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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 “‘하이힐’ 속 내 모습? 나도 좀 예쁘더라”

[인터뷰] 차승원 “‘하이힐’ 속 내 모습? 나도 좀 예쁘더라”

등록 2014.06.16 16:01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이건 좀 심했다. 우선 1988년 모델라인 18기로 데뷔할 당시부터 차승원은 ‘마초적’ 이미지의 대명사였다. 큰 키에 조각 같은 바디라인, 그리고 짙은 눈썹 무엇보다 선이 굵은 그의 모습은 ‘남성 of the 남성’을 부르는 다른 말과 같았다. 차승원은 그런 이미지였고,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26년이 지났다.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로 배우 전업에 나설 때도 그는 모델 시절의 이미지 모습 그대로를 가져왔다. 감독들도 그에게서 원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1999년 희대의 흥행작 ‘주유소 습격사건’에선 헬멧을 쓴 채 등장한 폭주족으로 출연하는 굴욕도 맛봤다. 배우로서의 추억이다. 이후 2001년 ‘신라의 달밤’을 통해 차승원의 포텐은 터졌다. 188cm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그가 슬랩스틱에 가까운 코믹 연기를 어느 누구보다 맛깔스럽게 소화했다. 이후 그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희극 배우의 대명사가 됐다. 2014년 그는 또 한 번의 환골탈태를 꿈꾸고 있다. 이 마초적인 배우가 여성이 됐다. 영화 ‘하이힐’ 속에서 그는 경악스런 변신을 선택한다.

영화가 공개된 뒤에도 차승원은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스케줄로 정신없이 바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도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소속사에서 준비한 ‘십전대보탕’이 눈에 띄었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인터뷰 하는 데 이게 뭐냐”며 소속사 직원들에게 핀잔을 줬다. 당연히 차승원만의 농담이었다. 쌍꺼풀이 짙은 눈매로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이 참 정감 있었다.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대체 왜 트랜스젠더였나’란 점이다. 그것도 차승원이란 배우가.

“제가 선이 좀 굵기는 하잖아요. 황정민(로드무비) 이병헌(번지점프를 하다) 등도 뭐 퀴어 코드의 영화를 하긴 했죠. 글쎄요. 감독님들이 남성성이 강한 배우들을 좀 비틀어야 하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실제 그렇잖아요. 여성적인 느낌이 강한 배우들로 트랜스젠더 역을 맡기면 그게 뭐 재미가 있겠어요(웃음). 나도 처음에는 가능할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뭐 하다 보니깐 되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욕심이 생기고. 뭐 그리고 저도 봐줄만 했잖아요. 하하하.”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는 ‘하이힐’ 속 윤지욱이란 인물을 설명하면서 ‘여성성’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묘한 점은 눈앞에 앉은 차승원이란 배우에게서 묘한 느낌을 전달 받은 점이다. 불과 1m도 안된 거리 앞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서 여성의 체취가 풍겨 오는 것 같았다. 영화 속에서 찰나의 순간에 ‘지욱의 내면 속의 여성’을 잡아 낸 범죄자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이고 이거 왜 이래요(웃음). 사실 그래요.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반대적인 성이 내면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차승원의 속에도 분명 여자가 있어요. 그건 기자님도 마찬가지고요. 문제는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죠. 내 남성성은 분명 의심의 여지가 없죠. 하지만 내 안의 여성을 발견하고 출연을 제의한 장진 감독도 그랬을 것이고, 나 역시 그 부분을 어떻게 연기해 낼지가 관건이었죠. 여성적인 남성이라고 이상하게 몸을 꼬고 콧소리내고? 에이 그건 아니지. 자연스럽게 지욱에게서 여성을 느끼게 만드는 게 포인트였어요.”

그의 노력은 일단 합격점이다. 아니 크게 합격했다. 우선 여성 관객들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속 지욱의 촉촉한 눈빛에서 여성의 감성을, 영화 초반과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을 장식한 거친 액션에서 마초의 본성을 느낀 것이다. 액션 장면은 차승원의 쭉 뻗은 기럭지를 통해 ‘시원함’을 안겨줬다. 여장을 한 차승원도 충격적일 것이란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깼다. 꽤 예쁘장한 모습으로 차승원은 등장한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참 비위가 좋은 것 같은데요(웃음). 그냥 여장한 부분은 ‘무조건 견디자’란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나름 봐줄만 하지 않았나요. 하하하. 배우 생활하면서 그 정도의 풀메이크업과 여자 옷을 입은 적은 나도 처음이었죠. 뭐 정신적으로 충격도 컸고. 하하하. 사실 난 희극을 좋아하는 남자에요. 특히 블랙코미디죠. 웃긴데 이상하게 슬픈 거 있잖아요. 하지만 이게 정말 묘한 부분이, 양날의 칼이에요. 잘못하면 웃긴게 아니라 우스운 연기가 되요. 블랙코미디의 특성은 적재적소의 위치를 아는 거죠. 그걸 장진 감독은 정확하게 짚어 내요. ‘하이힐’ 속에서도.”

‘하이힐’의 블랙코미디적인 부분은 영화 속 차승원의 디테일을 통해 여러차례 등장한다. 장진 감독이 몸담았던 ‘SNL 코리아’의 고정 크루로 출연 중인 정명옥과의 엘리베이터 장면은 기가 막힌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 준다. 김민교는 허곤(오정세)의 부하로 출연, 지욱의 집안을 어지럽힌 뒤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치우는 장면을 만들어 내 헛웃음을 자아냈다.

“(정명옥 김민교) 두 사람이 사실은 코미디 배우가 아닌 정극 배우가 본 바탕이라고 하더라구요. 이 두 사람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에선 포인트가 ‘웃기면 안된다’는 거였어요. 실제 장 감독고 그걸 주문했고, 그런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으니 이게 성공한 건지 모르겠고(웃음). 내가 한 디테일 중에는 호르몬 주사를 맞을 때 보면 팔뚝은 근육질의 거대함이 드러나는 데 다리는 여성처럼 오므리고 있는 등의 장면 정도. 뭐 전반적으로 행동에서 드러나기 위해 노력을 했어요. 이 외모와 얼굴로 분장을 해봐야 얼마나 나왔겠어요. 에이(웃음)”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사실 ‘하이힐’은 차승원의 여성성에 기댄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차승원이 출연한 전체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남성적인 기운이 넘치는 작품이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와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웬만한 영화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액션과 그 잔인함의 수위가 높다. 영화 중반 장진 식 유머와 차승원식의 유머가 양념처럼 포함돼 있는 것을 지워낸다면 ‘청소년불가’ 판정을 받기도 쉽지 않을 정도의 하드코어 액션이 넘친다. 일부 장면에선 차승원의 의견이 반영돼 수위가 높아지기도 했다.

“전 사실 지금의 결과물보다 더 잔인하게 가자고 부탁했어요. 솔직히 지금도 그 수위에 대해선 성에 차지가 않아요. 지욱은 자기 안에 있는 걸 들키면 안 되는 남자에요. 그걸 감추고 그게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한 남자에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식으로 달려들어요. 죽어도 상관없어요. 생각해봐요.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달려드는 데 깡패들이 어떻게 할까요. 영화 속에서 ‘600만불의 사나이’란 별명을 얻잖아요. 아마 제 생각에는 변함없어요. 정말 지욱은 자신의 속을 들키는 게 죽는 것보다 싫었을 거에요. 그러니 그렇게 달려들지.”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지욱이 점점 차승원에게 다가왔고, 차승원은 지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거울을 보며 자해를 하는 장면은 차승원의 요구로 삽입됐다고. 자신의 속을 들키는 게 죽기보다 싫었을 것 같다는 차승원의 말은 곧 윤지욱의 내면이었다. 그는 계속된 드라마 촬영으로 피곤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지욱과의 이별을 하지 못한 것인지 잠시 우수에 찬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닥을 쳐다보았다. 차승원은 “영화 속에서 지욱이 비행기를 타기 직전 다시 돌아오지 않나”라며 “그때 이미 지욱은 죽은 것이다”고 뜻 모를 웃음을 지었다.

모델 출신 배우로 가장 성공한 케이스를 꼽자면 단연코 차승원이 첫 번째다. 그는 “자꾸 내가 무슨 모델 1세대 배우라고 하는 데 내가 무슨 ‘묵은 된장이냐’”고 농담을 한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찍고 있는 데 안재현이가 모델 출신이잖아요. 우선 감독님들이 재현이가 잘하는 부분을 알고 그것 안에서 재현이에게 연기를 시켜요. 물론 재현이가 아직은 스킬 적인 부분에서 부족하죠. 그래서 잘하는 것 위주로 디렉션을 주죠. 그럼 이런 친구들은 연기하는 게 신이 난다니까요. ‘잘한다 잘한다’하는 데 누가 기분이 안좋겠어요. 물론 내가 처음 할 때는 안 그랬지. 그때는 에휴~”

배우 차승원이 다시 태어난 듯하다. 장진 감독은 “‘하이힐’을 통해 차승원이 분명 재평가 될 것이다”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대로 ‘하이힐’은 차승원의 연기 인생 터닝 포인트로 분명히 남게 됐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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