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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고승범 취임 10일, ‘혁신금융’이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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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빅테크·핀테크 규제 강화 예고
‘무기한 검토’ 대환대출 플랫폼도 좌초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 지키겠다지만
무분별한 선 긋기에 시장 혼란만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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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지주 창립 20주년 기념 세계경제연구원-신한금융그룹 국제컨퍼런스.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취임한지 불과 열흘 만에 시장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초반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명분 삼아 대출 문턱을 높인 데 이어,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빅테크·핀테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제스처로 사실상 전면전을 예고하면서다.

이처럼 금융위원회의 행정이 연일 뒷걸음질치자 외부에선 신임 당국 수장의 철학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한편, 중심을 잡아줘야 할 당국이 오히려 시장과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빅테크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 지킬 것”=‘고승범호’ 금융위의 보수적인 색채를 드러낸 것은 혁신금융 기업에도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신임 수장의 뼈 있는 한마디였다.

고 위원장은 9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소상공인 간담회 후 취재진과 만나 “금융위는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여러 차례 얘기했다”면서 “앞으로 이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빅테크·핀테크와 금융산업 간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면서 “여러 이슈에 대해 소통을 강화하면서 기초를 만들고 합리적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선 고 위원장이 전임자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빅테크·핀테크가 아닌 전통 금융사를 주축으로 금융의 변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의미라는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그간 당국은 빅테크와 핀테크에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금융혁신에 집중해왔다. 지난 2년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110여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고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핀테크 주도의 대환대출 플랫폼 사업을 추진한 게 대표적이다. 핀테크 기업이 금융사와 제휴해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지정대리인 선정 사례도 34건에 이른다.

하지만 고 위원장이 취임하자 금융위는 조금씩 태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혁신을 추구하는 핀테크도 금융권과 같은 규제와 감독 기준을 따름으로써 금융소비자보호와 건전한 시장질서 유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게 이들이 제시한 새로운 방향이다.

◇빅테크·핀테크 조이기 스타트=당국은 이미 빅테크와 핀테크를 향한 대대적인 공세에 착수했다. 카카오페이·토스 등 온라인 플랫폼의 금융상품 정보 제공 서비스를 ‘광고’가 아닌 ‘중개’로 간주하겠다는 지침을 내리면서다.

동시에 당국은 자동차보험과 같은 의무보험이나 신용카드 등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도 잠재고객을 발굴하고 가입을 유도하는 중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위법 소지가 있음에도 자체적인 시정노력이 없는 경우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어조로 경고하기도 했다.

금융상품 중개를 하는 금융플랫폼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대상에 포함되는 만큼 금융사처럼 금융위에 등록하거나 인허가를 받아야한다. 금소법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이달 24일 이후부터 신설된 규제를 이행하지 않는 금융업자엔 제재가 떨어진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판매에 필요한 전자인증과 송금·계약내역 정보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태를 플랫폼이 판매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소비자도 플랫폼을 판매사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 측은 당국의 강경한 목소리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판매 목적 등을 판단할 근거가 주관적인 데다, 별다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다가 계도기간 종료 직전 이를 통보한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국은 “지침의 내용은 금소법 시행 전후 여러 차례 현장에 알려왔던 사안을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갑작스러운 결정도 아니고, 추가로 유예기간을 둘 생각도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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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혜수 기자

◇무기한 재검토?…좌초된 대환대출 플랫폼=소비자 지원을 목표로 당국이 추진하는 대환대출 플랫폼 구축 작업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고 위원장이 무기한 재검토를 시사한 이래 이해관계자간 협상이 전혀 진전되지 않는 것으로 감지되고 있어서다.

재검토할 내용조차 공유되지 않는 가운데, 금융위 내 인사이동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금융산업국장까지 교체되면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무기한’이라는 고 위원장의 발언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존재한다.

당국이 준비하던 ‘대환대출 플랫폼’은 은행 등 여러 금융기관의 대출 금리를 한 눈에 비교하고 번거로운 절차 없이 금리가 낮은 쪽으로 갈아타도록 돕는 서비스다. 토스 등의 ‘금리비교 플랫폼’을 금융결제원 대환대출 인프라와 연결하는 방식을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구축된다면 소비자는 영업점 방문 없이 앱을 활용해 금리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이 뜸을 들이는 것은 은행권과 무관치 않다. 그동안 시중은행은 카카오페이나 토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환대출 플랫폼이 빅테크에만 유리하다는 이유로 플랫폼 구축에 반대해왔다. 일단 입점을 확정지으면 은행은 상품을 공급하는 역할에 머무르면서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따라서 고 위원장이 전면 재검토에 나선 것은 결국 은행의 목소리를 수용해 사업을 접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를 방증하듯 금융위는 9일 급하게 성사된 빅테크·핀테크와의 간담회 자리에서도 최근 공개한 금소법상 지침을 이행해달라고 주문했을 뿐 대환대출 플랫폼에 대해선 따로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 위원장은 “대환대출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듣고 얘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철학 없는 ‘원칙’과 ‘형평성’=일각에선 고 위원장이 핀테크 중심의 금융혁신과는 아예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흘러나온다. 동일기준 동일규제 원칙으로 금융권과의 형평성을 맞추려는 취지라고는 해도 취임 초기부터 빅테크와 핀테크 측을 지나치게 압박하고 있어서다.

사실 고 위원장은 지금까지 가계부채 관리나 코로나19 극복 지원책 외에 금융혁신 등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의 철학을 공유한 적이 없다.

앞서 디지털화와 혁신의 움직임을 적극 활용하며 금융회사의 창의성·자율성이 발휘되도록 돕겠다고 언급했으나, 이는 핀테크가 아닌 금융권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도 “시장자율성이 극대화되고 금융혁신이 가속화되도록 규제의 틀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혁신보다 규제에 방점을 찍었다.

업계에선 고 위원장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과 같이 거시·통화정책 부문에 주로 몸담은 만큼 디지털 신기술이나 금융혁신 등 분야엔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지금처럼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 관련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 흐름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핀테크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고 위원장으로서는 관련 분야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대책도 없이 무조건 정책을 뒤집어버리는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차재서 기자 sia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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