 전쟁'이라 칭하며 투쟁에 나선 상태다. 특정 업체와의 거래는 대다수 도매상을 고사시켜 유통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협회 차원의 대응과 함께 제약사의 '갈라치기 수법', '갑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유독 한국만 국내 의약품 유통업체수가 많은가'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시장을 가진 미국도 헬스케어유통연합(HDA) 가입 기준 약 40개사에 불과하다. 바로 옆인 일본의 경우 일본의약품도매협회에 가입한 기업은 약 80개사 수준이다. 양국 모두 상위 3개사가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첨단 물류 자동화 시설과 막대한 자본력이 없다면 시장 진입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2000년 초반 창고 면적 제한(90평)이 일시적으로 폐지되면서 소규모 영세 업체들이 늘어났고 직접 창고를 갖추지 않아도 대형 도매상의 창고를 공유(위탁)하는 방식이 허용되면서 '서류상 도매상'도 등장했다. 다뤄야 할 의약품 품목이 늘어났기 때문에 의약품 도매업체가 증가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10년 만에 수천개의 의약품 유통업체가 생겨난 것을 이해하긴 어렵다.
또한 비대해진 시장이 과연 최저 비용으로 최적의 경로를 제공하는지도 의문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신선식품도, 책 한 권도 실시간 재고와 배송 경로를 바로 볼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직결된 의약품의 경우 소비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온도와 습도 등 보관 조건을 영세 업체들이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실시간 추적은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왔기 때문에 고수해야 하는 건 없다. 의약품 유통업체 난립으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은 수년간 제기돼 왔고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의약품 유통업체 입장에선 변화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가 안정적이고 투명한 유통망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의약품 유통업체가 대웅제약과 거래를 원한다면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면 그만이다. 제약사가 세운 기준에 맞는 파트너를 찾겠다는 것을 '갑질'로 몰아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당 기준을 맞출 수 없으니 기준 자체를 세우지 말라는 식의 '떼쓰기'가 아니라 기준을 충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웅제약 정책이 물류비 감소와 효율적인 의약품 관리를 증명한다면 시장은 해당 모델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약사와 의약품도매업체, 병·의원, 약국 등이 유통 구조 합리화를 위한 또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의약품 유통은 단순한 상거래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직결된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일반 유통과 달리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투명한 시스템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의약품 유통망이 변화하지 않으면 편할 순 있다. 하지만 변화를 하지 않으면 국민의 건강권과 시장의 투명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갑질'을 논할 때가 아닌, 퇴출당하지 않기 위한 '혁신'을 논의해야 할 때다.
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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