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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사라지는 삼성 內 ‘제일’ 브랜드의 기구한 역사

서서히 사라지는 삼성 內 ‘제일’ 브랜드의 기구한 역사

등록 2015.07.17 19:19

정백현

  기자

제일합섬 이어 제일모직도 역사 속으로···제일기획만 유일 생존

한 때 삼성그룹을 상징했던 ‘제일(第一)’ 브랜드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과거 삼성그룹에는 ‘삼성’이라는 상호만큼이나 ‘제일’이라는 브랜드를 단 계열사가 꽤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제일’ 브랜드의 대표 격이던 제일모직도 오는 9월 1일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으로 사명(社名)이 사라지게 됐다.

일부 삼성 계열사가 사명으로 활용했던 ‘제일’ 브랜드는 고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평소 경영철학이 담긴 대표적 증거였다. 생전의 호암은 모든 업종에서 삼성 계열사가 무조건 1위를 장식해야 한다는 ‘제일주의’를 입이 닳도록 강조했다.

회사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도 이 철학이 여실히 투영됐다. 1953년 부산에서 창업한 제일제당은 무역 사업(현 삼성물산 상사부문)에서 성공을 거둔 호암이 제조업 분야에 처음으로 진출하면서 만든 회사의 이름이었다.

이듬해인 1954년 대구에서 창업한 제일모직은 본격적인 그룹 확장기의 출발선에서 만들어진 회사였다. 당시 양대 제조업 계열사에 연달아 ‘제일’이라는 브랜드가 사용된 것은 그만큼 제조업에서도 삼성이 1위를 거머쥐겠다는 호암의 뜻이 담겨진 셈이었다.

이후 제일합섬(1972~1997)과 제일기획(1973~현재) 등 ‘제일’이라는 브랜드를 사명에 반영한 계열사들이 등장했다.

호암의 작명 의도대로 각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제일제당은 국내 대표적인 식품기업으로 발전했고 제일모직 역시 대표적인 직물 기업이자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일기획은 지금도 글로벌 광고업계를 호령하는 광고 기획사로 명성이 높다.

과거에는 ‘중앙’이라는 브랜드도 종종 있었다. 이 역시 삼성이 1등 기업으로서 세상의 한가운데 정점을 차지해야 한다는 호암의 각오가 담긴 증거였다.

이번 합병의 주체 기업인 제일모직의 전신 중앙개발(최초 법인명 동화부동산, 1967년 중앙개발로 사명 변경)과 1999년 삼성의 품을 떠난 중앙일보가 대표적 사례다. 중앙개발은 훗날 삼성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일’이라는 기업 이름은 ‘삼성’으로 바꿔 달거나 삼성의 품을 떠난 뒤 다른 이름을 찾았다.

제일제당은 1993년 호암의 맏며느리 손복남 여사(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모친) 일가에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 삼성과 결별을 선언했고 CJ그룹으로 독립했다. 독립 이후에도 제일제당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제일제당이라는 이름이 장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식품업계에서 제일제당이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72년 제일모직 경산공장(폴리에스터 혼방직물공장)을 기반으로 제일모직과 일본 자본이 합자해서 만든 제일합섬은 몇 차례의 사명 변경 과정을 거쳐 현재는 ‘도레이케미칼’이라는 이름의 화섬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 제일합섬은 1995년 호암의 차남인 고 이창희 새한그룹 회장 일가가 삼성에서 떼어낸 뒤 새한미디어와 함께 새한그룹의 계열사로 운영됐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진행된 과잉 투자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 경영난을 겪었고 결국 지난해 일본 도레이가 인수했다.

직물 생산업으로 시작된 옛 제일모직은 간판만 남긴 채 지난해 사라졌다. 옛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사업구조 재편 작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 1일자로 삼성SDI와 합병돼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이름이 됐다.

다만 제일모직이라는 브랜드의 상징성을 감안해 사명은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갔다. 그러나 그 사명도 1년 2개월 만에 또 사라지는 비운을 맛보게 됐다.

그러나 제일모직이라는 브랜드는 어떻게든 존치시키겠다는 것이 삼성 측의 계획이다. 제일모직이 60년 넘게 대한민국의 대표적 패션 기업으로 성장해 온 만큼 보존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내부 분석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9월 합병법인 출범 이후 제일모직 사명에 대한 활용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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