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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웅 “‘살인의뢰’ 속 조강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완벽한 악이다”

[인터뷰] 박성웅 “‘살인의뢰’ 속 조강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완벽한 악이다”

등록 2015.03.23 16:38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박성웅과는 지난 해 여름 영화 ‘황제를 위하여’ 미디어 데이에서 함께 했었다. 언론시사회 후 여러 매체와 가진 술자리에서 박성웅은 일절 술을 멀리했었다. 박성웅이 혹시 술을 못먹는 체질? 연예계의 소문난 애주가다. 그는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에 유독 출연을 많이 했다. ‘함께 술을 마실 동료가 많다’며 흡족해 하는 그다. 그런 박성웅이 술자리에서 맹물만 들이켰다. 어떤 끝내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단다. 맹물에 닭가슴살로 허기를 채웠다. 지독할 정도로 냉철함을 보였다. 사실 술자리에서 주당이 술을 멀리하는 것 만큼 힘든 일이 또 있겠나. 그리고 정확하게 8개월 뒤 박성웅은 한국영화 사상 최강의 악역으로 돌아왔다. 영화 ‘살인의뢰’에서 그가 연기한 ‘조강천’은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추격자’의 하정우가 연기한 연쇄살인마를 넘어선 악마 그 자체였다. ‘악역 전문’으로 유명한 박성웅과의 인터뷰. 사실 처음부터 밝히지만 박성웅의 귀요미가 터진 시간이었다.

‘살인의뢰’ 언론시사회 당시 박성웅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열연도 있었겠지만 언론시사회 후 열리는 기자간담회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영화 관람 도중 엠블란스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단다.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키 187cm의 거구 박성웅이 쓰러질 정도라니.

“하하하. 그걸 왜 그렇게 얘기를 해서. 아이고 참나. 응급실에 간 건 사실인데. 실려가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내 발로 걸어갔는데 무슨(웃음). 창피해 죽겠네. 어디 몸이 안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지병도 없고. 하하하. 영화 보는 데 피해자 가족들의 감정에 이입돼서 갑자기 뭐가 훅 오더라구요. 혈압이 올랐는지 도저히 못있겠더라구요. 매니저한테 차 빼라고 해서 내 발로 걸어나가 차타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서 치료 좀 받았죠. 저 지금 멀쩡해요. 하하하.”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신세계’의 ‘이중구’가 워낙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도중 간간히 ‘인터뷰하기 좋은 날씨네’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간혹 얘기의 맥이 끊기면 ‘매니저 몽키 스패너 좀 가져와라’며 쉴새 없이 장난을 쳤다. 사실 박성웅에게 제대로 된 악역은 ‘신세계’의 ‘이중구’가 전부다. 더욱이 영화 속에서 사람을 죽여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체질적으로 피와는 거리가 먼 젠틀남이었다.

“그렇다니까요. 하하하. 나 얼마나 부드러운 남자인데. 하하하. 이중가가 너무 쎄서 지금까지 나만 보면 악역 악역 하는거지. 나 안 그래요. 하하하. ‘신세계’ 때하고는 사실 느낌도 틀리고 작품 자체도 틀리고. ‘신세계’는 정말 하고 싶었고, 그 배역을 갖고 싶었죠. 워낙 쟁쟁한 분들과 함께 하니. 반면 ‘살인의뢰’는 글쎄요. 처음 시나리오 받았는데 ‘이번에도 악역?’ 이랬죠. 그런데 읽어보니 좀 다른 악역이었어요.”

영화팬들은 ‘살인의뢰’ 개봉과 함께 충무로 3대 악역을 꼽았다.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과 ‘추격자’의 하정우가 박성웅이 이번에 연기한 ‘조강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박성웅은 두 배역과 조강천이 바닥부터 틀린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완벽하게 악으로 이뤄진 인물이라는 것. 그는 ‘더 이상의 악역은 없을 것이다’고 확신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내가 연기했기에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소름이 끼치는 인물이잖아요. 앞뒤 맥락도 없이 그냥 죽여요. 완벽한 사이코패스죠. 여러 배우분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배역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스스로 만들어 연기를 해요. ‘이중구’ 때도 그랬고. 사실 조강천도 그렇게 하려고 했죠. 감독님과 상의를 했는데 ‘안된다’고 선을 그으셨어요. 좀 당황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감독님 생각이 ‘맞았구나’라고 느꼈죠.”

당시 손용호 감독은 박성웅에게 ‘조강천’을 ‘그냥 악마’로 그리고 싶다며 ‘이유’를 부여하는 것을 거절했단다. 박성웅이 ‘조강천의 과거에 대한 플래시백’이 몇 장면 있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었다고. 결국 박성웅은 감독의 의도대로 ‘조강천’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 방식은 박성웅에게 새로운 느낌을 전해줬단다.

“이유가 없는 악행은 사실 설득력이 떨어질 텐데, 오히려 다르게 생각했죠. 거기 있으니깐 죽인거다. 좀 더 나아가, 죽인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봤어요. 집 마당에 파묻고 보고 싶을 때 파서 얼굴 좀 보고 다시 묻고. 그게 ‘조강천의 방식이다’라고 스스로 설득했죠. 그러니깐 어느 순간 편안해 지더라구요. 사실 그 지점부터 나도 좀 내가 이상했어요. 하하하.”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는 ‘조강천’과 같은 완벽한 악인에게서 순수성을 그려냈다. 완벽한 악은 완벽한 백지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히는 취조실 장면과 살인 후 비가 내리는 숲속에서 비를 맞는 섬뜩한 모습은 박성웅이 만들어 낸 조강천의 악마성을 그린 대표적인 명장면이다.

“영화를 보면 취조실에서 태수(김상경)가 날 두들겨 패고 총으로 이마를 겨누는 장면을 보면, 내가 씩 웃잖아요. 사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우리 아들 떠올렸어요. 전주에서 촬영하고 있었는데 아들을 오랫동안 못 봐서 죽겠더라구요. 근데 그게 영화에서 앞뒤 장면으로 붙여 놓으니 완전히 ‘개XX’가 되더라구요. 하하하. 내가 봐도 죽일놈이던데요.”

특히 숲속 장대비를 맞으며 온 몸의 피를 씻어내는 장면은 조강천의 내면을 그려낸 최고의 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 장면이 어쩌면 ‘박성웅’이 그리고 창조해낸 연쇄살인마와 사이코패스를 겸한 ‘조강천’의 진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너무 단순해요. 사람 죽였고, 온 몸에 피칠갑이 됐고, 빨리 시체 파묻고 집에 가서 씻어야 하잖아요. 되게 귀찮지.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려요. ‘야 잘됐다. 집에서 안 씻어도 되네’라며 되게 기분 좋게 비를 맞는 거에요. 이런 인간? 이런 악마가 어디있어요. 어휴.”

하지만 진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은 바로 목욕탕 격투신일 것이다. 50대의 김의성과 함께 무려 42시간을 거의 논스톱으로 촬영했다. 영화 속에선 단 3분에 불과하지만 몸을 만든 시간까지 하면 그 3분을 위해 대략 3개월을 달려온 셈이다. 박성웅은 당시 현장을 담은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줬다. 탈진 직전의 완전히 다른 박성웅이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연기 생활을 한 이후 가장 힘들었던 42시간이었을 거에요. 쉬었냐구요? 카메라는 쉬어도 난 못쉬죠. 근육 자체의 강직도를 유지해야 하니 계속 팔굽혀펴기도 하고. 물도 못 마셨어요. 진짜 미치겠더라구요. 완전 올누드에 앞부분만 공사를 하고 찍었는데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여자 스태프들이 고개를 돌려도 ‘야! 다 봤으면서 뭘 돌려’라고 농담까지 했다니까요. 하하하. 진짜 그 장면에서 저도 그랬지만 의성 형님도 진짜 대단했죠. 의성 형님이 연기 생활 동안 처음 액션을 한 장면이니깐. 하하하.”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제작발표회 당시 ‘살인의뢰’를 끝으로 악역 은퇴를 선언한 박성웅은 곧바로 ‘무뢰한’ ‘오피스’까지 연이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시 한 번 악역 제의가 온다면’이란 질문에 “몽키 스패너로 콱”이라며 농담을 했다. 당분간은 힘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장담은 못하겠단 전제 조건도 달았다.

“날 홀릴 대단한 작품이 온다면 모르겠죠. 하지만 이젠 좀 악역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날 자꾸 무서운 놈으로만 보는 데 이래봬도 한때 시트콤도 해본 경력이 있어요. 하하하. 나 코미디도 진짜 잘할 자신 있다니까요(웃음). 진짜 하고 싶은 건 절절한 부정을 그린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만약에 우리 아들과 함께 출연하라고 하면? 난 완전 땡큐입니다.”

인터뷰 후 박성웅은 휴대폰에 저장된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완벽한 아들 바보로 변신했다. 아들과 함께 아내 몰래 ‘배달 자장면’을 시켜 먹는 노하우에 대한 에피소드로 인터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팬들이 만들어 준 휴대폰 케이스에는 박성웅과 아들이 잠옷 바람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뒷얘기 하나. 이 세상에서 박성웅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남자는 아들, 그리고 여자는 신은정 단 두 사람이란다. 박성웅이 제일 무서워하면서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두 사람. 가족 얘기에 박성웅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살인의뢰’ 속 조강천이 지금 눈앞에 박성웅이라니. 사실 좀 믿기지 않았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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