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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의 테크와 손끝

프렌드쇼어링 시대의 제조업 대비법···계약학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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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쇼어링(역외 생산)과 리쇼어링(생산의 종주국 복귀)의 시대가 있었다. 오프쇼어링의 시대는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까지는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고 우루과이라운드(UR)이 아닌 세계무역기구(WTO)의 체제가 들어서던 세계화에 대한 낙관이 넘치던 시대였다. 토마스 프리드만이 세계가 평평하다고 말하고, 수많은 지구촌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같은 시점 선진국 제조업체들은 노동조합과의 갈등을 우회하고 저임금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본국의 공장을 옮겼다. 공장이 따라갈 때 미국과 일본의 GM이나 도요타 같은 회사는 중국과 동남아에 부품을 조달할 업체를 현지에서 찾았고,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는 본국에서 아예 부품 하청사들을 함께 데리고 진출하기도 했다는 점의 차이는 있었다. 하지만 공장유치를 바라는 개도국 정부의 세제 혜택, 수입 관세 우회와 보조금 지원 그리고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려는 오프쇼어링의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세계화에 대해 반성하고 제조업 일자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을 필두로 리쇼어링이 시작되었다. 요컨대 GM 공장이 다시 생산직 노동자들이 많은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탈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었던 것을 온 몸으로 체감한 북미의 노동운동은 예전처럼 강력한 쟁의를 할 힘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한국 제조업이 몇 년간 애를 썼던 스마트 팩토리와 인더스트리 4.0, 즉 '4차 산업혁명'도 이 시절의 선진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 담론이라 볼 수 있다.

2010년대를 경유하며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글로벌 탑2에 등극하고, 도광양회(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에서 벗어나 '중국몽'을 꾸기 시작한 시점이 왔다. 미국에서도 트럼프로 대표되는 자국우선주의를 외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흐름이 커졌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통과됐고, EU의 리더십은 남유럽 위기와 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약해지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보편적 세계가 아닌 '우리 편과 남의 편의 세계'로 신냉전의 기류가 올 수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전세계를 누비며 편가르기보다 싼 인건비와 세제 혜택을 찾아 자본의 이윤과 성장을 고려하던 기업들은 이제 가치사슬(Value Chain) 관점에서 정치적 뉴스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수급을 할 수 있는 부품사를 선택하고, '진영' 관점에서 믿을 수 있는 국가에 공장을 지으려 하게 됐다. 이른바 프렌드쇼어링의 시대가 된 것이다.

'칩4' 가입에 대한 요청과 논란, 다양한 동맹의 이합집산이 정치면 뉴스 뿐 아니라 경제면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이러한 신냉전의 기류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 완성품을 만드는 제조기업들의 저렴한 부품과 소재를 20년 동안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해 왔던 중국이 말 그대로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고 있다. 공급선을 다변화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동남아에 공을 들여 안정적인 프렌드쇼어링을 맡아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지난 정부의 '신 남방정책'도 재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럼 이런 프렌드쇼어링 상황에서 제조업체들은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우선 교육 관점에서만 언급을 해보려 한다. 반도체 대전이 벌어지는 지금,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엔지니어가 될 공학 인재를 공급하자는 것이 이번 정부가 처음 보여준 산업과 관련된 정책 의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계약학과를 만들면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을까? 학사 과정이면 4년, 석사 과정이면 2년이다. 학사 석사를 통합해도 5년이고, 아무리 기업체가 원하는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더라도 결과적으로 반도체 업계에서 뽑아 '현업'에서 손발을 맞추며 엔지니어로 전력화 하려면 1~2년은 걸린다. 그리고 지방과 수도권의 제약을 두지 않고, 대기업과 연결 짓는 것을 대학과 학생 모두 바라는 상황에서 계약학과를 만들 경우 대기업 취업용 학과만 만들어 낼 따름이다. 현업의 요구사항인지도 불분명하다. 인력난을 말한다고 그게 계약학과를 만들어 달라는 민원은 아닐 테니 말이다.

게다가 계약학과를 통해 산업의 뿌리가 되고 언제나 '공급 리스크'에 빠질 수 있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중견·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풀어내기 어렵다. 외려 기존의 분과학문 체제 내에서 대학들이 진화시켜 온 이공계 융합학과 복수전공 모듈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학부 3~4학년과 대학원 과정에서 세분화된 공학 모듈을 제공해서 학생들과 산업체의 니즈에 맞추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공학교육을 일종의 '공유 자산'처럼 만들어서 현업에서 원하는 지식을 교수들에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제조업체들이 위치한 산업벨트 지역의 공과대학들에 인센티브를 정부가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현직자들이 공부를 위한 시간을 퇴근 후 시간 밖에 내지 못하고, 중견·중소기업들이 재직자의 전공 대학원 교육 지원을 하는 것을 '이직' 등을 이유로 꺼릴 때 정부가 '학업 휴직' 등에 대한 교육비와 생활비를 세액 공제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일정 부분 보조하는 것도 제조업체들의 역량 향상을 위해 큰 기여를 하리라 본다. 사내 대학이나 유학을 보내줄 수 있는 제조 대기업의 형편과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중견·중소기업의 형편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아닌 다른 산업은 더욱 더 열악한 처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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