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만난 윤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유쾌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사실 감독이란 직업은 의도적으로 고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에 달하는 인력을 현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진두지휘해야 하는 사람이다. 루머나 속설처럼 전해 오는 ‘감독들의 한 성격’을 그런 의미에서 풀어보자면 이해가 쉽다. 하지만 윤 감독은 항상 자신들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 세심하고 꼼꼼하다.
“성격인 것 같아요. 그게 뭐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냥 이름 불러주면 좋잖아요.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만 사실 부르는 사람도 기분이 정말 좋아요. 말씀처럼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움직이는 현장에선 모든 상황에 날카롭게 대처될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 화를 내고 욕을 하는 것보단 기분 좋게 웃으며 대하고 나면 좀 더 수월하게 풀려가는 느낌이더라구요. 물론 저도 화를 낼 땐 내죠. 긴장을 해야 할 때는 바짝 조이기도 해요.”
그에게 이름은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국제시장’을 보면 윤 감독에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나온다. 아니 절대 잊어서도 안 되고 앞으로도 평생을 함께 할 이름이다. 주인공 ‘윤덕수’(황정민)가 바로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 함자다. 언론 시사회 직후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눈물을 쏟으며 잠시 말을 잊지 못했던 윤 감독이다.
“글쎄요(웃음). 그땐 왜 그렇게 주책맞게 그랬는지. 하하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참 많았죠. 눈물 흘리고 그런 면이 부각돼 제가 아버지와 정말 살가웠을 것 같죠? 사실 정말 아버지하고는 불편한 관계였어요. 영화 속 노년의 덕수처럼 아주 꼬장꼬장하시고 자식으로서 이해 안되는 부분이 정말 많은 분이셨어요.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지냈죠. 아들과 아버지의 그런 관계요. 그러다 아버지가 대학시절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나중에 알게 된 점이지만 아버지가 절 정말 자랑스러워하셨대요. 평생 가족을 위해서 주시기만 하시다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 ‘감사했다’는 말씀 한 마디 못한 게 한 으로 남았었죠.”
그 ‘한’은 결국 ‘국제시장’으로 마무리가 됐다. 윤 감독이 평생의 한으로 품고 있던 이 얘기를 구상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하지만 여러 기술적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미뤄뒀던 아이템이었다. 감독으로 제작자로도 성공했다. 여러 후배 감독과도 함께 했다. 하지만 ‘국제시장’ 만큼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못한 ‘감사했다’는 말 한 마디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그게 이 영화죠. 하늘에서 아버지가 보실 텐데 그 얘기를 어떻게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요. 개인적인 한과 아버지에 대한 추억 그리고 뭉클함은 저만 알고 있는 것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아버지가 정말 힘드셨을 것 같다는. 우리도 다들 힘들다고 하잖아요. 우리도 아버지의 아들이었듯이 우리의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들이셨을 것이고, 아버지를 그리워하셨겠죠.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할아버지와 만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 배우 ‘황정민’을 선택했다. 윤 감독은 ‘황정민’이란 이름 세 글자에 ‘감사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영화를 보면 ‘윤덕수’란 인물은 황정민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떠올리기 힘들 정도다. 그의 연기력에 윤 감독은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 감독이 ‘황정민’이란 이름 석 자에 감사한 것은 믿음이었다. 자신을 믿어 준 스타 배우에 대한 진심이었다.
“너무 고마웠어요. 아마 ‘신세계’ 끝나고 였나 그랬을 거에요. 시나리오 보고 전화를 걸어 ‘잘 봐달라’는 안부 인사를 전했죠. 뭐 정민씨하고는 사적으로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고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였어요. 지금 시나리오 보냈다는 데 다짜고짜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길래 잠시 설명했죠. 보낸 시나리오는 초고 수준이었거든요. 전화로 아주 짧게 몇 마디 하니깐. ‘알겠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스케줄 다 비워놓겠다. 시나리오 작업 잘 마무리해라’ 이러는 거에요. 그리고 실제로 기다려줬어요. 그런 스타 배우한테 시나리오가 좀 쏟아졌겠어요. 그런데 ‘국제시장’을 위해 기다렸어요. 친분 때문에? 절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튼 말도 못할 정도로 고마웠죠.”
윤 감독은 사실 촬영 전에도 궁금했단다. 황정민에게 ‘대체 뭘 믿고 기다린거냐’라고 물었단다. 하지만 황정민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촬영 끝나면 얘기해 주겠다’며 입을 다물었다고. 그리고 인터뷰 직전까지도 윤 감독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저 ‘믿음’이란 하나로 황정민의 고마움을 해석했다.
윤 감독이 큰 고마움을 느낀 황정민을 통해 그려진 ‘국제시장’의 60년 현대사는 격동과 혼란 그리고 아픔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았다. 아버지 세대는 그 모든 감정을 아들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 영화 속 대사로도 나온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국제시장’이 그리는 60년의 시간 속 가장 핵심이 바로 정치였다. 현대사 60년의 시간에서 ‘국제시장’은 유독 정치에 대한 시각에선 곪은 상처를 도려내듯 깨끗하고도 과감하게 잘라냈다.
“그런 질문을 제작 초반부터 들어오긴 했어요.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도 없다, 무책임하다는 말도 들었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관점은 정말 달랐어요. ‘국제시장’을 그 시각으로 보자면 너무도 부족함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정말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국제시장’을 통해 하고픈 말은 거시적인 관점의 얘기가 아니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버지 얘기를 하는데 이데올로기가 왜 필요한가 나 자신에게 되물어 봤죠. 필요 없는 얘기였어요. 만약 넣었다면 논란만 불러 일으켰겠죠. 제 생각은 그랬습니다.”
주제 의식과 함께 윤 감독의 영화는 항상 기술력의 향연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운대’가 보여 준 스펙터클함은 그의 회사이자 ‘국제시장’ 제작사인 JK필름 측에 엄청나 노하우를 남겼다. 결론적으로 ‘해운대’가 기술의 잔치였다면 ‘국제시장’은 더욱 진보된 기술의 시험대로 사용됐다. 아니 시험이라기 보단 진일보를 확인하는 장이었다. 영화 곳곳에 숨은 기술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아마 관객 분들이 눈치를 채실지 모르겠어요. 아주 특이한 기술이 하나 ‘국제시장’에는 도입됐죠.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의 20대를 표현하기 위해 ‘에이지 리덕션’(Age Reduction)을 사용했어요. 이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데 사실 할리우드에서도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작업이에요. 나이를 먹는 것은 특수효과로 만들어 낸다고 해도 거스르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거든요. 전 세계를 말 그대로 이 잡듯 뒤졌죠. 결국 일본의 CG업체에서 전문가를 모셨아요. 영화를 보고 그 장면에 대해 어색하지 않다고 말씀해 주셔서 만족스러웠죠. 이게 비밀인데 사실 CG는 ‘해운대’보다 더 들어갔어요. 하하하.”
‘국제시장’은 감정의 점층법을 유려한 방식으로 끌고 간다. 켜켜이 쌓아 올린 감정의 산은 결국 마지막 덕수(황정민)의 독백 장면에서 관객들의 눈물을 터트리고 만다. 그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이며 사실 윤 감독이 관객들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윤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과 덕수의 모습을 나눠 놓은 점은 세대 간의 갈등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는 데 그건 아니었어요. 할아버지의 모습도 나고, 가족들의 모습도 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감사했다’는 말 한 마디 못한 한이 이 영화를 만들게 했어요. 그리고 나도 어느새 아버지가 됐고, ‘이 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죠’라고 아버지한테 여쭤보고 싶기도 하고. 나도 힘들었죠. 여러분도 힘들 것이고. 우린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고 또 아버지잖아요. 결국 돌고 도는 사랑에 대한 얘기. 그게 제가 하고 싶던 말하고 싶던 ‘국제시장’의 얘기에요.”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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