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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㊱시련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㊱시련

등록 2020.03.24 10:14

수정 2020.08.24 10:21

승화(昇華) ㊱시련 기사의 사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엔 우연偶然이 없다. 마땅히 일어나야하는 장소와 시간에 우연을 가장한 필연必然이 등장한다. 그런 일은 우리 눈엔 불운이기도 학고 동시에 행운이기도 하다. 행운이 가져다준 시간은 소리도 없이 금방 사라져 잊혀 지지만, 불운은 우리를 공포로 몰아놓고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서성인다. 불운은 행운을 위한 수순이며 행운은 너무 좋아하지 말하는 경고다. 우리는 그런 불운을 경험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이 시련을 우연으로 치부하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신에게 매달려 기도하는 행위가 전부다. 그런 시련은 또 오게 되어있다. 그것이 자연의 순환이며 섭리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이런 상황에 인간이 지녀야할 마음가짐을 ‘프리메티타치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이란 라틴어 표현을 통해 준비시켰다. 이 문구의 의미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숙고하기’란 의미다. 회의적이며 심지어는 염세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문구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녔다.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불운은 일어나기 마련이니, 그것을 미리 마음으로 준비하고 극복하라는 말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는 나에게 잠시 맡긴 부, 명예, 권력, 건강을 한 순간에 앗아갈 수 있다. 그녀는 정의와 공평의 여신으로 과도한 배분을 싫어한다. ‘프리메티타치오 말로룸’은 긍정적이며 희망적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은,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과 근심을 넘어서,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할 대상이다. 이 문구는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경고이자, 오늘 하루를, 일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로마 철학자이자 권력자였던 루키우스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65년)처럼 시련에 익숙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두 로마 황제들에 의해 연달아 사형선고를 받았다. 37년엔 칼리굴라가, 41년에 클라디우스가 자신들과 버금가는 부와 명예를 쥔 철학자 세네카를 그냥 둘리가 없었다. 그는 칼리굴라의 여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음모에 걸려들어, 8년 동안 코르시카 섬으로 유배당했다. 그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네카는 운명적으로 앞으로 황제가 될 어린 네로의 과외선생이 되고 국가법무관으로 일하고 54냔 네로가 황제로 등극하자 그를 섭정하며 로마제국의 제2인자가 되었다. 그 후 네로의 과욕을 목격하고 62년, 네로에게 간청하여 정계에서 물러난다. 그는 캄파니아로 이주하여 칩거생활을 하면서 삭색과 글쓰기로 인생을 마칠 참이다. 운명은 그를 거기서 평안하게 삶을 마치지 못하도록 다시 요동첬다. 65년에 발각된 네로황제의 폐위 역모인 소위 ‘피소의 음모’에 연루되어 자살을 명령받았다. 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뜨거운 증기목욕탕에서 동맥을 끊고 자살하였다.

세네카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였다. 네로의 자살명령이 내리기 직전, 그 불안한 인생의 마지막 해인 65년에 인생의 유작이자 걸작을 남겼다. 그 책이 De Providentia 즉 <섭리에 관하여>라는 여섯 단락으로 구성된 책을 썼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형식을 빌려, 네로 황제 당시 시실리의 행정장관이었던 루킬리우스와 대화형식을 취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이렇다;

Quare bonis viris multa mala accidant, cum sit providentia
만일 섭리가 존재한다면, 왜 불운이 선한 사람에게 일어날까?

성서의 <욥기>에 등장하는 옵의 외침과 유사하다. 이 에세이는 루킬리우스가 세네카에게 시련과 역경이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헤아리려는 시도다. 세네카의 고민은 동시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고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들로 로마제국이 미신을 들여놓아 전쟁과 역병을 창궐시켰다는 혐의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의 박해이유를 종말론적으로 해석하였고, 세네카는 개인의 시련을 철학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세네카는 여섯 장으로 구성된 책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오, 루킬리우스여! 당신은 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만일 산의 섭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왜 선한 사람들에 이 많은 어려움들이 떨어지는 것입니까?””

<섭리에 관하여> I.1.1

세네카는 성서에 등장하는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하는 아브라함처럼, 모든 재산과 열 명의 자식을 사고로 잃고 자신은 피부암이 걸린 동방의 의인이자 부자인 욥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불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네로의 명령으로 살아있을 날이 며칠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인생에서 일어나는 시련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는 신과 인간은 ‘우정’으로 묶여있다고 믿었다. 신은 인간에 대한 우정을 져버리는 적이 없다. 신은 인간이 이 시련을 통해 살아남아 신적인 인간이 되는지 지켜보기 위해서 가혹한 시련을 준다고 판단하였다. 여기 <섭리에 관하여>의 4장 1단락과 2단락을 소개한다. 이 난리 중에 가만히 읽어보시길 권한다.

I.
‘행운’이라는 것은, 대중에게도, 비열한 사람에게도, 훌륭한 사람에게도 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들만의 특권은 따로 있습니다.
인생의 역경과 공포를 고삐로 채우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항상 행복하고 번창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것은
인생이 담고 있는 본질의 다른 반을 모르는 것입니다.

II.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 운명이 당신에게 당신의 덕, 당신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니 않는다면,
어떻게 제가 당신이 위대한지 알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섰습니다. 아무도 당신이외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은 왕관(코로나!)을 차지하였다고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왕관을 차지해서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기 때문에 축하합니다.
나는 당신이 집정관이나 정무관에 오르기까지 보여준 의지를 축하합니다.
당신은 존경을 얻었습니다.

시련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하면서도 잔인한 과정이다. 우리는 이 시련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얻는 존경을 더욱 빛나게 만들 것인가?

<세네카의 죽음>에스파냐 화가 마누엘 산체스(1840–1906) 유화, 1871, 270cm x 450cm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세네카의 죽음>에스파냐 화가 마누엘 산체스(1840–1906) 유화, 1871, 270cm x 450cm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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