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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무비게이션]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등록 2014.07.03 17:02

김재범

  기자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기사의 사진

포스터 속 세 남자는 참 다정해 보인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는 듯 환하게 웃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웃음이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온 세 남자는 무언가를 보며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의 뒤편이 자꾸만 아른거리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친구들’의 포스터 속 세 남자의 모습이 불안하게 또 처연해 보이는 것이라 스스로 믿고 싶었다.

보통 남자들은 그렇지 않나. “사랑은 변해도 우정은 영원히”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치는 회기를 부리는. 중학교 시절 교무실에서 졸업장을 훔쳐 학교 뒷산에 꼭대기에 올라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던 세 남자, 20년 뒤 그 사진 속 인물들이 어떤 파국으로 갈라서게 될지 자신들은 알았을까. 아니 자신들을 갈라놓은 그것의 실체에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이 세 남자는 변치 않는 우정 속에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을까.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기사의 사진

영화 ‘좋은 친구들’은 최근 쏟아지는 자극적인 영화의 홍수에 대항할 수 있는 진짜 묵직함이 담겨 있다. 소재의 임팩트와 폭력 및 노출 코드 등을 배제한 채 스토리의 무게감으로만 114분을 내달린다.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마지막까지 치고 나가는 스토리 동력의 탄성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두는 데 힘이 부치는 느낌도 적다.

영화는 필연적으로 사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세 친구의 관계를 물질적 기준의 상중하로 배치한다. 물질적으로 유복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방식의 삶을 사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현태(지성),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하게 타락한 속물근성의 인철(주지훈), 이 세상이 현태와 인철 단 두 사람이라고만 믿는 순수한 청년 민수(이광수). 이렇게 세 사람은 세상이 정한 기준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정만큼은 진짜 가족 이상처럼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문제였다.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기사의 사진

현태의 어머니는 보험회사 직원인 인철에게 보험사기를 의뢰하고, 인철은 현태와 민수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결국 사건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달리게 되고 영화 포스터 속 메인 카피 ‘친구를 의심한 순간 지옥이 시작됐다’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20년 동안 세 사람을 하나의 띠로 묶어 둔 ‘우정’이란 이름은 이때부터 ‘의심’이란 다른 얼굴로 변하게 된다.

의심은 관계의 파국을 만들어 낸다. 현태는 인철과 민수에게 의지하지만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인철은 너무도 태연한 현태가 두렵고, 불안해하는 민수가 신경이 쓰인다. 민수는 현태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모든 것을 덮으려는 인철이 원망스러우면서 그가 안쓰럽다. 공통점은 하나다. 친구란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 사람의 ‘우정’이 그 순간부터 점차 ‘적의’로 돌변하게 된다.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기사의 사진

‘좋은 친구들’은 너무도 깊고 너무도 넓어서 그 크기를 가늠키 어려운 ‘우정’의 잔혹한 이면이 어떤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지 너무도 잔인하게 그린다. 그 속도가 묵직해서 치고 나가는 맛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살벌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서서히 서로를 옥죄어 가는 세 사람의 관계도는 문자 그대로 ‘지옥도’의 그것이나 다름없다.

민수가 두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물건, 인철이 현태에게 남긴 또 다른 물건, 그리고 현태가 나지막하게 전한 대사 한 마디는 세 인물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결국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전하기에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기사의 사진

사실 ‘좋은 친구들’은 아주 단순하다. 사소한 오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파국의 결말을 말하는 데, 그 안에 담긴 메인 코드가 ‘우정’이란 단어이기에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믿고 있던 친구의 비밀을 알게 된 당신이라면 대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속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 담긴 세 사람의 종국(終局)이 관객들이 취할 수 있는 대답의 세 가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들’은 너무도 잔혹하고 슬프고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렇게 결코 가볍지 않은 또 너무도 무거운 얘기를 풀어간 세 배우 지성 주지훈 이광수의 연기는 유행처럼 남발되는 ‘재발견’이란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지성은 시종일관 친구들을 의심하는 감정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은 채 끝까지 고뇌의 커튼으로 가리고 자신을 끌어간다. 주지훈은 천편일률적인 ‘껄렁함’의 캐릭터에 감정이란 소스를 얹어 새로움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들’의 ‘신의 한 수’를 꼽자면 단연코 이광수다. ‘런닝맨’의 코믹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완벽한 오판이다. 그는 죄책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힌 히스테릭한 캐릭터를 감정의 결 세포 하나까지도 건드리는 세밀함으로 관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것이다. 연출을 맡은 이도윤 감독 역시 이광수에 대해 “천재”라고 단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좋은 친구들’, 당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무게는? 기사의 사진

최근 한국영화계에 등장하는 주류는 속도다. 하지만 신인 이도윤 감독은 이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무게로 승부했다.

‘좋은 친구들’, 가장 가깝지만 또 가장 멀 수밖에 없는 ‘관계’에 대한 잔인함의 다른 말처럼 느껴진다. 개봉은 오는 10일.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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