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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더 테너’ 내가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인터뷰] 유지태 “‘더 테너’ 내가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록 2015.01.05 08:00

김재범

  기자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2000년 영화 ‘동감’에서 보여 준 풋풋한 청년 ‘지인’에 매료된 적이 있다. 그의 말투 몸짓 손버릇을 유심히 살펴보며 애인에게 흉내를 내며 마치 지인이 된 듯 한 연기를 했었다. 한때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유지태 머리’로 통하던 은회색 탈색 헤어스타일은 이제 추억이다.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를 통해 첫 사랑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던 남자들이 많았다. 상우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과 슬픔은 여운이 너무 길었다. 2003년 ‘올드보이’의 이우진은 파격을 넘어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슬픔이 함께 했다. 가장 최근작인 2010년 ‘심야의 FM’ 속 한동수의 서늘함은 어땠나. 같은 선에서 보더라도 그랬다. 유지태에겐 연민을 넘어선 어떤 고뇌와 슬픔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언제나 쉬운 길이 아닌 어렵고 힘든 길로만 들어선 듯하다. 자신을 괴롭히며 연기적 감성을 이끌어 왔다.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에서도 유지태는 스스로를 극한의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최근 KBS2 드라마 ‘힐러’ 출연으로 쪽잠을 자면서 영화 홍보 프로모션을 도맡아 하고 있다. 개봉 전 만난 유지태는 한 눈에 봐도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무리하게 스케줄을 잡아 인터뷰를 진행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며 특유의 눈웃음과 함께 손사래다. 익히 알려진 대로 충무로 최고 젠틀맨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상대방이 느낄 조금의 불편함도 미안해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솔직히 지금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이 시간은 절대 놓치기 싫었어요. 너무 맘고생을 심하게 한 작품이라 애정이 넘쳐서 랄까. 처음부터 리스크도 너무 컸죠. 사실 촬영 전부터 ‘이게 제대로 갈까’란 의문도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위기가 있었죠. 그대로 이 영화가 끝나는가 했는데 다시 재개가 됐고, 정말 만족스럽게 나왔어요. 뭐 덕분에 오페라 연습 시간이 많아져서 완성도는 정말 높아졌어요. 안그래요?(웃음)”

갑상선암으로 성대 기능이 마비된 천재 테너 배재철의 실화를 그린 ‘더 테너’는 오페라를 소재로 하는 탓에 준비 기간과 제작까지를 통해 무려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한일합작영화다 보니 양국의 여러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소통의 문제로 여러 위기가 찾아왔었다. 이는 모두 유지태가 처음부터 감지했던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유지태는 선택을 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글쎄요. 그게 참 어려운 질문 같아요. 영화란 게 숫자로만 해석되는 매체라고 생각하세요? 전 아니라고 봐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떤 부담감과 책임감이 커져요. 과유불급이랄까.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냥 어려운데 그런 의미에서 ‘더 테너’는 선택할 수 밖에 없었어요. ‘올드보이’도 1000만이라고 착각하시는 분들 많아요(누적 관객 수 350만). 숫자가 아닌 의미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의미만으로 상업적 영화배우가 ‘포기’를 안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포기’란 단어가 유지태의 의지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테너’에만 매달리고 있기에 유지태는 충무로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배우였다. 그를 필요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가 연출한 영화도 그동안 나왔다. 그러면서도 ‘더 테너’를 놓지 않았다. 무려 3년이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기본적으로 신뢰였어요. 김상만 감독과는 바로 전작인 ‘심야의 FM’에서 만났죠. 그때 함께 하면서 ‘믿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또 촬영 감독은 ‘올드보이’ 때부터 인연이 있었고, 제 단편도 도와주셨던 분이에요. ‘뚝방전설’ 때 분장 막내였던 분이 이번 영화에선 ‘헤드’로 올라와 합류했죠. 다 저와는 막역한 분들이에요. 내가 힘들어서 이걸 놔버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잖아요. 아니 제 믿음을 제가 저버리는 게 되잖아요.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기다리는 게 힘들었어요. 마음고생도 심했죠. 그래도 이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말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는 부분은 영화의 촬영 중단이었다. ‘더 테너’는 영화 초반 단 4장면을 촬영한 뒤 제작이 중단됐다.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우려했던 부분이 나온 것이다. 이후 유지태는 잠시 다른 일을 했다. 물론 ‘더 테너’를 놓치는 않았다. 다른 작품을 하면서 틈틈이 오페라 연습에 몰두했다. ‘더 테너’는 그렇게 유지태와 길고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이거 비밀인데. 하하하. 사실 영화를 보시면 초반 네 장면 이후에 제 헤어스타일은 전부 가발이에요. 티 안났죠(웃음). 그 장면을 찍고 촬영이 갑자기 중단 돼 좀 불안했죠. 허망하기도 하고. ‘이렇게 끝나는가’란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제안 온 작품들을 많이 거절했어요. 사실 뭐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더 테너’에 대한 사명감? 에이. 잠시 쉴때 제 맘을 흔든 시나리오가 없었다고 하죠 뭐. 하하하.”

결론적으로는 ‘더 테너’가 유지태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를 수년 동안 잡아 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단 얘기가 된다. 소재 자체가 ‘오페라’이다 보니 대중성에서 떨어질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천재적인 음악가의 좌절을 그리다 보니 공감적인 측면에서도 동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언론시사회 및 개봉 후 이어지는 평가와 리뷰는 ‘의외로 재미있다’ ‘감동적이다’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충분히 그런 예측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오페라 자체가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잖아요. 김상만 감독의 시나리오란 얘기를 듣고 우선 읽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깔끔하더라구요. 군더더기가 없었어요. 저도 연출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느껴지는 게 있었죠. 오히려 얘기 자체는 아주 전형적이잖아요.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전 그런 전형성이 상업적으로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오페라 가수 역할을 언제 해볼까란 점도 끌렸죠.”

원체 슬림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테너 역할을 위해 몸을 좀 불렸단다. 오페라 가수들은 엄청난 성량과 고음역을 유지하기 위해 몸집을 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체력적으로 유리하단다. 유지태 역시 조금 찌우기는 했지만 감독과의 대화로 큰 변화를 주는 것은 피했다고.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한 5kg정도는 찌운 것 같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싫어하시더라구요. 하하하. 감독님이 화면에서 어떤 환상을 주고 싶어하셨어요. 배우가 그런 점을 관객들에게 주지 못하면 영화 전체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반대하셨죠. 저도 납득이 되더라구요. 예전에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찍으면서 30kg 정도 늘려봤잖아요. 그때 여자분들이 진짜 싫어하시데요. 하하하.”

유지태는 결혼을 하고 최근 아버지가 된 뒤부터 ‘소통’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한때 배역과 작품에 날카롭게 날이 서 있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끝으로까지 몰고 갈 정도로 연기에는 완벽을 추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성향이 바뀌었단다. 물론 감독으로서의 작가주의적인 성향은 남겨 두고 있는 유지태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난 기본적으로 좋은 배우가 되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당연히 감독으로서의 작가주의적 성향도 갖고 있죠. 배우는 한 작품에서 소모되면 그만이지만 감독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한 편 한 편이 매번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달려들어요. 그러니 그 한 작품에 뭔가를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마이 라띠마’ 만드는 데도 15년이 걸렸어요. 근데 요즘은 제작 트렌드 여건 상 작가주의보단 상업적인 핸들링이 가능한 감독이 각광을 받는 것 같아요. 큰 회사에서 원하는 영화만 만드는 감독들만 있다면 다양성이란 말이 필요할까. 난 내 것을 지키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유지태는 영화 속에도 그런 굳은 심지를 갖고 오페라에만 매달리는 테너를 연기한다. 특히 일본인 매니저로 나오는 이세야 유스케 등과의 호흡은 눈에 띌 정도로 찰떡궁합이었다. 유지태오 같은 모델 출신이고 배우 출신 감독이란 공통분모가 서로를 이끌었단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영화를 하면서 참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든 것 같아요. 이세야 유스케도 그렇고, 제 아내(김효진)도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이자 파트너고, 참 고맙죠. 절 믿어주고 또 내가 믿을 수 있는. 그래서 이번 영화도 어렵고 힘들지만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 같아요.”

당분간 드라마 ‘힐러’에 집중할 계획인 유지태는 다른 작품도 검토하면서 자신의 또 다른 연출작을 준비하고 있단다. ‘신세계’를 만든 영화계 유명 프로듀서 한재덕 PD와 ‘탈북여성’에 대한 얘기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길고 긴 작업이 될 것 같단다. 하지만 유지태는 “소중하게 그 시간을 쓸 것이다”며 푸근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 속에 어떤 믿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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