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를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삼성은 지금 의도했든 아니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논란에서 출발한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확대를 요구했고 결국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얻어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반도체 경쟁력 회복과 AI 시대의 성장에는 현장의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조가 노사협상 과정에서 보인 "반도체 사업의 성과는 오롯이 반도체 직원들의 공로"라는 인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삼성전자의 성공은 특정 사업부만의 결과가 아니다. 스마트폰과 가전, 네트워크 사업은 물론이고 수많은 협력업체와 장비기업, 소재기업, 물류기업, 심지어 삼성전자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까지 거대한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지원도 있어야 하는데, 각종 세금 감면 등은 결국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정당한 몫을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과 전체가 노동자만의 몫이 될 수는 없다.
바로 여기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는 기업이 주주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전통적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선다. 기업은 노동자와 협력사, 소비자, 지역사회,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체이며 기업이 창출한 성과 역시 이들과 함께 공유돼야 한다는 철학이다.
최근 정부가 AI 산업 발전으로 발생하는 초과세수의 사회적 환원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가 만들어낸 부가 특정 기업과 계층에만 집중된다면 사회적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장 자체가 아니라 성장의 과실이 어떻게 순환하느냐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다. 삼성전자는 먼저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렸다. 몇 년 전부터 배당 확대 정책을 강화하면서 시장과 주주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힘써왔다. 당시만 해도 삼성이 지나치게 주주자본주의적 관점에 기울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최근 변화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노사 협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규모의 성과보상을 제공했다. 노동자 역시 기업 성과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그리고 노사 합의 직후 삼성은 향후 5년간 5조원을 산업 생태계 조성과 인재 육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협력사와 공급망 경쟁력 강화, 미래 인재 육성은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는 투자가 아니다.
하지만 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주 다음에 노동자, 노동자 다음에 협력사와 미래세대로 이해관계자의 범위를 넓혀간 셈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최근 발표한 삼성전자의 20% 환급 행사는 매우 흥미롭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마지막 퍼즐 같은 느낌이랄까.
삼성전자는 제품 구매 고객에게 구매액의 20%를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왜 하필 온누리상품권일까. 일반 포인트나 자사 상품권이었다면 혜택은 소비자 개인에게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서 사용된다. 삼성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혜택을 받고, 그 혜택은 다시 동네 상점과 전통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기업의 판매 성과가 소비자를 거쳐 지역경제와 소상공인에게까지 전달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삼성은 이미 주주와 노동자에게 성과를 나눴다. 협력사와 미래세대를 위한 천문학적인 투자계획도 내놨다. 여기에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그 혜택이 다시 골목상권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기업의 성과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일회성 행사나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협력사와의 진정한 상생, 지역사회와의 지속적 동행,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삼성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주주자본주의가 기업의 성과를 주주에게 집중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그 성과를 보다 넓게 순환시키는 데 의미를 둔다.
만약 삼성전자의 최근 행보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중심에 이재용 회장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삼성이 주주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향하는 첫걸음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길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삼성의 새로운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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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황의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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