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지속형 주사제 시장 내 경쟁 구도 변화펩트론 '기술적 차별성 강조' 해명
9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이하 릴리)는 최근 스웨덴 바이오 기업 카무루스(Camurus)와 장기지속형 주사제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릴리는 카무루스의 플루이드크리스탈(FluidCrystal)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장기작용 인크레틴 제품의 연구, 개발, 제조 및 상용화에 대한 전 세계 독점권을 보유한다.
해당 계약에는 릴리의 독점 약물 최대 4개가 포함된다. GIP·GLP-1 이중 작용제, GIP·글루카곤·GLP-1 삼중 작용제인 레타트루타이드, 아밀린 수용체 작용제 엘로랄린타이드 등이 있으며, 필요 시 추가 물질에 대한 옵션도 가능한 계약이다.
이번 계약 발표 소식에 불똥이 튄 곳은 국내 기업 펩트론이다. 릴리와 카무루스 간 계약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지난 4일 펩트론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이틀 만에 1조6936억원 증발했다. 시장에서 릴리가 펩트론과 유사한 장기지속형 기술을 보유한 카무루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펩트론의 기술이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우려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앞서 펩트론은 지난해 10월 릴리와 스마트데포(SmartDepot) 플랫폼 기술에 대한 14개월간의 기술성 평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상 스마트데포를 적용 중인 후보물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펩트론은 오랜 기간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연구·개발했고 이 기술로 상업화에 성공한 회사이기 때문에 본계약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바 있다.
스마트데포 기술은 자체 개발한 플라스틱 수지인 PLGA(poly‑lactic‑glycolic acid) 고분자를 이용해, 초음파 분무건조 방식으로 약물 함유 미립구(마이크로스피어) 형태로 제조하는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시스템이다. 초음파 분무건조 공정을 통해 균일한 입자 크기를 구현하며, 이 입자들을 분말로 보관하다가 주사 직전 현탁하여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펩트론은 지난 2003년 대웅제약과 스마트데포 기술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류프로렐린 제제 전립선암 치료제를 1개월 지속형 치료제로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웅제약 '루피어데포'는 연 매출 20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카무루스의 플루이드크리스탈은 지질 기반의 액상 제형이다. 주사 시 체내 수분과 반응해 젤(gel) 형태로 변하면서 약물을 일정 기간 방출하는 구조다. 이미 부비달(Buvidal, 약물중독 치료용 부프레노르핀 주사제)로 유럽 시장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바 있다.
이처럼 두 기술은 작동 기전은 다르나 모두 상용화에 성공한 장기지속형 주사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펩트론이 자신하던 것과는 다르게 릴리 입장에서는 펩트론 기술이 '장기지속형' 제형 개발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시장의 이런 우려에 대해 펩트론 측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이번에 릴리가 카무루스와 맺은 계약은 단순히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에서 초격차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존 계약이나 관계사와 겹치지 않는 물질과 기술에 한해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차원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펩트론 측은 "릴리와의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술성 평가는 지금도 공고하며, 순항 중"이라면서 "카무루스가 보유한 기술은 펩트론과 전혀 다른 기술이며, 단순 경쟁 관계로 볼 수 없다. 릴리와의 논의는 계획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릴리와 펩트론 간의 기술성 평가 중인 릴리의 약물은 카무루스와의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선정된 릴리의 약물과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플루이드크리스탈은 다양한 약물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결과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연속된 해명에 9일 오후 3시 기준 펩트론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400원(+2.16%) 오른 16만700원에 거래되는 등 4거래일 만에 반등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시장의 불안감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성 평가 계약을 맺은 펩트론과 달리 카무루스가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며 한 발 앞서나가는 모양새라서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펩트론 역시 후속 라이선스 계약의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여노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펩트론과 카무루스의) 두 기술은 펜형 주사기를 위해 조합 가능한 기술"이라면서 "이번 기술 계약을 단순 경쟁 관계나 플랫폼에 대한 계약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카무루스는 노보 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 1개월 제형 주사제 개발 중이었으므로 경쟁사 계약을 막기 위한 의사결정으로 보인다"면서 "기존 젭바운드 치료 중단 환자 비율과 최고 용량 도달 환자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선 펩트론 기술이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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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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