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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 "호신용 스프레이 들고 일해요"···편의점이 위험하다

유통·바이오 채널 르포

"호신용 스프레이 들고 일해요"···편의점이 위험하다

등록 2023.03.07 11:40

유지웅

  기자

현행법상 담배 노출 막기 위해 불투명 시트지 부착편의점주협의회 "내부 보이지 않아 강력범죄 노출"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어느날 손님이 매장에 핸드폰을 두고 간 적 있어요. 손님이 돌아와서 핸드폰을 찾길래 모른다고 했는데 매장 안에서 핸드폰이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죽여버린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갔지만 큰 위협을 느꼈어요. 그 이후 호신용 스프레이를 항상 갖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씨)

편의점이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달 8일 인천에서 편의점주가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는 곧장 "편의점 내부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 강력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며 사건의 원인으로 '불투명 시트지'를 지목했다. 살해당한 편의점주가 50분이나 지나 발견된 점도 그 근거로 들었다.

'불투명 시트지'는 지난 2021년 보건복지부가 '금연종합대책'의 일환으로 편의점의 담배 광고 외부 노출을 단속하면서 일선 편의점에 부착되기 시작했다.

혼자 해결해야 하는 위험

기자는 지난 1일 새벽 두 시께 집 주변인 서울 구로구 소재 편의점 8곳을 찾아가봤다. 모두 불투명한 시트지가 외부에 붙어있어 실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날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던 A씨(23)는 "내부가 보이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계산대 한 쪽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 보여줬다.

그는 "손님에게 '죽여버린다'는 폭언을 들은 이후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아예 호신용 스프레이를 편의점에 두고 다닌다"면서 "하루에 한 번꼴로 심하게 취한 손님이 찾아오는데 취해있다는 사실만으로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편의점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경력 4년 차인 B씨(30)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B씨는 "봉툿값 20원 때문에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진 적 있었다"며 "그러다 멱살을 잡길래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했더니 칼을 갖고 왔다. 싹싹 빌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와 B씨는 물론, 이날 만난 편의점 근무자들은 "편의점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다음 손님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불투명 시트지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A씨가 보여준 호신용 스프레이. '마개 제거 후 분사'라고 적혀있다. 사진=유지웅 기자A씨가 보여준 호신용 스프레이. '마개 제거 후 분사'라고 적혀있다. 사진=유지웅 기자

편의점 수 증가와 함께 매년 300~800건씩 늘어난 편의점 범죄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매년 300~800건씩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일어난 범죄 건수는 2011년 6941건에서 2021년 1만5489건으로 늘어났다. 2021년 기준으로 전체 범죄 건수의 1.1%에 달한다.

편의점 범죄가 매년 늘어난 것은 편의점 수의 증가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2018년 4만개를 넘어섰고, 이후 3년 만인 2021년엔 5만개를 돌파했다. 인구당 점포 밀도는 1000명당 1개꼴로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보다도 높다. 일본의 경우 편의점 수가 5만5950개에 이르지만 인구수(1억2330만명)는 한국(5155만명)보다 2배 이상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편의점 종사자들은 '불투명 시트지'가 위험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도 "불투명 시트지가 범죄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흡연율을 줄인다는 근거도 없으므로 반드시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찌 됐든 노출만 막으면 된다?

이와 관련해 단속 주체인 보건복지부는 논란을 자초했다. 2011년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편의점 내 담배 광고는 외부 노출이 금지됐지만, 누구도 단속하지 않아 유명무실했다. 복지부는 2019년 감사원으로부터 이 점을 지적받고 뒤늦게 규제에 나섰다.

현행법에 따라 광고가 외부로 노출되면 안 된다는 게 복지부 입장이다. 그러나 편의점 내부로 들어가면 누구나 담배 광고를 접할 수 있다. 광고물 외부 규제가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지적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단속은 초기부터 탁상 규제라고 비판받아왔다.

복지부는 비판에 대해 다양한 시정조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끔 했다고 반박했다. ▲통행로를 등지도록 광고물 위치 조정 ▲광고물에 가림막 설치 ▲조명광고물은 조도를 낮추거나 전원 차단 등이다.

복지부가 제시한 시정조치는 사실상 "광고 떼기 싫으면 시트지를 붙이라"는 강요에 가깝다. 광고가 통행로를 등지게 하기 위해선, 담배 광고가 설치된 계산대 위치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내부가 잘 보여야 하는 편의점 특성상 계산대를 통행로 쪽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계산대는 매장의 측면에 자리 잡고 있다.

한 편의점주는 "복지부에선 시트지를 우리가 선택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편의점주들 입장을 들어본 적은 없다"면서 "광고물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조명을 끄면 어떤 담배회사가 광고를 주겠나"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편의점 근무자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해외에선 1970년대부터 편의점 범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연구를 토대로 범죄예방 대책이 수립됐는데 대표적 사례가 플로리다 주 게인스빌 시의 '편의점 행정조례'다.

조례는 주요 내용으로 ▲편의점 유리창을 가리는 게시물 부착 금지 ▲계산대를 편의점 밖 거리에서 잘 보이는 곳에 설치 ▲점포 내에 보유할 수 있는 현금 한도 제한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조례 시행 후, 편의점 강도 사건은 그 전에 비해 80% 감소했다. 조례는 효과성을 인정받아 다른 주와 외국 입법에 있어 모델이 되기도 했다.

2013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방범인증제도도 미국 편의점 조례와 관련 연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방범인증제는 방범 시설이 우수한 편의점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로,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선 점수가 90점을 넘어야 한다. 이 중 '외부에서 계산대 주변 시야 확보' 항목은 30점을 차지한다.

복지부는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며 편의점 근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시민들은 위급할 때 편의점에 들어가서 도움을 요청하지만 정작 편의점 근무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편의점 업계에선 규정이 더 세부적으로 설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성길 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단순히 광고물이 외부에서 보이면 안 된다가 아니라 외부에 노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광고물을 설치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과거 담배 광고가 과도했던 시절의 규정을 갖고 현시점에서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유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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