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압도하는 정책금융 '원팀'···지역금융 '의기투합'단순 대출 넘어 산업 생태계 설계자로···정책금융 역할 확대국가 균형발전 최전선 선 국책은행···내부는 지방이전설에 '술렁'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 기조가 본격화되자 금융권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의 탈(脫)서울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국책금융기관들도 손을 잡고 지방 금융지원에 나섰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3곳은 지난달 '정책금융기관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신용보증기금, 한국무역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기관도 힘을 보탠다.
정책금융기관협의회는 생산적 금융 지원 확대를 중심으로 국민성장펀드와의 협력사업 강화, 지방주도 성장을 위한 지역금융 확대 등 국정목표 달성을 위해 의기투합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의회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던 과거와 달리, 공동 플랫폼을 구축해 생산적 금융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부 기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정책금융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하나의 팀으로 뭉쳐야 할 때"라며 "지역금융 확대를 통한 지방주도 성장 견인 등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 창출을 위해 정책금융기관 간 긴밀히 소통하고 협업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책금융, '1호' 현대차그룹 투자의 의미
'원팀'을 선언한 정책금융기관협의회는 이달 '1호' 협력사업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만금 투자 프로젝트를 선정하며 포문을 열었다.
앞서 지난 2월 현대차그룹은 '8조9000억원 규모' 새만금 지역 혁신성장거점 투자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새만금 지역 112만4000㎡(약 34만평) 부지에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AI 데이터센터, 1GW급 태양광 발전, AI 수소 시티 등 미래 신사업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로봇·AI·에너지 솔루션 중심 미래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결정은 현대차그룹이 새만금 투자계획을 발표한 지 38일 만에 매우 이례적인 속도로 정책금융 협력 틀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도 업무협약식에서 "투자계획 발표 38일 만에 4곳의 정책금융기관과 함께하게 됐다"며 "매우 이례적인 속도로, 이 사업에 대한 민관 공동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방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5극 3특' 국가 균형발전 전략에 발맞춰 정책금융 차원에서 정부의 지방 금융 지원을 전폭적으로 밀어준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금융·산업권에서는 이번 정책금융이 단순 지원을 넘어 민간 투자와 결합해 새로운 지역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역할로 확장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수익성을 이유로 지역 인프라 투자에 제약이 있을 수 있는 반면, 정책금융기관들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뚜렷한 정책적 목표하에 지역 기반 사업의 안정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성장펀드의 방향성을 보더라도 최근 정책금융은 지역 균형발전 정책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1호 투자로 전남 신안우이 해상풍력 투자를 낙점했다는 것은 5극 3특과 분산 에너지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정책금융기관은 각자의 역할을 바탕으로 대출, 투자, 보증 등 다양한 금융수단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종합적인 금융 지원 체계를 검토해 주리라 믿는다"며 "국민성장펀드도 민간투자와 정책금융을 연결하는 축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부 갈등에 정책 동력 꺾이나
국책은행 3사가 원팀으로 뭉쳐 지역 경제의 혈맥을 뚫겠다는 청사진은 뚜렷하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5극 3특' 구상과 맞물려 정책금융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정책금융이 지방으로 향할수록 현장에서 근무하는 조직원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특히 단순 금융지원을 넘어 '지방이전설'까지 불이 붙자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강제적 탈서울'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재명 정부는 연내 수도권에 소재한 공공기관의 2차 이전 로드맵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실이 공공기관 이전을 주도하는 가운데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추진을 위해 350여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전 타당성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여기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금융기관의 지방이전 논의가 재점화됐다는 점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의 격전지로 부상한 대구의 경우 시장 출마자들마다 잇따라 기업은행 본점 유치 공약을 내걸면서 직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국책은행을 필두로 한 정책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소재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부산(산업은행·수출입은행), 전북, 대구(기업은행), 전남(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강원 원주(금융감독원) 등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문제는 정책금융의 목표와 현장 사이의 간극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는 반박하기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일하는 직원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거리로 나선 금융노조는 "지방 이전은 금융의 기본 원리조차 망각한, 오로지 표를 위한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표퓰리즘의 극치"라며 "정부는 정치 논리에 빠져 정책금융의 근간을 흔들고 스스로 국정 철학에 모순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지방이전 논란 속에서 국가 균형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정책금융기관 내부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장기적인 정책 추진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거대 담론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정책금융기관 내부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현장의 수용성이 떨어지면 본연의 경쟁력마저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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