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기술원-애니챗, '산업현장 AI 다국어 소통 플랫폼' 공동 추진NFC·QR 기반 즉시 접속··· 현장 사투리·전문용어까지 다자간 실시간 '척척'
"오늘 A구역 도장 작업이 취소되고 B구역 비계 해체로 변경됐습니다. 당초 계획과 달리 10시에 크레인이 먼저 진입하니 작업 동선 확보하세요."
수도권의 한 건설 현장. 아침 안전점검회의(TBM)에서 반장이 전한 긴급 변경사항에 외국인 근로자 B씨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크레인'이나 'A구역' 같은 단어는 눈치껏 알아들었지만, 공정이 왜 바뀌었는지, 크레인이 들어올 때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등 핵심 행동 수칙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변경된 동선을 알지 못한 채 기존 작업 구역으로 이동하는 등 자칫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국내 산업 현장의 모습이 급변하고 있다. 건설, 조선, 플랜트 현장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이 가파르게 늘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건설업에서 하루 이상 일한 외국인 근로자는 22만9541명으로 전체의 14.7%를 차지했다. 2020년 11.8%에서 4년 만에 2.9%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다양한 국적의 근로자들이 한 공간에서 일하면서 근로자끼리도 말이 통하지 않는 '작은 바벨탑'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늘어난 외국인 인력만큼 안전 문제도 커지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2024년 건설업 외국인 산재 피해자는 3402명으로 2020년보다 약 32% 늘었고, 사망자는 48명에 달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날씨, 장비 투입, 공정 지연 등에 따라 작업 계획과 동선이 수시로 변한다. 이러한 긴급 변경사항이나 위험 요소 전달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한 작업 지연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 사고로 직결된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들이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을 위해 자체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지만, 현장 소음과 사투리, 건설·산업 전문용어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도 해법 찾기에 나섰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올해 '건설현장 맞춤형 AI 다국어 용어집 구축 및 AI·OSC 전문인력 양성 로드맵 수립' 용역을 2억원 규모로 발주했다.
"안전도 이제 '정확한 번역'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재단법인 한국비계기술원(원장 홍기철)과 다국어 AI 번역 전문기업 ㈜애니챗(대표 이승진)이 손을 잡았다. 양사는 25일 경기도 안성 비계기술원 수도권본부에서 박봉식 부원장과 이승진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현장 AI 다국어 소통 플랫폼 공동 출범식'을 열고 안전 소통 체계 구축을 위한 협력을 본격화했다. 애니챗은 현장 맞춤형 AI 플랫폼 고도화를 지속하고, 비계기술원은 현장 전문용어 DB 지원과 함께 건설, 플랜트, 조선소 등에 보급 확산을 전담하게 된다.
애니챗 측에 따르면 자체 개발한 AI 엔진과 특허 기술을 활용해 사투리와 구어체 지시사항, 복잡한 공정·전문용어 등을 다국어로 번역한다. 하나의 대화방에서 3개 이상의 서로 다른 언어를 동시에 번역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별도의 앱 다운로드나 회원가입 없이 작업모나 안전조끼, 현장 입구에 붙은 NFC 태그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기만 하면 즉시 다국어 대화방이 열린다. 한 대화방 안에서 관리자가 한국어로 "오늘 작업구역 변경"을 말하면 베트남어, 중국어, 우즈베크어 등 각 근로자의 모국어로 실시간 번역·음성 전달돼 현장 전체에 위험 경고와 지시가 공유된다.
'눈치 작업' 대신 '확실한 소통'으로···현장 문화의 변화
애니챗은 일부 건설현장과 지자체, 의료기관 등에서 솔루션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작업 변경사항과 안전 지침을 각자의 모국어로 전달해 현장 소통을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기철 한국비계기술원 원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환경에서 안전관리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며 "애니챗과의 협력을 통해 현장의 언어 장벽을 허물고,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는 동시에 작업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안전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진 ㈜애니챗 대표는 "단순 번역을 넘어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AI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향후 이미지·문서 번역과 API 기반 B2B 사업 및 다양한 플랫폼과의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근로자가 건설현장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언어' 역시 새로운 안전관리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번역 기술이 실제 현장의 의사소통 오류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가 향후 확산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뉴스웨이 김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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