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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등록 2018.04.26 14:07

수정 2018.04.26 14:12

이성인

  기자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기사의 사진

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기사의 사진

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기사의 사진

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기사의 사진

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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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기 - ‘혁신 DNA’의 정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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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革新) :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혁신, 긍정적 의미입니다만 간혹 진부하게 들릴 때도 있지요. 기업체 등 조직의 수장들이 단지 구성원을 채찍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일 텐데요.

“혁신은 한미의 핵심 DNA.”

이는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 말입니다. 여기선 어떨까요? 호소력이 가미된 혁신일까요? 그의 행보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1940년 김포 출생인 임 회장은 중앙대 약학대학을 졸업한 말 그대로 ‘약학도’였습니다. 1967년엔 서울 종로 5가에 본인의 이름을 따 ‘임성기약국’을 엽니다. 신뢰받는 약국이 되겠다는, 이름 석 자를 건 의지였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임성기약국이 당시로선 드물게 임질·매독 등 성병 치료약을 전문으로 했다는 점. 이는 부끄러운 병으로 끙끙 앓던 남성들에게 크게 어필해 임성기약국을 ‘서울 3대 약국’으로 불리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임 회장은 국내 최초로 의사가 아닌 약사로서 가운을 입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의사만 입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가운에서 오는 신뢰감을 자신에게 입힌 것이지요. 새로운 변화를 ‘내 몸’에 우선 적용한 셈.

보다 큰 꿈을 위해 1973년엔 직접 제약산업에 투신, ‘임성기제약’을 설립합니다. 같은 해 동료 약사들과 함께 ‘한미약품’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약회사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는데요.

1990년대엔 매출 10위권, 한미약품이 처음부터 앞서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 의약분업으로 영업 대상이 약사에서 의사로 바뀌는 새 국면이 찾아왔고, 임 회장은 이를 기회로 삼습니다.

동네 의원 담당 영업사원을 다른 회사의 5배로 늘리고, 일일이 휴대전화를 지급하는 등 영업을 적극 장려한 것. 이를 발판으로 한미약품은 2006년엔 업계 2위 자리까지 올라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영업 활동은 2009년 정부의 리베이트 규제 강화로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듬해엔 창사 이래 첫 적자까지 기록했는데요. 명백한 위기였지만, 임 회장은 오히려 공격적인 발걸음을 택했습니다. 연구개발(R&D) 카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지요.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1989년 항생제 트리악손으로 국내 최초 기술수출이란 전과(戰果)도 올렸던 터, R&D를 DNA로 삼아도 될 만한 체질을 이미 가꿔왔던 것입니다. 근거 있는 혁신은, 그렇게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에소메졸 캡슐, 국내 개량신약 최초의 FDA 승인 ▲2014년 국내 기술 최초의 흡입형 천식치료제 플루테롤 개발 ▲2015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HM71224, 6억 9,000만 달러 규모 기술수출 ▲2015년 지속형 당뇨신약 퀀텀프로젝트, 29억 2400만 유로 규모 기술수출(업계 역대 최대 규모) ▲2016년 RAF 표적 항암신약 HM95573, 9억 1000만 달러 규모 기술수출

임 회장과 한미약품의 R&D 경영은 점점 더 가속화되는 중입니다. 매출액 대비 15%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곳은 업계에서 한미약품이 유일하지요. 2014년엔 무려 매출의 20%를 R&D에 쏟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임 회장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제약 분야에 본인 이름 석 자를 선명하게 새겼습니다. 혁신을 입에 담기에 앞서 스스로 새 흐름을 만들었고, 변화엔 변화로 응수했으며, 그러기 위한 역량 키우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연구개발에 실패했다고 연구원들을 문책한 적은 없다. 오히려 격려하고, 기다렸다.”

혁신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 스며들 때 진짜가 된다는 점. 번드레한 목표만 세운 채 성과로써 혁신의 유무를 확인하려는 리더들이 적잖은 이 시대가, 임 회장의 행보에서 꼭 읽어야 할 혁신의 본질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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