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은 보이지 않는 암투의 시간이었다. 사실 태조 이성계부터 28대 순종황제까지의 조선왕조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혈육간의 살육이 난무했고, 당파와 정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가장 잔인했던 피바람을 몰고 왔던 시간을 꼽자면 단연코 조선 초 왕자의 난의 중심에 섰고, 또 조선의 가장 강력했던 전제군주의 기틀을 마련했고 조선의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을 완성했던 왕 ‘태종 이방원’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대하드라마 ‘정도전’을 통해 그려졌던 조선 초기 피바람의 그림자를 영화 ‘순수의 시대’가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관객들을 찾는다.
‘순수의 시대’는 역사적으로 조선 건국의 주역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고려 말 충신 정몽주, 그리고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의 중심에서 벗어난 시도를 한다. 이방원을 중심에 두고 가상의 인물 장군 김민재(신하균)와 왕의 사위 부마 진(강하늘) 세 인물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스토리의 힘을 실었다.
연출을 맡은 안상훈 감독은 3일 오전 서울 압구정 CGV에서 열린 ‘순수의 시대’ 제작발표회에서 영화 기획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팩션이지만 역사적 근거는 분명했다.
안 감독은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을 당시가 밤이 아닌 낮이었다”면서 “의심이 됐다. 왜 대낮이었을까. 그리고 경순공주(태조의 셋째 딸)와 그의 남편 이제의 출생년월일이 없고 죽은 날짜만 있는 점 등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의문을 품은 시간의 공백과 상상력은 ‘순수의 시대’의 기틀이 됐고, 그 안에서 실존 인물 이방원 외에 김민재와 진이란 인물이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가장 중심에 선 인물은 단연코 이방원이다. 역사적으로 이방원은 잔인무도할 정도의 결단력과 힘을 과시한 전주군주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이미 여러 드라마를 통해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해왔다. 이번 ‘순수의 시대’에선 그동안 부드러우면서도 숨은 칼날을 소유한 배우 장혁이 ‘이방원’을 연기해 새로운 ‘이방원’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이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장혁은 “이미 고착화된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다”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이방원도 사람이었다. 사극이면서도 그 인물이 지닌 양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공개한 캐릭터 포스터에서도 장혁은 왕조 건국에 가장 막대한 공을 세웠지만 결코 왕이 될 수도 돼서도 안되는 인물의 표면적인 슬픔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 숨긴 야망의 이면성을 담은 무서운 인물로 그려진 모습이 드러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이방원의 실제 정적이던 정도전의 사위이자 조선초기 군사력을 장악한 장군 김민재역을 맡은 신하균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는 냉철한 장군이자 군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특히 ‘하균神’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의 연기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하균이 데뷔 첫 사극에 도전한 점,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조선 초기의 역사적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발을 내딛은 사실, 여기에 수컷 본능의 제대로 된 치열함으로 무장한 점은 이 영화의 백미로 통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하균은 “사극 장르가 처음인데 일단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을 다룬 게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면서 “많은 분량의 무술을 소화해야 했던 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이번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전했다.
영화 ‘쎄시봉’의 개봉과 함께 드라마 ‘미생’으로 ‘라이징 스타’로 떠 오른 강하늘의 존재감 역시 두 사람에 버금간다. 사실 이번 ‘순수의 시대’ 속 캐릭터 열전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이 강하늘이 연기한 ‘진’이란 인물이다. 기획 당시부터 ‘조선판 색계’로 알려진 ‘순수의 시대’에서 강하늘은 열등감과 무력함에 무너진 채 육체적 욕망만을 쫓는 타락한 인물 ‘진’을 연기한다. 아버지 김민재와 대군 이방원의 권력 쟁탈전 속에서 무력함으로 일관한 채 비열하고도 잔인한 습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기묘한 눈빛의 강하늘은 ‘순수의 시대’가 그리는 진짜 얼굴일 것이다.
강하늘은 “모든 역할의 본질 속에 악은 없다고 배웠다”면서 “진이란 인물은 누군가에겐 악함의 상징이겠지만 나름의 이유와 설득력은 분명 있다고 믿었다. 그 점을 보여 줄 것이다”고 말했다.
이밖에 신예 강한나가 복수심에 불타는 기녀 가희로 출연해 세 남자의 감정선을 조율할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안상훈 감독은 “모든 사극은 우리들의 선입견이 만들어 낸 박제가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그 시대의 진짜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보려고 노력했다”고 ‘순수의 시대’가 담은 진짜 얼굴에 대한 설명을 더 했다.
다음 달 초 개봉 예정인 ‘순수의 시대’는 조선 개국 후 7년 1차 왕자의 난을 소재로 세 남자와 한 여자가 피바람이 몰아치는 사건 속에 겪는 얘기를 그린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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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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