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서킷 떠나 일상으로 들어온 '야수'···메르세데스-AMG GT의 두 얼굴

산업 자동차 야! 타 볼래

서킷 떠나 일상으로 들어온 '야수'···메르세데스-AMG GT의 두 얼굴

등록 2026.05.07 18:18

권지용

  기자

476마력 V8 엔진의 날것 그대로의 질감과 생생한 배기음 압권모터 개입없는 내연기관의 경쾌한 핸들링···스포츠카 본질 충실결벽증에 가까운 마감 품질···잡소리 불허하는 통쇠 같은 견고함

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

오늘의 주인공은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메르세데스-AMG의 자존심이자 포뮬러 기술력의 결정체, AMG GT입니다. 벤츠가 아닌 AMG가 개발한 순수혈통 스포츠카가 2세대로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독일 아팔터바흐의 장인들이 선택한 방향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1세대가 '롱노즈 숏데크(앞코는 한강만큼 길고 꼬리는 몽당연필처럼 짧은, 오직 달리기만을 위해 태어난 황금비율 차체)'의 전형을 보여주며 두 명만 태우고 서킷을 휘젓던 정통 스포츠카였다면, 2세대는 뒷좌석을 갖춘 2+2 구조의 그랜드 투어러(GT)로 성격이 변했습니다.

누군가는 순수함이 희석되었다고 우려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2+2 시트를 정말 좋아해서 오히려 환영할 만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1세대의 폭력적인 차체 비율에 비하면 살짝 아쉽긴 하지만, 일상과 장거리까지 품어낸 데일리카로서의 매력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겠죠.

오늘은 특별히 두 가지 맛을 준비했습니다. V8의 순수한 매력을 간직한 GT 55, 그리고 전기모터의 가공할 힘을 더한 하이퍼 퍼포먼스의 정점 GT 63 S E-퍼포먼스입니다. 두 대를 번갈아 타며 우리나라의 도로 곳곳을 누벼보았습니다.

메르세데스-AMG GT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메르세데스-AMG GT 실내 사진=권지용 기자

먼저 AMG GT 55에 올라탔습니다. 차 문을 열고 시트에 몸을 파묻는 순간, 이 차가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직감하게 됩니다. 바닥에 착 깔린 시트, 운전자의 시야, 두툼한 스티어링휠까지. 정말로 달리기에 최적화한 인테리어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결벽증에 가까운 조립 품질입니다. 거친 노면을 지날 때나 급격한 코너링에서 차체가 뒤틀릴 법한 상황에서도 실내에서는 그 어떤 잡소리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견고하게 맞물린 부품들이 마치 거대한 통쇠를 깎아 만든 듯한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스포츠카라면 으레 감수해야 했던 삐걱거림이나 유격은 이 차에서만큼은 남의 나라 이야기죠. 실내 대부분을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마감한 점도 이 차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속도와 품격을 동시에 추구한 결과물이란 뜻이죠.

가속 페달에 살짝 힘을 주면 시트 바닥을 타고 묵직한 진동이 전해집니다. V8 엔진 특유의 거친 고동 소리죠. 마치 거대한 맹수가 사냥을 앞두고 내뱉는 낮은 으르렁거림에 가깝습니다. 엔진룸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울음이 차체를 타고 시트로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엔진 소리를 스피커로 흉내 내는 시대에 이렇게 생생한 기계적 마찰음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럽습니다.

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

가속 페달을 조금 더 깊게 밟으면 이 차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여덟 개의 실린더가 짜낸 476마력의 힘이 지체 없이 차체를 앞으로 내던집니다. 노면을 움켜쥐며 파고드는 타이어의 집요한 그립이 운전자에게 더 큰 자신감을 불어넣죠. 속도는 계기판의 숫자가 아니라, 빠르게 오르는 엔진회전수와 빛처럼 지나가는 풍경으로 체감해야 합니다. 스티어링을 살짝만 꺾어도 차체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죠. 코너에서는 물리 세상의 원심력과 AMG 세상의 기술력이 서로를 견제하며 팽팽한 균형을 이룹니다.

엔진회전계 바늘이 치솟는 속도만큼 연료 게이지는 무자비하게 줄어듭니다. 대신 그 대가로 얻는 가속감과 쾌감은 그만한 가치를 증명하죠. 그래도 힘을 빼고 고속도로에서 흐름에 맞춰 정속 주행을 이어가니 다행히 두 자릿수를 간신히 찍습니다. V8 스포츠카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수치이지요. 실용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열은 코트나 가방을 던져두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공간입니다. 2열 폴딩도 가능해서 트렁크 공간을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골프백이나 여행용 캐리어를 싣고 교외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러의 목적을 완벽히 수행하죠.

다음으로 GT 63 S E-퍼포먼스 차례. 이 차는 AMG가 그리는 미래를 상징합니다. 포뮬러원에서 승승장구하는 메르세데스-AMG F1 팀의 기술력을 답습했으니까요. 816마력이라는 현실감 떨어지는 괴력을 발휘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입니다만, 외형은 55와 거의 같습니다. 그나마 뒷범퍼에 추가된 충전 포트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시승 코스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 악명 높은 정체 구간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GT 63 S E-퍼포먼스는 이런 환경에서 오히려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6.1kWh 배터리는 PHEV 기준으로 크다고 보긴 어렵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는 전기모터만으로도 충분히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E-퍼포먼스 사진=권지용 기자메르세데스-AMG GT 63 S E-퍼포먼스 사진=권지용 기자

엔진 개입 없이 오직 전기만으로 약 15km를 주행할 수 있는데, 이 짧은 거리가 주는 심리적 해방감이 상당합니다. 잠자던 V8이 깨어나는 순간마다 '기름 1L'라는 벌금을 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사라지는 덕분이죠. 배터리를 다 쓴 뒤 연비를 리셋한 후 시내 정체 구간과 고속 주행을 섞은 조건에서 최종 연비는 8.8km/L를 기록했습니다. 800마력이 넘는 출력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공학적인 성취라 부를 만합니다. 엔진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가속 페달을 밟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친절은 여기까지. 63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속 페달에 힘을 줄 때는 묘한 긴장감이 공기를 타고 흐릅니다.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하는 찰나, 세상이 단번에 바뀌기 때문이죠. 앞차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압축될 정도의 속도가 몰아치고, 압도적인 가속에 운전자조차 스스로의 속도에 놀라 브레이크로 발을 옮기게 됩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순간입니다. 보통은 엔진회전수가 치솟는 감각에 맞춰 속도를 가늠하게 마련인데, 이 차는 전기모터가 그 빈틈을 메우며 힘을 덧붙입니다. 예측을 비껴가는 이질적인 가속감이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입니다.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꽤 인상적입니다. 레이스 모드로 설정한 뒤 5분 남짓 신나게 달리고 나면 배터리가 금세 절반 이상 차오릅니다. 덕분에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껏 즐기고, 집 주변에선 전기모드로 바꿔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여유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

두 대의 AMG GT를 번갈아 타며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완벽한 모델은 단연 GT 63 S E-퍼포먼스입니다.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토크와 엄청난 출력, 정체 구간에서의 유연함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시승을 마치고 제 마음이 기운 곳은 의외로 GT 55였습니다. 63보다 가속 성능은 조금 뒤처질지언정, 운전자가 차와 직접 소통한다는 느낌은 55쪽이 훨씬 강렬했습니다. 모터 보조 없이 V8 엔진 스스로가 내뿜는 날것의 질감, 가벼운 몸놀림이 주는 경쾌함이 스포츠카로서의 본질에 더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GT 63 S E-퍼포먼스는 GT 55에 비해 배기음의 맛이 덜합니다. 흔히 말하는 '팝콘 사운드(후연소 제어음)'가 55와 비교해 꽤나 억제된 느낌입니다. 고성능 전기차와 내연기관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정제된 느낌이랄까요.

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메르세데스-AMG GT 사진=권지용 기자

결국 스포츠카는 숫자로 설득되는 물건이 아니라, 운전자의 심장을 얼마나 세게 두드리느냐로 결정되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그 기준에서 보자면 적어도 제게는 GT 55가 한 박자 더 크게 뛰고 있었습니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