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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55년···경제발전 주역에서 해체요구 받기까지

[위기의 전경련]영욕의 55년···경제발전 주역에서 해체요구 받기까지

등록 2016.10.11 08:30

수정 2016.10.11 08:39

차재서

  기자

1961년 ‘한국경제인협의회’ 출범···산업화 주도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때 전성기 구가대우그룹 해체 이후 쇠퇴기···회원사 반목 심화“정치자금 모집창구, 대기업 이익집단” 비판도

영욕의 55년···경제발전 주역에서 해체요구 받기까지 기사의 사진

‘재계의 총본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정치자금 모금 의혹에서 비롯된 무용론과 해체론 속에 씁쓸한 55주년을 보내고 있다. 과거 굵직한 국책 사업에 힘을 보태며 경제 성장을 주도하던 재계 맏형의 모습을 뒤로하고 사회적 지탄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또 한 차례 존폐 위기를 맞았다.

전경련은 지난 1961년 ‘한국경제인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군사정변 이후 재벌 1세대인 고(故) 이병철 삼성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일본경제인연합회(게이단렌)’를 참고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고 이병철 회장이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만나 기업인 석방을 제안하며 “경제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달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한국경제인협의회는 1968년 이름을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초기에는 주요 그룹이 외국자본을 도입해 중화학·조선 등 제조업을 육성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했다. 대기업으로 사업이 편중되면서 ‘정경유착’이라는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지만 국내 경제성장의 한 축으로서 산업화에 이바지했다는 우호적인 시선도 있었다.

전경련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13~17대)이 수장을 맡은 1977~1987년 전성기를 맞게 된다. ‘재계의 본산’이라는 별칭이 생겼고 세간에는 전경련 회장이 곧 ‘재계의 총리’라는 말까지 흘러나왔을 정도다. 이 시기 전경련은 세계 각 나라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등 저변을 넓혀나갔으며 88서울올림픽 유치에도 큰 공을 세웠다. 여의도에 전경련회관을 준공한 것도 바로 1979년이다.

또 전경련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불거진 뒤 1997년부터는 대기업간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에 앞장서며 명실상부 국내 대표 경제단체로 자리잡았다.

초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에서 지금의 허창수 회장까지 그간 회장직을 맡아본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고 김용완 경방 회장(4~5, 9~12대)과 고 홍재선 범삼공 회장(6~8대), 구자경 LG 명예회장(18대), 고 최종현 SK 회장(21~23대), 김우중 전 대우 회장(24~25대) 등 당대 경제계 거물이 모두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김우중 전 회장이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맞물려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전경련의 위상도 꺾이기 시작했다. 회원사간 반목과 갈등이 수면위로 떠올랐고 주요 그룹 오너를 중심으로 회장직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최근에는 회장단 회의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데다 ‘폐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로 주도권을 넘겨줬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등 재계 빅4 기업이 전경련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회장단 회의의 무게가 떨어진 게 주된 원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와병 중이며 최태원 SK 회장은 사면으로 풀려난 지난해 8월 이전에는 공식 행사 참석이 어려웠다.

구본무 LG 회장의 경우 전경련이 주도한 빅딜에서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준 뒤에는 회장단 회의에 발길을 끊었다. 특히 LG그룹은 지난 2003년 5월 전경련 회장단이 LG필립스LCD 파주공장을 허용하면서 삼성 반도체 공장 증설을 불허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한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또 전경련은 같은해 8월에는 현대자동차의 임단협에 대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현대차 측과 대립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회원사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불씨를 키웠다.

이후 전경련은 끊임없는 정체성 논란에 휩싸이며 점차 힘을 잃어갔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각종 정책에 대한 불만 표출로 정부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대한상의 등과도 현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재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다른 경제단체와의 통합론도 흘러나왔다.

재벌들의 집단인 만큼 권력형 비리와도 연을 떼지 못했다. 전경련은 80년대 일해재단 자금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의혹을 비롯해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연루된 이력이 있다.

2010년에는 ‘박정희 기념 사업관’ 건립 기금 27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에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며 도마에 올랐다. 올해는 어버이연합 우회지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모금 등 의혹이 번지며 전경련의 위신이 바닥까지 추락했다.

이렇다보니 2016년 현재 사회 전반에서는 ‘정권 정치자금 모집창구’로 전락한 전경련의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재계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법인세·경제민주화 등 대기업에게 불리한 현안에 반대만 내세우는 전경련의 현주소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전경련에게 쏟아지는 무용론과 해체론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라며 “해체에 가까운 과감한 혁신을 통해 ‘재계 이익단체’라는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한다면 경제단체로서의 미래는 없다”고 꼬집었다.


차재서 기자 sia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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