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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무비게이션]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등록 2014.09.26 16:07

김재범

  기자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기사의 사진

고전의 텍스트로 현대극으로 변주한 기묘함은 생경하고 낯설다. 익숙함의 파괴가 가져오는 당황스러움과 그 당황 속에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담 뺑덕’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효’ 사상의 근본인 ‘심청전’이 베이스고 탐욕과 불륜 그리고 욕망으로 뒤덮인 ‘치정’이 결과라면 더욱 이해는 더욱 힘들어 진다. 하지만 ‘마담 뺑덕’을 연출한 임필성 감독과 ‘심학규’를 연기한 정우성, ‘덕이’(뺑덕)역의 신예 이솜은 도저히 납득조차 안 되는 이 공식의 해답을 분명히 제시해 냈다.

‘심청전’의 키워드는 효녀 심청이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목숨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얘기다. 현대극으로 치환된 ‘마담 뺑덕’은 ‘효 사상’의 근본을 제외하고 인물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특히 고전 속에서 악녀로만 묘사된 ‘뺑덕’의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악녀에게 끌려만 다니는 심학규의 이유가 궁금했고, 악녀가 될 수밖에 없던 뺑덕의 얘기가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남녀의 얘기가 이뤄지면서 ‘욕망’이란 핵심 키워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기사의 사진

전체적인 스토리의 관점은 심학규의 1인칭 시점으로 이뤄진다. 학규의 눈을 통해 본 ‘덕이’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본 스스로의 파멸, 마지막 딸 심청의 복수가 ‘마담 뺑덕’이 말하는 욕망과 탐욕 그리고 자기 파괴의 과정으로 그려진다. 파괴는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 그 균열의 시작은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단서를 던진다. 학규는 맥주와 담배를 손에 쥐고 있다. 그의 손에 쥐어 있는 그것들은 ‘중독’을 뜻한다. 중독은 탐욕의 끝에 다다른 얼굴이다. 반면 덕이의 손에는 빨대가 꼽힌 요구르트가 있다. 상처받지 않은 순수함을 뜻하는 것 같다. 필연적으로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 대한 예감을 느꼈을 것이다. 학규의 중독성과 덕이의 순수성이 결국 한 쪽의 파멸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중독과 순수 그리고 파멸은 하나의 연장선에 있는 텍스트다. 학규의 매력에 빠진 덕이와 덕이의 순수함에 반한 학규는 육체적 탐닉 속에서 각자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만 집중한다. 두 사람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끼고 이해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그 모습은 치정의 시작을 알리는 균열로 치환된다.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기사의 사진

균열은 대학 교수에서 불미스런 사건으로 지방의 한 문화센터 강사로 좌천됐던 학규가 다시 복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학규가 덕이를 통해 느낌 감정은 순간의 탐욕과 육체적 관계에 대한 중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덕이는 사랑이었던 감정에서 점차 애증의 감정으로 변모하게 된다. 학규에 대한 감정을 통해 모든 것을 잃게 된 덕이는 애증을 복수로 바꾼 채 치밀한 계획을 세워 그에게 접근한다.

‘마담 뺑덕’의 기묘함은 관계의 균열이 시작되는 중반 이후부터 급격하게 톤이 바뀌는 점이다. 사실 치정과 복수의 코드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인물의 관계에 따른 감정을 그리는 두 장르의 특성상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어느 지점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치정과 복수를 넘나들게 된다. ‘마담 뺑덕’은 덕이와 학규의 관계가 정리되는 이후 장면부터 ‘치정’과 ‘복수’를 오가며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권선징악’ 혹은 ‘인과응보’의 고전 속 주제 의식이 오히려 되살아나며 인물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전복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데 더욱 주력한다.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기사의 사진

하지만 어떤 스토리도 그러하듯 선택과 집중의 딜레마가 가장 큰 문제다. 후반부 덕이의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되고 학규의 자기파괴가 극단으로 치닫는 시점부터 ‘고전 비틀기’의 색다른 시도는 빛을 발한다. 각색이냐 아니면 모티브냐 그것도 아니면 완벽한 스토리 비틀기냐에 차이에서 어떤 곳에 힘을 줘야 했는지가 관점이었다. ‘마담 뺑덕’은 이 모든 것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의 감정과 관계에만 집착한 듯 보인다. 치정과 복수의 필수조건인 관계에만 선택하고 집중한 나머지 고전 ‘심청전’을 차용한 색다른 시도의 매력이 다소 떨어지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극 전체의 하이라이트에서 등장하는 심청(박소영)에 대한 불친절한 묘사는 앞서 설명한 지점을 더욱 강하게 하는 약점이다. 학규와 덕이의 관계 속에 청이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이를 망각한 듯 전개 방식이 아쉬울 따름이다.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기사의 사진

하지만 관계의 매력에서 오는 ‘마담 뺑덕’의 미덕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지독할 만큼 자기애로 뭉쳐진 심학규의 파멸을 섬세하단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그려낸 정우성의 연기력은 그의 필모그래피 정점에 ‘마담 뺑덕’을 내세워도 결코 아깝지 않다. 신예 이솜의 존재감은 단연 압권이다. 순수한 처녀의 모습부터 타락천사의 팜므파탈까지 ‘결의 단계’를 보여 준 이솜의 연기는 여배우 기근 현상에 시달리는 충무로에 ‘소금’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 등장한 ‘청이’ 박소영의 서늘한 눈빛도 관객들의 뇌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마담 뺑덕’, 치정의 완벽한 공식 그래서 지독하다 기사의 사진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할 것이다. 학규의 탐욕과 탐닉 그리고 중독, 덕이의 집착, 아버지 학규를 향한 청이의 애증. 세 사람은 과연 서로를 사랑했을까. 해답은 관객의 몫이다. 개봉은 다음 달 2일.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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