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 두 달 차에 접어들었다. 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에게 그에 상응하는 사용자 책임을 묻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일률이 아니라 참여 정도에 따라 나누자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를 쓰면서도 책임은 하청업체 뒤로 숨고, 정작 노동자는 자신을 좌우하는 실질적 결정권자와는 교섭조차 하지 못했던 산업현장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문제의식도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는 취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현장에 들어간 뒤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시행 한 달 만에 하청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 요구가 1000건을 넘고 대상 사업장도 수백 곳에 이르렀다는 점은, 이 법이 현장에서 권리 보장 못지않게 원청 압박 수단으로도 읽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임은 넓어졌지만 누구와, 어떤 범위에서, 어떤 단위로 교섭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이 불확실성은 조선·철강·방산처럼 공정이 촘촘하게 맞물린 산업일수록 더 크게 작용한다. 한 사업장 안에서 복수의 하청노조가 각기 다른 요구를 들고 개별 교섭에 나서고, 산업안전이나 작업환경 같은 의제가 동시에 테이블에 오르면 원청은 어느 하나도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한 번의 교섭 차질이나 부분 파업은 납기 지연, 비용 증가, 수익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사례는 이런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회사는 법 시행 전 470억원 규모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했고 협력사에도 원청과 같은 400% 성과급을 적용했다. 그러나 이후 원청 직접교섭 요구와 고소전이 이어졌다. 기업 입장에선 선제적 상생 조치가 갈등 완화의 출발점이 아니라 더 큰 요구의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포스코에서 나타난 흐름도 비슷하다.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넓어지고 하청노조 간 교섭단위 분리까지 허용되면 한 회사가 복수 노조와 복수 의제를 놓고 병렬적으로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된다. 이는 단순히 교섭 횟수가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생산계획과 현장 운영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며 만든 제도가 오히려 교섭의 경계와 현장의 안정성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인간은 목적이어야지 단지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노란봉투법이 노동자를 위한 제도라면, 그 제도 역시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상시 압박 수단으로 소모되어선 안 된다. 권리가 상대를 흔드는 기술로 쓰이는 순간 제도의 명분도 약해진다.
권리가 현장을 멈추게 하고 생산 전반을 흔드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면, 법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 또 다른 불안 요인이 된다. 노란봉투법이 바로 세워야 할 것은 갈등의 명분이 아니라 책임의 질서다. 그 선이 무너지면 법의 취지도 현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뉴스웨이 이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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