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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즉시연금 일괄지급 거부···금감원 vs 생보사 ‘전면전’

삼성생명, 즉시연금 일괄지급 거부···금감원 vs 생보사 ‘전면전’

등록 2018.07.26 18:00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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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이사회서 일부 지급키로 결정일괄구제 근거 논란 속 법원 판단에 맡겨한화·교보생명 등 다른 대형사도 버티기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중징계 압박할수도

생명보험업계 1위사 삼성생명이 과소 지급한 즉시연금을 일괄 지급하라는 금융당국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소송을 예고했다. 삼성생명의 결정을 예의주시하던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다른 대형사들도 버티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일괄 구제 방침을 강조해 온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반기를 든 것이어서 금감원과 보험사들간의 전면전이 불가피해졌다.

생명보험사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과소 지급 사태 일지 및 미지급액. 그래픽=박현정 기자생명보험사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과소 지급 사태 일지 및 미지급액. 그래픽=박현정 기자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를 열어 만기환급(상속만기)형 즉시연금 과소 지급 고객들에게 상품 가입설계서상의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 예시 금액을 지급키로 했다.

약속한 최저 이율을 적용했을 때보다 적게 지급한 연금만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법원에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모든 가입자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하지 않고 계산한 미지급액을 전액 일괄 지급하라는 금융감독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법적인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이사회는 법원의 판단과는 별개로 고객 보호 차원에서 해당 상품 가입 고객에게 제시된 가입설계서상의 최저보증이율 적용 시 예시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검토해 집행할 것을 경영진에게 권고했다”고 말했다.

이번 이사회는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생보사들의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 지급 여부를 좌우하는 분수령으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액은 약 4300억(5만5000건)원으로 추산된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의 미지급액은 각각 약 850억원(2만5000건), 700억원(1만5000건)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을 지급토록 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모든 가입자에게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2년 9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한 A씨에게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 연금을 지급했으나, 상품의 약관에는 연금 지급 시 해당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삼성생명은 올해 2월 분조위의 결정을 수용해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과 이자를 전액 지급했으나, 동일한 유형의 다른 가입자에게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삼성생명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일괄 구제 방침을 내세워 미지급액 지급을 압박하자 이날 이사회에서 일괄 지급 여부를 논의했다.

윤 원장은 지난 9일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발표하면서 “키코(KIKO) 등 과거 발생한 소비자 피해나 암보험, 즉시연금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민원·분쟁 현안의 경우 소비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정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윤 원장은 “소비자 보호 쪽으로 감독 역량을 이끌어감으로써 금융사들과의 전쟁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현재 시범 운영 중인 일괄구제제도를 통해 소비자를 구제토록 하고, 분조위 결정 취지에 위배되는 부당한 보험금 미지급 사례에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윤 원장은 이사회 하루 전날에도 일괄 구제 원칙을 재차 강조하며 삼성생명 이사회를 압박했다.

윤 원장은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과소 지급 관련 대처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의 질의에 “16만명의 가입자가 상당히 유사한 사례이고 금액도 적지 않은 금액이어서 일괄 구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괄 구제가 안 될 경우 일일이 소송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행정의 낭비도 굉장히 많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실효되는 상황도 있어서 일괄 구제로 가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일괄 지급 거부 의사를 밝히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했다. 향후 소송을 통해 법리 공방을 벌여 일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없음을 입증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업계 내부에서는 애초부터 보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분조위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상품 자체가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 공제를 전제로 만들어진 상품”이라며 “보험상품 판매 시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는 보험의 기본 구조 자체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약관에 관련 내용이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거나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추가로 지급할 경우 오히려 종신형 즉시연금 가입자와의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윤 원장이 강조하는 일괄 구제는 법적 근거가 없어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정무위 업무보고 당시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일괄 구제하도록 지도하고 엄정 대응하겠고 밝혔는데 의무가 없는 일을 정부 당국이 생보사에게 하도록 요구하는 게 법적 근거가 있나”라며 금감원의 직권남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금감원에서 사전 심사 과정에서 약관에 문제가 없다고 회신해 판매를 했는데 보험사가 100% 책임져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생명보험업계 1위사 삼성생명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 지급 요구에도 26일 이사회에서 일부만 지급키로 했다. 그래픽=박현정 기자생명보험업계 1위사 삼성생명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 지급 요구에도 26일 이사회에서 일부만 지급키로 했다. 그래픽=박현정 기자

삼성생명의 일괄 지급 거부 결정에 따라 한화생명과 교보생명도 미지급액 중 일부만 지급하거나 소송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생명의 경우 올해 6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 B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을 지급하라는 분조위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의견서 제출 기한을 오는 8월 10일까지 한 차례 연장한 상태다.

한화생명은 삼성생명과 달리 약관의 연금 지급액 관련 항목에 ‘만기보험금을 고려해 공시이율에 의해 계산한 이자 상당액에서 소정의 사업비를 차감해 지급한다’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분조위의 판단이고,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덜 지급한 연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요구다.

한화생명은 우선 B씨 1명에 대한 미지급액 지급 여부가 달린 의견서를 통해 약관에 문구가 있다는 점을 적극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가입자에게도 일괄 지급하라는 요구에는 아예 문구가 없는 삼성생명의 일부 지급 결정 사례를 들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되지 않은 교보생명도 삼성생명의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이 일괄 지급을 결정했다면 교보생명도 지급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분조위 결정 수용 다음 달인 3월 모든 생보사에 관련 사안을 분조위의 결정과 동일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방침을 통보한 바 있다.

교보생명의 경우 삼성생명과 마찬가지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다.

교보생명은 27일 정기 이사회를 개최하기로 해 관련 사안을 논의하거나 입장을 정할지 주목된다.

금감원은 이들 대형 생보사의 버티기에 대응해 일명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 때처럼 고강도 제재 카드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은 지난 2016년 주계약 또는 특약을 통해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판매했으나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생보사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토록 했다.

금감원은 당시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관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약관상의 실수일 뿐 자살은 재해가 아닌 만큼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다.

특히 대법원은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인 2년이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금감원은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보험금을 전액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3대 대형 생보사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 불가 입장을 고수하다 금감원의 고강도 제재 방침에 전액 지급키로 했다. 금감원은 영업정지, 대표이사 해임 권고 등 중징계 방침을 사전 통보하며 보험금 지급을 압박했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5월 최대 9억원에 달하는 과징금과 기관경고, 일부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받았다. 삼성생명은 8억9400만원, 교보생명은 4억2800만원, 한화생명은 3억9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뉴스웨이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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