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방산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 각지로 이어진 수출 계약은 K방산의 위상뿐만 아니라 방산업체들의 체급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국내 방산업체 빅4(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한국항공우주산업)의 수주잔고만 보더라도 올해 1분기 기준 100조원에 달한다. 몇 년치 일감을 확보했다는 숫자는 시장에 분명한 기대를 준다. 다만 문제는 그 숫자 뒤에 있는 현장이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났다. 사고 이후 회사는 국내 주요 사업장의 생산라인을 멈추고 특별 안전점검에 나섰다. 점검을 마친 일부 사업장은 생산을 재개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여전히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회사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을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을 단순히 한 사업장의 사고와 사후 점검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물론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는 관계 당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K방산 전체가 유례없는 증산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방산 생산 현장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추진제와 장약, 탄약, 유도무기 등 고위험 물질과 공정을 다루는 만큼 작은 실수 하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생산 차질은 물론 근로자 생명과 지역사회 안전 문제로까지 번진다.
그동안 K방산을 둘러싼 관심은 주로 수출 계약 규모와 수주잔고, 실적 개선, 주가 상승에 집중돼 왔다. 어느 기업이 얼마를 수주했는지, 어느 국가 시장에 진출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반면 그 물량을 실제로 생산하는 현장이 얼마나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수출 호황은 또 다른 부담을 동반한다. 물량이 늘어나면 납기를 맞추기 위해 설비 가동률을 높이고 교대 근무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협력사 투입도 늘어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안전교육과 작업 표준, 설비 점검, 위험 공정 분리 같은 기본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성장의 속도가 안전 체계의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하면 호황은 곧 리스크로 바뀐다.
실제로 K방산은 지금 내수 중심 산업에서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외형적으로는 매끄러운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납기 압박, 생산능력 확대, 협력사 관리, 안전 시스템 고도화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수주 실적이 늘어날수록 안전 투자 역시 함께 늘어나야 하는 이유다.
방산은 한 번의 계약으로 끝나는 산업이 아니다. 납품 이후 유지·보수(MRO), 부품 공급, 추가 수주로 이어지는 장기 신뢰 산업이다. 해외 고객이 평가하는 것은 무기의 성능만이 아니다. 그 무기를 만드는 공장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 생산 체계가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도 중요한 경쟁력이다.
수주잔고 100조원은 K방산의 현재를 보여주는 숫자다. 그러나 현장의 안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숫자는 언제든 생산 차질과 사고 비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K방산의 다음 경쟁력은 더 많은 계약서가 아니다. 작업복을 입고 생산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안전에서 시작된다.
뉴스웨이 이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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