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등 원작 전성시대···가격 싸고 완성도 높아 선호
한국과 할리우드 등 두 나라의 영화 트렌드로 규정지을 수 없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는 있다. 만화,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 소설, 원작 영화 리메이크 등이다. 다시 말해 극장에 걸린 영화의 모두가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이란 점이다. 이른바 ‘판권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영화의 성적도 준수하다. 최근 각 나라의 박스오피스를 장식하는 영화 대부분이 원작이 있는 영화들이다. 역설적으로 원작이 있는 영화의 득세는 순수 창작 스토리의 퇴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무엇이 득이고 실일까.
◇코믹스? 웹툰? 영화!
현재 극장가의 대세는 만화 또는 웹툰 그리고 그래픽 노블 원작 영화들의 득세다. 흥행에서도 대부분 상당한 수준의 타율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인기는 우선 웹툰이다. 국내에서 불거진 특이한 형태로 일종의 만화다. 영어 표현의 ‘web’(웹)과 ‘cartoon’(만화)의 합성어로 ‘인터넷을 매개로 배포하는 만화’다.
득세라는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충무로 영화 제작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원천 소스는 분명하다. 가장 유명한 웹툰 작가 강풀의 작품이 대부분 영화로 제작돼 화제가 됐다. 2006년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지난해 ‘26년’까지 총 7편이 제작됐다. 적게는 70만 내외부터 많게는 300만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손익분기점(BEP)면에선 큰 이익을 보지 못했다. 결국 웹툰 원작 영화 제작에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웹툰 자체의 구성과 영화적 흐름의 연관성이 밀접하기에 제작자들에겐 흥행 성적에 관계없이 상당히 매력적인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돼 기록적인 인기를 끈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경우 기존 웹툰 원작 영화의 그것을 넘어선 700만에 육박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CJ E&M 홍보팀 이창현 부장은 “웹툰의 인기는 영화적 구성력에 있다”면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빠른 흐름이 영화적 기승전결과 잘 맞아 떨어져 각색 작업도 비교적 쉽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웹툰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 가면서 업계에선 판권 확보에도 경쟁이 붙었다. 이미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던 웹툰은 프리미엄까지 붙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이 붙었다고 해도 프리미엄 가격은 그다지 높지 않단다. 현재 A급 웹툰 작가의 작품이 최고 5000만 원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대외비라 공개하기는 그렇지만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스타급 작가의 경우 시나리오 편당 집필료가 1억에서 2억 정도”라며 “그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시나리오를 확보할 수 있다면 제작사나 투자사 입장에선 대환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웹툰 원작 영화가 많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만화 소설 리메이크 판권은?
영화 ‘미스터 고’가 개봉하면서 1980년대 만화 시장을 평정했던 허영만 화백의 원작 만화가 다시금 주목을 받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미스터 고’는 허 화백의 ‘제 7구단’을 원작으로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고릴라의 연기가 필요하기에 연출을 맡은 김용화 감독은 직접 ‘덱스터스튜디오’란 자체 제작사를 설립해 국내 CG전문가들을 총동원했다. 4년 간 400여명이 투입됐고 제작비만 250억원이 투입됐다.
이미 허 화백의 작품 중 ‘타짜’나 ‘식객’이 영화화 된 바 있다. 두 영화 모두 짭짤한 흥행을 거뒀다. 판권 확보에서도 여러 제작사나 투자사들이 나선 바 있었다. ‘미스터 고’의 투자 배급을 맡은 쇼박스 홍보팀 최근하 과장은 “판권료는 업계에선 비밀로 하고 있다. 정확한 가격을 말 할 수는 없다”면서도 “전작들보단 좀 싼 가격에 확보를 했다. 아무래도 영화화하기에 힘든 요소이지 않았나”라고 전했다.
해외 작가의 그래픽노블은 가격보단 다른 조건이 앞선다. 지난 22일 언론에 첫 공개된 프랑스 그래픽노블 원작의 ‘설국열차’는 1986년 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수작이다.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은 7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을 접한 뒤 판권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제작사 관계자는 “판권료 보다는 이 작품을 잘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면서 “연출을 맡은 봉준호, 제작을 맡은 박찬욱이란 브랜드가 판권 확보에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인기 웹툰이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판권 금액보단 원작자인 ‘HUN'작가가 영화를 실제로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작사인지를 먼저 판단했다고 한다.
할리우드는 마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월트디즈니가 코믹스(만화) 원작 판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토르, 고스트라이더 등이 모두 월트디즈니가 소유한 판권이다.
◇소설? 해외 영화 리메이크 판권은?
소설 원작의 영화는 만화 또는 그래픽 노블이나 웹툰과 달리 판권이 세분화 돼 있다. 소설은 출판 시장의 기본 콘텐츠이기에 원천적으로 작가의 이름값에 따라 판권 소유가 세 가지 단계로 구분이 된다는 것.
영화사 폴의 조윤미 기획이사는 “신진 작가의 경우 출판사에서 판권의 전부를 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진 작가는 일정 비율로 출판사와 판권 비율을 조정하고,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경우 판권 소유 비율은 더욱 커진다”면서 “각각의 상황에 따라 판권액은 분명히 달라진다. 최근에는 영화 제작비가 전체적으로 상승하면서 그 안에 포함된 시나리오 개발비도 상승했다. 결국 판권 금액도 동반 상승 분위기다”고 전했다.
원작 영화가 있는 작품의 리메이크 판권은 또 다르다. 리메이크란 원작 영화의 주요 설정을 가져온 뒤 재창조하는 부분으로, 할리우드 영화들이 잘 쓰는 이른바 ‘리부트’의 형식과 비슷하다. 때문에 같은 소스를 공유하는 두 편의 영화가 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따른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감시자들’을 연이어 히트시킨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해외 판권의 경우 두 가지다. 하나는 해외 세일즈가 가능한 판권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리메이크 후 자국내 상영만 가능한 판권이 있다”면서 “국내 영화 시장 형편상 전자보다는 후자의 계약이 편하다. 물론 가격 면에서도 차이는 있다”고 말했다.
결국 어떤 케이스를 놓고 봐도 원작이 있는 영화 개발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 입장에선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된다. 우선 시나리오 개발에 들어가는 투자비용이 줄어든다. 또한 검증된 소스이기에 흥행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다. 하지만 ‘순수 창작 스토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한 제작사 대표는 “결과적으로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의 제작이 할리우드나 국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흥행과 직결된다. 곧 돈의 문제”라며 “편당 제작비가 평균 30억 선이다. 실패할 경우 그 손해는 고스란히 제작사의 몫이 된다. 하지만 ‘원작’이란 검증을 거친 소스는 그 위험율을 상당부분 상쇄시킨다. 순수 창작물을 기피한다는 지적보단 투자대비 손실률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고 말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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