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은행원의 워라밸 '30분'···고객이 내줘야 하나

오피니언 기자수첩

은행원의 워라밸 '30분'···고객이 내줘야 하나

등록 2026.10.02 12:34

김다정

  기자

reporter


"출근 전 잠깐 들러 업무 보던 30분이 사라지면, 결국 점심시간 대기줄만 길어지는 것 아닌가요?"

내년 4월부터 전국 은행 점포의 영업 개시 시간이 기존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으로 조정된다. 사실상 영업시간은 줄어들면서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사측과 노동조합은 은행원의 '워라밸'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에 따른 불편은 온전히 고객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평일 출근 전 30분을 쪼개 은행 업무를 보던 직장인들은 고민이 깊다. 개점 시간이 늦어지면 아침 방문이 불가능해진 만큼 유일한 대안인 '점심시간'으로 한꺼번에 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직장인 A씨(34)는 최근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점심시간에 맞춰 인근 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점심시간 교대 근무로 가동 창구가 줄어든 데다 대기인원만 15명이 넘어 1시간 남짓한 휴게시간 내 처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전에 손님이 밀리면 점심시간 대기가 많은데, 9시 30분 개점이면 오전 수요가 점심으로 다 이월되지 않겠느냐, 사실상 직장인은 반차나 연차를 쓰지 않는 한 대면 업무를 보지 말라는 소리"라는 우려가 단순히 기우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모바일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취약계층이 체감하는 벽은 훨씬 더 높다. 강원도에 사는 B씨(61)는 한 달에 한두 번 계좌이체나 통장 정리를 위해 먼 길을 나선다. 겨우 도착해도 길어진 대기시간에 지치기 일쑤인데, 이제는 문을 열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부담까지 더해졌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 터치 몇 번이면 끝나는 업무라지만, 창구 직원의 도움 없이는 금융 거래 자체가 불가능한 어르신들에게 영업시간 단축은 곧 대면 접근성의 차단을 의미한다.

최근 몇 년간 시중은행의 오프라인 점포는 급격히 감소했다. 2020년 이후 폐쇄된 은행 점포만 수백 개에 달한다. 오프라인 점포라는 '공간적 접근성'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이제는 영업시간 단축이라는 '시간적 접근성'마저 좁아지는 셈이다.

물론 노동환경 개선과 워라밸 보장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과도한 야근을 줄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도모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업시간 30분 단축'만이 과연 유일한 해법이었느냐는 점이다.

은행권은 디지털화로 인한 방문객 감소를 단축의 명분으로 꼽지만, 역설적으로 대면 창구를 찾는 이들은 여전히 고난도 금융 상담이 필요하거나 디지털 기기 사용이 어려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소비자'들이다.

탄력근무제 도입, 교대 근무 방식 다양화, 유연한 창구 운영 등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충분히 검토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논의 과정에서 정작 금융의 핵심 주체인 '소비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소외됐다. 주말 점포 확대나 야간 탄력 점포 운영 등 명확한 소비자 피해 보완책은 논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은행은 공공성을 띤 금융기관이다. 고객의 신뢰와 이용을 바탕으로 실적을 올리고 이익을 낸다. 은행원의 '워라밸 30분'을 위해 고객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아무런 대책 없이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 정책은 결코 수용받기 어렵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소비자 대책의 '부재'를 이제라도 엄중히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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