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변할 수 없는 명제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바늘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라도, 그것을 버무리고 주무를 수 있는 감독의 지도력이 떨어진다면 문자 그대로 영화의 본질은 ‘산으로’ 가게 된다. 때문에 최근 이종교배라고 불리는 복합장르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했지만 큰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감독의 연출력 미달, 혹은 시나리오 완성도 결여, 배우들의 저질 연기력 등이 대부분의 실패 이유다.
국내 개봉에 앞서 오는 14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제67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영화 ‘끝까지 간다’는 사실 위에 언급한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 아니 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지워버렸다. 우선 칸 영화제 초청작이란 점만 봐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옳다. 우선 ‘감독 주간’은 칸 영화제가 1969년 신설한 섹션으로 ‘혁신적인 영화 발굴과 비평가 관객들 모두에게 참신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는데 목적을 둔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받을 수’란 ‘미래적 표현’이다. 바꿔 말하면 ‘끝까지 간다’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를 사로잡을 만한 영화란 사실이다. 맞다. 그렇다. 한 마디로 상업적인 목적에 방점을 강렬하게 찍은 ‘재미’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끝까지 간다’는 근래 한국영화들이 너도나도 시도하는 ‘도전’과는 정 반대로 간다. 이른바 복합장르를 배제한다. 때문에 아주 경제적인 느낌이 든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된다. ‘고건수’(이선균)와 ‘박창민’(조진웅)의 대결 승자는 누구일까. 딱 이점만 노린다. 때문에 ‘사족’도 거의 없다.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은 “서프라이즈의 연속을 관객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말로 ‘끝까지 간다’의 핵심 포인트를 설명했다.
이 영화는 스토리의 설명보단 플롯을 나열한 방식의 독특함에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예비 명령’(예령)에 해당하는 시작 단계 스토리를 던진다. 등장인물이 누군지, 이 영화가 어떤 사건을 말할 것이며 그것이 왜 생겨났는지 등등. 하지만 ‘끝까지 간다’는 그 ‘예령’ 단계가 없다. 준비 ‘땅’과 함께 ‘뻥’하고 사건이 터진다. 더욱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사건이 한 가지가 아니다. 형사 ‘고건수’(이선규)의 교통사고, 건수 팀이 감찰반 내사에 걸린 일, 엄마의 죽음, 그리고 건수가 차로 친 시체의 처리 등이 한 번에 터진다. 동시 다발로 폭발한 이 사건의 덩어리는 상당히 위험한 시도다. 우선 관객들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대체 어떤 사건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부하의 플롯 투하로 인한 다음 플롯과의 연결 문제가 벌어진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는 이런 두 가지의 위험성을 플롯간의 배치 간격을 조절하면서 상쇄시킨다. 영화 시작과 함께 핵폭탄처럼 터진 사건의 다발은 ‘건수’가 하나하나 처리를 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혼란스러움을 차례차례 지워나간다. 초반 ‘예령’도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을 영화는 서서히 느슨하게 풀어주는 방식으로 시간을 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이 흐른 시점에서 두 번째 혹은 진짜 플롯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절대악’ 박창민(조진웅)이 나온다.
‘끝까지 간다’는 사실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와 ‘안타코니스트’(적대자)의 구분이 모호한 게 특징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건수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러닝 타임 절반 이상이 넘어간 시점에서 등장하는 박창민은 관객들에게 ‘끝까지 간다’의 제목 의미를 너무도 확연하게 전달한 시도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느슨해진 긴장의 끈은 절반 이후부터 다시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겨진 채 제목처럼 ‘끝까지 가는’ 새로운 플롯을 진행시킨다.
‘끝까지 간다’의 흥미로운 점은 이선균-조진웅의 역할 분담이다. ‘프로타고니스트-안타코니스트’ 구분 없이 등장한 두 배우는 정확하게 러닝타임의 절반씩 플롯의 진행을 책임진다. 초반 텐션이 이선균이라면, 중반 이후부턴 조진웅이 그것을 당긴다. 사실 ‘끝까지 간다’의 제목이 이토록 어울리는 것은 초반 엔진 시동(이선균)의 스타트도 있겠지만 후반 엑셀레이터(조진웅) 역할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주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창민의 실체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의 카메라 워킹과 배경음 그리고 리듬감은 앞으로도 이어질 한국영화 악역 등장신 가운데 첫 손을 꼽을 정도로 강렬함이 돋보인다.
박창민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플롯의 간격은 전반의 배치보단 조금 당겨진 느낌이다. 이제 영화가 말한 ‘끝’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감독은 앞서 설명한 ‘서프라이즈의 연속’에 대한 기대감을 배반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는 시점을 정확하게 간파한 감독은 다시 한 번 그 끈을 잡아당기고, 진짜 마지막 부분에서 어떤 ‘통쾌함’ 혹은 ‘짜릿함’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장르 영화의 ‘끝’이 무엇인지 전달한다.
‘끝까지 간다’는 한국영화 사상 제목과 내용 그리고 관객 감성 3박자가 가장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선균이 보여 준 온 몸 불사의 연기, 여기에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조진웅의 이질적 악역 연기. 무엇보다 이 모든 흐름의 리듬을 조율한 김성훈 감독의 감각과 호흡을 잡아내는 눈썰미가 경이로울 정도다.
칸이 선택한 ‘끝까지 간다’, 앞으로 한국영화서 다시 나오기 힘든 고속 범죄액션 영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속’이다. 한 순간도 눈을 때지 말길 바란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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