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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꽁꽁 묶인 창조경제

[창간기획]김영란법 꽁꽁 묶인 창조경제

등록 2016.10.25 07:52

이창희

  기자

한국은 몇시인가: 4차 산업혁명시대 백년대계 선택기로-강요받는 경제시스템사회 대혼란에 무너지고 움츠러든 관계형 사회기업 대학 등 ‘감옥’으로···초정밀 규제로 생산성 약화글로벌 대세 공유 가치 따라가려면 재설계가 정답

지난해 8월 인천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17번째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점등식을 갖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활동도 상당부분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청와대 제공지난해 8월 인천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17번째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점등식을 갖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활동도 상당부분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청와대 제공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천신만고 끝에 시행됐지만 여전히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깨끗한 사회 구현이 우선이라는 주장과 지나친 경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아직도 팽팽하다. 이런 가운데 촘촘한 관계로 이뤄진 사회가 분열되고 이로 인한 국가적 잠재력과 글로벌 무대에서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의 폐지가 아니라 수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지난 2012년 8월 최초 발의된 김영란법은 4년1개월만인 지난달 28일 시행 첫 발을 딛었다. 법이 시행되면서 적용 대상이 되는 관가와 정가, 학계, 언론계는 일순간에 움츠러들었다. 수십 년 간 지속돼 온 조직문화가 낳은 ‘관례’를 하루아침에 자연스럽게 전환하기는 무리였던 탓인지 이들은 만남 자체를 숫제 포기해버렸다. 아직까진 구체적인 적발과 처벌 사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예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의 상징이자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돼 예비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자칫하면 부정청탁으로 적발될 가능성이 생겼다.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센터로부터 상호 연결을 요청하는 것이 청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투자유치 기회를 주기 위해 창조경제혁신센터 차원에서 마련한 설명회의 경우 지금까지는 가능한 한 많은 기업들에게 이를 개방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객관적으로 엄격한 선정·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법에 저촉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이 센터를 찾고 있음에도 1년에 몇 차례 되지 않는 공식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이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법 적용은 센터와 관계된 모든 이들이 ‘공무수행사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센터 설립 근거 법령인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르면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센터를 지정·지원하므로 공공기관 업무 위임·위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을 비롯해 민간기업 파견자들까지 모두 법 적용 대상이 된다.

세계 각국들이 창업 지원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붓는 상황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웃 나라인 중국만 해도 정부 차원에서 청년들의 창업 지원에 혈안이 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창업에 성공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센터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자들의 등장으로 간신히 문을 열었다”며 “다른 분야는 몰라도 여기까지 김영란법을 적용하도록 두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영란법 시행 초반 혼란의 정점에 있는 곳은 일선 학교들이다. 적용 기관 4만919개 중 절반이 넘는 2만1201곳이 학교다.

일단 국민권익위원회는 엄격한 법 적용을 시사했다.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주고,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거나, 운동회 때 학부모가 교사에게 김밥을 주는 등의 사례가 위반이 맞는가’라는 질문에 “모두 위반이 맞다”고 밝혔다.

성적 평가자인 교사가 특정 학생을 우대할 수 있어 교사-학생 관계가 직접적인 직무연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음료수 한 캔이나 생화 카네이션 한 송이도 금품이 된다. 또한 교사와 학생 뿐만 아니라 평교사와 교감·교장 등의 관계에서도 김영란법은 칼같이 적용된다.

대학들의 경우 학칙을 개정하는 등 부랴부랴 법 시행에 대한 준비에 한창이다. 그동안 대학들이 조기 취업한 졸업 예정자들에게 출석을 인정했온 관행이 부정청탁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교육부는 각 대학에 자율적으로 조기 취업 학생에 대한 특례 규정을 만들어 학칙에 반영할 경우 이들에게 학점을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란법이 가져올 소비 위축에 이은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소비가 다소 줄어든다고 해서 경제가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대내외적 악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법으로 인한 충격까지 겹칠 경우 치명타가 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중반대로 예상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자영업자 영업환경이 악화되면서 서비스업 고용도 둔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부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고 이들 업종의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밑바닥 경제에서는 벌써부터 경기 위축을 체감하는 모양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첫째 주 화훼 경매물량은 지난해 같은 때보다 20%, 거래액은 30% 감소했다. 경조사에 쓰이는 화환과 선물용 꽃 등의 주문이 급감했고, 이는 화훼 소매상과 유통회사 및 농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문제점들이 불거지면서 김영란법의 취지와 의미는 보호하되 경제적 손실을 막고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지적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경우 주무부처인 미래부의 최양희 장관이 직접 나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최 장관은 지난 14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 출석해 “혁신센터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김영란법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대’를 메고 나선 광역단체장도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지난 3일 “김영란법으로 인한 농수산물 수요 감소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농어가의 소득이 감소할 공산이 크다”며 “그 피해는 서민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대관 업무를 맡았던 한 기업 관계자는 “처벌 규제가 강화되면 사회적 대면이 줄어들고 딱딱한 규정대로만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 활발하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창희 기자 allnewone@

뉴스웨이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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