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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㉟ 손 씻기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㉟ 손 씻기

등록 2020.03.18 14:52

승화(昇華) ㉟ 손 씻기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다섯 번째 글의 주제는 ‘손 씻기’다


손 씻기 ;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버리는 唟


물은 혼돈이면서 재생이다. 만물은 물이라는 혼돈을 통해 각자의 모습을 갖추어 세상에 태어난다. 물은 비어있으면서도 촘촘하여 무형이면서도 유형이다. 적당한 그릇을 만나면, 유유자적하며 모양을 갖춘다. 인류의 신화들은 우주탄생과 인간창조의 기원을 모두 물에서 찾았다. 우주와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홍수신화는 이전의 혼돈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질서와 그 구성원인 동식물을 새롭게 창조하는 이야기다.

그리스도교의 세례洗禮는 바로 그런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례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구도자는, 혼돈을 상징하는 물로 깊숙이 진입해야 한다. 이 잠수가 과거의 자신의 죽음이고, 물에서 나오는 행위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다. 물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약속이다.

문명세계에 사는 인간은 그런 의례를 매일 아침에 거행한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죽었던 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일깨우는 의식을 거행한다. 바로 ‘세수洗手’다. ‘세수’는 축자적으로는 ‘손 씻기’이지만, 온몸을 물로 닦아내는 행위로 그 의미를 확장되었다. 세수하는 하지 않는 날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다. 만일 내가 누구를 만날 일이 없어,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낸다 할지라도, 세수를 생략하면, 나는 그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 세수는 신기하게 단순히 손과 얼굴을 닦는 행위를 넘어, 오늘 하루를 새롭게 살겠다는 결심이다.

세수하지 않은 용모로 누구를 만나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실례일 뿐만 아니라 범죄다. 우리는 세수를 한 후, 거울을 본다. 지난 밤, 자신의 눈, 코, 입, 그리고 귀가 있어야할 자리에 붙어있는지 확인한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혼돈상태에 있는 ‘다시 만드는’ 행위가 ‘화장化粧’이다. 화장이란 영어단어 ‘메이크업’make-up이 그런 뜻이다. 그런 화장을 도와주는 제품이 ‘화장품化粧品’이다. ‘화장품’이란 영어단어 ‘코스메틱’cosmetic은 밤새 ‘혼돈’이 된 얼굴에 ‘질서cosmos’를 주는 거룩한 행위다.

어린 시절, 세수를 위해, 세숫대야에 물을 담은 후 쪼그려 앉았다. 손과 얼굴에 물을 껴 얹고, 비누를 손에 쥐어 비비면서 거품을 낸 후, 손과 얼굴에 칠했다. 지금은 샤워기가 도입되어, 그렇게 엉거주춤하게 앉을 필요가 없다. 샤워기를 통해 나오는 찬물과 더운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용이하게 세수를 한다. 나는 십년전쯤 일본 교토에 위치한 선불교 사원인 료안지(龍安寺)에서 ‘세수’에 관련된 중요한 물건을 보았다.

료안지는 무심한 돌들의 배치로 꾸며진 선불교 석정石庭으로 유명하다. 이 석정의 반대편에 위치한 후원後庭으로 가면, 무심하고 신비한 물건이 하나 있다. 연못에서 끌어온 물을 대나무 관을 통해 졸졸졸 공급하는 엽전모양의 돌 세면대다. 이런 세면대는 원래 차를 마시기 위한 다실입구에 놓인 중요한 의례를 위한 유물이었다. 일본인들은 다도茶道를 위한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세면대에서 손 닦고 입을 행구는 중요한 의례를 행해야 한다.

이 용기를 일본어로 ‘츠크바이’ 간지로는 ‘준거蹲踞’라고 표기한다. ‘준거’란 ‘쭈그려 앉다; 절하다’라는 의미다. 다도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대나무 관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는 물로 손과 입을 씻기 위해서는, 두 다리를 고정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아예 웅크려 앉아야한다. 그(녀)는 먼저 흐르는 물에 두 손을 올려놓고 서로 감싸며 비벼 청결하게 닦는다. 그런 후, 입을 행우기 위해서 대나무로 만든 물 컵에 물을 받아 마셔야한다.

물을 손바닥으로 담아 성급하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팔을 펴고 섬세하게 흐르는 물을 조그만 국자에 받은 후, 그 물을 입으로 가져와 고개를 숙여 마신다. 한 모금 머금고 다시 뱉어 입을 청결하게 만든다. 손을 씻는 행위는 어제까지 자신이 한 과오를 씻겨내는 선언이며, 몸을 한 모금 마시는 행위는, 자신의 마음까지 청렬하게 만들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겠다는 결심이다. ‘준거’는 ‘다도’라는 새로운 경험을 위한 오래된 자신을 유기하려는 겸허의 의례다.

COVID-19는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중요한 개인 생활수칙을 요구한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다. ‘마스크 착용’은 코로나 바이러스 균이 전염되는 길을 막으려는 노력일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말하는 우리에게 침묵을 가르치고 상대방의 표정을 깊이 관찰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라는 명령이다. ‘손 씻기’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 자신을 점검하여 제거하라는 당부다. 오늘날 수술실에 들어선 의사나 간호사들이 제일 먼저 하는 행위가 ‘손 씻기’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손 씻기’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 때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종교인들과 군중들의 강력한 요구에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선도한다. 그는 군중 앞에서 한 의례를 행한다.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었다. ‘손을 씻는 행위’는 자신이 결부된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내어, 자신이 결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장치였다.

‘손 씻기’와 같은 ‘손 위생’을 도입한 사람은 19세기 중엽 비엔나 종합병원의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스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다. 그는 의사와 인턴들이 운영하는 산부인과 병동의 산모가 산파가 운명하는 산부인과 병동의 산모보다 발열증상과 사망의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획인한 후, 그 이유를 알아냈다. 의사와 인턴들은 종종 시체부검을 한 후, 자신들의 손에 시체에서 감염된 독성물질을 산모에게 감염시켰다.

그는 그것이 발열의 원인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부검 후, 산모진료를 위해 염화칼슘액으로 손을 소독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당시 어떤 의사도, 산모들이 산후에 38도 이상의 고열이 일어나는 산욕열産褥熱이 의사의 청결하지 못한 손에서 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제멜바이스는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혀 정신병원에서 감금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후에 파스퇴르는 전염성 질병의 원인이 병원성 미생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료안지의 츠크바이는 손 씻기의 목적에 대해 그 표면에 네 글자로 기록하였다. 가운데 움푹 파인 커다란 사각형은 ‘입’을 상징하는 口자다.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口를 더하면 네 간지를 읽으면 다음과 같다. 吾, 唯, 足, 知. 이 신비하고 간결한 문장을 번역하지면 이렇다. “나는 단지 만족을 안다.” 혹은 “나는 나의 현재가 만족스럽다는 사실을 배울 뿐이다” 혹은 “나는 현재의 나에 만족하다”라는 뜻일 것이다.

‘손 씻기’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감염된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흐르는 물에 조용히 내보내려는 의례다. 감염된 자신이란,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이며, 자신이 아닌 것,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조절하겠다는 욕심이며 망상이다. 손을 씻기 위해서는 자신의 발을 고정하고 심지어 웅크려 앉아야한다. ‘손 씻기’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남을 흉내 내고 부러워하여 엉뚱한 곳으로 가려는 발을 제어하는 수련이다. 그리고 내가 만들 오늘이라는 작품을 위해,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으라는 훈련이다. 나는 그런 나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몰입하는가?

쿄토 료안지 츠크바이쿄토 료안지 츠크바이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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