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원로 타계···세대교체 후 '경영쇄신'꾸준한 R&D 투자로 신약 배출, 블록버스터 기대감 정부 육성 의지 확인, 각종 지원책 쏟아져
이에 '위기 극복'은 올 한 해 국내 기업들의 주요 키워드였다. 기업들은 세대교체와 함께 경영쇄신 카드를 빼들어 책임경영 기조를 강화했으며, 부진한 실적에도 신약개발에 매진해 약진했다.
한해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다사다난했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이슈들을 되짚어봤다.
제약업계 화두는 '책임경영'···오너家 전면배치
올해는 제약업계 원로들이 잇달아 타계해 이들을 이을 오너가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10월 '국내 제약업계 맏형'이자 '박카스 신화'를 썼던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6세의 나이로 타계했고, 앞서 4월에는 이윤보다 '제약보국' 실현을 더 중시하며 수액제 국산화를 성공시킨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0세로 별세해 업계가 애도를 표했다.
국내 제약산업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권을 이어받은 오너 2·3세들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고(故) 강 명예회장의 사남인 강정석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은 올해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며 그룹의 '지속가능협의회 위원장(CSO)'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CSO는 사회책임경영과 R&D 신약 개발 부문, 디지털 헬스케어 등 미래 먹거리, 신성장동력 발굴에 대해 그룹사 전문경영인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그룹의 성장을 함께 이끄는 역할을 한다.
오너일가가 경영 전면에 서서 쇄신을 꾀한 곳들도 많았다.
일동제약그룹의 윤웅섭 부회장은 'R&D 전문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국내 제약사로는 이례적으로 '인력 감축'을 선언했다. 또 신약개발 부문을 따로 떼어내 이를 전담할 자회사 '유노비아'를 신설하는 등 R&D 의지를 보여줬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경영에 복귀하고 그룹의 숙원과제였던 그룹사 합병을 본격 추진해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통합한 법인은 이달 28일 출범했으며, 내년 1월 12일 신주 상장까지 진행되면 양사 합병은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회사는 올해 처음으로 신약을 허가받기도 했다. 회사의 래미케이드 시밀러 '램시마'의 피하주사(SC) 제형인 '짐펜트라'는 미국에서 신약으로 허가받았다. 이 제품은 유럽에서 바이오베터(바이오의약품 개량신약)로 허가받았으나 미국에선 신약 허가 프로세스를 밟았다. 이 제품은 내년 2월 29일(현지시간) 미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광동제약 오너2세인 최성원 대표이사가 이달 회장으로 승진했고, 공동경영을 펼치고 있는 삼진제약 오너2세 조규석 부사장(경영관리 및 생산 총괄)과 최지현 부사장(영업 마케팅 총괄)도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50돌을 맞은 한미약품그룹 주사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7월 오너2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을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임명하고 R&D 혁신을 꾀하고 있다. 전략기획실은 그룹사의 경영 전략 전반을 기획하는 핵심 부서다.
재계 오너 자녀들 또한 바이오 계열사의 주요 보직에 올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前) 전략투자팀장은 이달 단행된 SK그룹 연말 정기인사에서 그룹 내 최연소 여성 임원으로 승진했다.
SK바이오팜은 사업개발본부 산하로 사업개발팀과 전략투자팀을 통합 편성했으며, 기존의 전략투자팀을 이끈 최 팀장을 신임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투자 및 사업개발 부서를 통합해 연구개발의 효율성과 유연성, 협업을 강화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롯데그룹은 최근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고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미래성장실의 신임 실장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롯데그룹 미래성장의 핵심으로 꼽히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직토록 했다.
뚝심 있는 R&D 투자로 성장동력 확보, '블록버스터 약물' 기대감도
꾸준한 R&D 투자로 빛을 본 기업들도 있다.
유한양행이 자체 개발한 3세대 비소세포폐암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는 국내 최초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약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1차 치료제로 허가 받고 급여 확대도 이뤄지면서 글로벌 빅파마가 개발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와 경쟁구도를 갖게 됐다.
또 렉라자의 글로벌 권리를 보유한 얀센(현 J&J 이노베이티브 메디슨)은 자사의 표적항암제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 렉라자 병용 요법에 대한 임상을 마치고 최근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허가 신청했다. 이르면 내년 중 FDA 승인이 기대된다.
HLB(에이치엘비) 또한 간암 1차 치료제로 개발 중인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에 대한 모든 신약 허가 준비 과정을 마치고, 지난 5월 16일(미국시간) FDA에 신약허가신청서(NDA)를 제출했다. 국내 바이오기업이 자사의 항암 신약 물질에 대해 자체적으로 모든 임상 과정을 마치고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 허가 절차를 진행하는 건 HLB가 처음이다.
최근 본심사 중간리뷰 절차도 별다른 이슈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적 부진을 겪으며 인원 감축 카드까지 꺼내들었던 GC녹십자는 8년간의 도전 끝에 최근 면역글로불린제제 'ALYGLO(알리글로)'의 미국 허가를 받았다. 미국 혈액제제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GC녹십자가 최초다. 또 알리글로는 FDA 허가를 받은 8번째 국산 신약이다.
기술수출 성과도 있다. 특히 전통제약사인 종근당이 10억 달러(약 1조3095억원) 이상의 '대형 계약'을 체결해 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종근당은 글로벌 제약기업 노바티스와 샤르코마이투스(CMT) 질환 치료제 'CKD-510'에 대해 13억500만 달러(약 1조7302억원)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노바티스는 종근당이 개발 중인 저분자 화합 물질 히스톤탈아세틸화효소6(HDAC6) 억제제 CKD-510의 개발과 상업화에 대해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독점적 권리를 갖게 됐다.
대웅제약도 올해에만 3건의 신약 및 신약 후보물질 기술수출 성과를 냈다. 회사가 올해 체결한 기술이전 규모는 1조원이 넘는다.
레고켐바이오는 2조원이 넘는 '빅딜'을 체결했다. 레고켐은 지난 26일 미국 DIS센에 TROP2 타깃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후보물질 'LCB84'을 17억 달러(약 2조 240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 1억 달러(약 1300억원)와 단독 개발 권리행사금 2억 달러(약 2600억원), 개발·허가·상업화 등에 따라 발생하는 단계별 마일스톤이 여기에 포함된다. 순매출 발생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로 받는다.
법적다툼, 투자급감으로 시름···정부 '산업 육성' 의지 확인
올 상반기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은 각종 법적 공방으로 몸살을 앓았다.
'나보타'를 판매하고 있는 대웅제약은 올 초 메디톡스와 벌인 톡신 균주 관련 민사 1심 소송에서 패소해 항소를 진행 중이다.
메디톡스는 휴젤을 상대로도 균주와 제조공정 도용이 의심된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ITC)에 제소한 상태다.
메디톡스는 자사 제품인 '메디톡신'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 여부를 두고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소송을 진행해왔는데, 올해 승소하며 사업 회복 및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은 인력쟁탈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이오업계 최초로 매출 3조 클럽 진입에 성공하며 업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작년 6월 출범한 롯데바이오로직스와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업무 정보가 담긴 파일과 문서 등을 회사 외부로 무단 반출한 직원 2명을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인천경찰청에 고소했다.
회사는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보안 점검을 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들 중 한명은 퇴사 후 롯데바이오로직스로 이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제2캠퍼스 부지 인근에 메가 플랜트를 구축키로 한 상황인데, 이로 인해 인력 유출 문제는 더욱 심화될 거란 시각이 나오고 있다.
바이오업계는 투자 감소 현상이 지속되며 임상 중단 사례가 잇따랐다. 비상장 기업들은 투자받지 못해 고사 위기를 겪었다.
바이오의료 분야 VC 신규 투자는 2019년 1조1033억원, 2020년 1조1970억원, 2021년 1조6770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1조1058억원으로 감소했고, 올 3분기 누적 VC 신규 투자는 6264억원으로 전년 동기 8787억원 대비 28.7% 줄었다.
기술특례상장 건수는 2019년 14개, 2020년 17개, 2021년 9개, 2022년 9개, 올 3분기까지 10개 등으로, 올해에도 코로나19 이전 건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인 점은 올해 정부의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의지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연초부터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바이오헬스 산업 수출 활성화 전략 방안' 등을 잇달아 공개하며 2027년까지 제약바이오 글로벌 6대 강국으로 올라서겠단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는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고 밝히며 정부의 지원 의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정부의 이 같은 의지는 예산안에도 반영됐다. 복지부는 내년 바이오 관련 R&D(연구개발) 예산을 12% 늘려 총 7801억원을 쓰기로 했다. '한국형 아르파헬스(ARPA-H) 프로젝트',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 등 대규모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도 새로 편성했다.
최근에는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혁신위)가 인력 구성을 마치고 공식 출범했다.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무총리 직속으로 혁신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지 1년 반여 만에 이룬 성과다.
혁신위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12개 중앙행정 기관장과 분야별 민간위원 17명 등 총 30명으로 꾸려졌다.
업계는 혁신위 출범을 통해 정부가 수립하고 추진해온 각종 산업육성정책의 실효성이 극대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suin@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