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백보희(조여정)는 장난감 회사의 잘나가는 마케팅 담당자다. 커다란 프로젝트를 맡고 준비를 하던 중 우연한 실수로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바로 자신의 옆집에 살던 ‘나가요’스런 오난희(클라라) 때문이다. 물론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이미 물을 엎질러졌다. ‘나가요’스런 난희는 알고 보니 성인용품점 CEO다. 보희와 난희는 술자리에서 동지애를 느끼고 의기투합 폐업직전의 성인숍을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친다.
영화는 제목처럼 ‘워킹맘’ 그리고 현대 부부의 가장 큰 문제인 ‘섹스리스’, 여기에 성문화를 저급함으로만 취급하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시선, 붕괴된 가족 문제 등 상당히 밀도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문제를 설명하고 얘기하면서 코미디 장르를 활용했고, 또 도구적으로 성인 용품을 이용해 재미를 풀어나갔다. 사실 노출은 이 영화에서 양념 수준도 안 되는 얘기다.
완벽한 섹스리스 부부로 출발한 구강성(김태우)-백보희 부부의 완벽한 역전 현상을 일궈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난희였다. 보희와의 동업을 통해 보희 외면의 일적 욕구를 내면에 숨은 성적 욕망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은 사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부부라면 누구라도 공감 가능한 과정이다. 사랑이 먼저인가 육체관계가 먼저인가. 그리고 성적 자극을 통해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필요성을 건드릴 수 있는가란 점은 부부 생활의 영원한 숙제와도 같다.
하지만 침대 속 뜨거운 자신의 아내가 그 열정을 침대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면 남성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강성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침대 안에서만 즐겨야 하는 성을 위해 아이의 아픔도 외면했던 아내를 스스로 외면하는 모습은 부부의 또 다른 문제, ‘워킹맘’의 고충이자 슬픔이다. 가장 가깝지만 어쩌면 가장 멀게만 느껴지는 부부 관계가 결국 침대 속 성관계로만 이뤄진 연결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란 영화 속 얘기는 결코 쉽고 가볍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 모든 장면은 조여정과 김태우의 능수능란한 연기력이 커버한다. 김태우는 이미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에 이름을 올린 생활 연기의 달인이다. 힘을 빼고 그대로 몰입한 김태우표 ‘구강성’은 현대 남성의 고민을 담은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인 남성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대학 후배 수범(배성우)과의 ‘밤일’ 대화에서 선보이는 기상천외한 답변은 남편들이라면 저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워킹걸’ 최고 조력자는 조여정이다. ‘방자전’ ‘후궁’ ‘인간중독’을 통해 섹시함의 포텐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조여정은 ‘워킹걸’에선 발군의 코미디와 함께 김태우의 생활 연기에 상승효과를 전달한다. 베드신에서 주고받는 대화, 딸의 축구경기 결승전에서 선보인 응원 원맨쇼, 술취한 연기 등은 앞으로 ‘조여정표 코미디’란 이름을 붙여할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게 만든다.
이미 남성 관객이라면 ‘클라라’의 이름 석 자에 눈길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이번 영화의 주포(主砲)다. 프로야구 시구에서 보여 준 그의 섹시 포텐은 이번 영화에선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매력이 비단 섹시함만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듯 유쾌한 기운을 불어 넣는다. 백치미와 엉뚱함의 경계선을 묘하게 타고 노는 모습은 클라라를 선택한 정범식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표경수(고경표)와의 달달 모드에서 보여 준 클라라표 ‘맹한 연기’는 섹시와 코미디의 적절한 배합의 묘수를 볼 수 있다. 고경표의 고막을 때리는 웃음 연기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울릴 정도로 묘한 중독성을 가진다.
이밖에 배성우 라미란 김기천 조재윤 등 충무로 명품 조연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마지막 가족의 완성이란 결말은 ‘워킹걸’이 그저 섹시와 코미디에만 방점을 찍은 화장실표 팝콘 무비가 아님을 아주 가벼운 터치의 화법으로 대답하고 있는 듯하다.
쉽게 보고 즐겁게 극장을 나서고 싶다면 ‘워킹걸’이 그만이다. 오랜만에 충무로에 여성 투톱 영화가 등장했다. 조여정-클라라, 그리고 섹시 코미디란 조합이라면 재미 보증수표 아닌가. 개봉은 내년 1월 8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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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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