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 반복···'값싼 원유'보다 '안정적 공급''에너지 안보' 초점, 미주·중앙아시아 공급선 확대정제설비 구조 영향···설비 유연성·운영 역량 관건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조달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과 반복되는 중동 리스크로 수십 년간 유지해온 중동산 원유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업계 경쟁의 축도 '가격'에서 '공급 안정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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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유업계가 중동산 원유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공급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안정성 확보가 변화의 핵심 배경으로 부상했다
올해 1~5월 국내 원유 도입량 중 중동산 원유 비중 62.8%
전년 71.5% 대비 10%p 가까이 하락
같은 기간 북미산 원유 비중 21.6%→26.6%, 아프리카산 1.7%→5.3%로 증가
SK에너지는 중동산 원유 비중 50% 수준까지 축소 추진 중
GS칼텍스는 카자흐스탄산 CPC 원유 도입 확대
S-Oil은 사우디 얀부 항구 물량 확보와 콜롬비아산 원유 시험 도입
정유업계는 중동 리스크와 호르무즈 해협 통항 비용 부담 등으로 공급선 다변화에 집중
원유 구매 전략 변화가 설비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
미국·남미산 원유 도입 확대에 따라 정제설비 유연성, 배합 전략 중요성 커짐
정유업계 경쟁력 기준이 가격에서 공급망 운영력과 에너지 안보 대응력으로 이동
특정 지역 의존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우려 확산
기업 가치와 산업 구조 자체가 변화하는 흐름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 원유 도입량 가운데 중동산 원유 비중은 62.8%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비중(71.5%)과 비교하면 10%포인트(p) 가까이 낮아진 수치다. 같은 기간 북미산 원유 비중은 21.6%에서 26.6%로 확대됐고 아프리카산 원유 비중은 1.7%에서 5.3%로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유업계가 비중동산 원유 확보에 나선 배경에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복되면서 공급망 안정성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 점이 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리 및 비용 부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질 경우 원유 가격 상승은 물론 운송비, 보험료, 통항 관리 비용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국내 정유사들은 특정 지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장기적으로 중동산 원유 비중을 50% 수준까지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브라질 등 미주 지역 원유 도입으로 조달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이는 국내 정유업계가 지향하는 공급망 다변화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GS칼텍스도 최근 카자흐스탄산 CPC(Caspian Pipeline Consortium) 원유 도입을 확대하며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CPC 원유는 카스피해 인근 유전에서 생산돼 러시아 흑해 항구를 통해 수출되는 대표적인 중앙아시아 원유다.
S-Oil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얀부(Yanbu) 항구 물량 확보를 강화하는 동시에 최근에는 콜롬비아산 중질유를 약 4년 11개월 만에 시험 도입하는 등 공급선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정유업계의 변화는 단순한 원유 구매 전략 수정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국내 정유사들은 소수의 중동 산유국과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국, 캐나다, 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생산자와 물류망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동 산유국과의 관계 관리와 가격 협상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원유 구매부서의 역할도 단순 조달을 넘어 공급망 관리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의 원유 수급 전략이 달라지면서 원유 정제설비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국내 정유설비는 오랜 기간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돼 있다. 중동산 원유는 황 함량이 높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성질을 가진 만큼 이에 맞춰 설비가 설계돼 있다.
반면 미국 셰일오일이나 일부 남미산 원유는 성상이 달라 정제 과정에서 별도 배합 전략이 필요하다. 비중동산 원유 비중이 늘어날 경우 정제 효율을 유지하기 위한 원유 배합 전략 변화와 설비 운영 방식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원유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정유사의 설비 유연성과 운영 역량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업계의 변화는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다. 과거 정유산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싼 원유를 들여오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기업 가치와 직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원유는 여전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핵심 자원"이라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된 만큼,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정유업계 경쟁력은 단순한 정제 효율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운영 능력과 에너지 안보 대응 역량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김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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